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일상적인 삶 |  | |
| 유한을 향해 사방으로 나아가라
예민한 감성은 예리한 통찰을 불러온다고 했던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지적 능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왜? 날카롭고(銳) 민첩하지(敏) 않고서야 어찌 사물의 전체를 환하게 내다볼 수 있으며, 온통(洞) 밝혀서 살피지(察) 않고서야 어찌 사물에 의해 감각되고 지각될 수 있으랴. 때문에 철학자와 예술가의 시선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사실을 검증해주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장 그르니에다.
이미「섬」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독특하고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물론「섬」과 처음 부딪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첫장을 펼치자마자 기이한 긴장감으로 머릿속이 묵직해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마도, 별다른 자각이나 의심 없이 굳어져버린 우리의 의식세계를 마구 파헤쳐놓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그의 감성과 통찰이 몹시 까다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긴장을 풀고 그가 사용하는 철학적 언어(기호학적인 측면에서의 언어)에 겁을 먹고 달아나지만 않으면 이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자유로운 사색의 즐거움, 그 한없이 자적한 놀이에 빠져들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제목을 보자. ‘일상적인 삶’이라니, 우리에겐 가장 쉽고 가장 흔한 이야기가 아닌가!
12개의 소제목(여행, 산책, 포도주, 담배, 비밀, 침묵, 독서, 수면, 고독, 향수, 정오, 자정)은 굳이 사전을 펼쳐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쉽게 소통되는 단어들이다. 가령 ‘이번 여행은 어땠어?’라고 물으면 그 어느 누구도 ‘여행이 뭐지?’라고 반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는 묻는다. 여행의 실체는 뭔가, 인간은 담배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는가, 포도주의 상징은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비밀의 본질은 무엇인가, 잠과 깨어 있음을 연결해주는 고리는 있는가……. 그는 스스로 던져놓은 이 질문에 대해 다각도의 시선으로 대답하고 다시 묻고 다시 대꾸한다. 때로는 종교사를 뒤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책을 넘겨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가? 일상의 ‘이면’을 파헤치려고? 진정, 장 그르니에의 인식체계가 그토록 단순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라고.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드러내는 모든 행동들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의 작용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목적은 일상적인 모티브를 통해 의식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질을 파헤친다’는 말에 너무 무거워지지는 말자. 사실 그의 목적은 우리와 너무나 밀착되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주말에 뭐 했어?’라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안 했어’라고 대답한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단 한 순간도 자신의 행위나 의식작용이 멈추었을 리가 없을 텐데도 말이다. 혹 우리가 이미 일상을 습관적이고 무의미하게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생의 대부분이 일상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면, 장 그르니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쳐가는 것들을 포착하여 그것들 속으로 한없이 침잠해보는 것, 그것만큼 다변적이고 극적인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비밀>편에 나오는 “무한 속으로 들어가려는가? 그러면, 유한을 향해 사방으로 나아가라”라는 문장은 이 책의 전체 의도를 관통하고 있다. 무한은 본질을 뜻하고, 유한은 모든 행위들을 뜻하며, 사방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의식의 영역을 확장하라는 뜻이다. 즉 일상의 모든 행위에 대한 의식의 확장을 통해 본질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자는 것과 담배 피우는 행위를 통해 나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오, 이거야말로 기기묘묘한 마법의 세계가 아닌가!
by 리브로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