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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  | |
| 촉감으로 감지하는 거대한 영혼의 제국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는 순례길에 오른 카잔차키스가 동양에 대한 인상을 세밀하게 새겨놓은 책이다. 파시즘의 극악한 씨앗이 막 발아하던 1935년, 카잔차키스는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흔히 서양의 편에서 ‘극동’이라 불리는 그곳은 지중해의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에게 있어 미지의 세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가 중국과 일본을 ‘천상의 두 나라’라고 표현한 건 막연한 동경과 낯선 신비에 감염됐기 때문이 아니다. 두 나라에 대한 그의 감화는 훨씬 육체적이고, 육체적인만큼 절절한 영혼의 울림과 함께 한다. 가령, 그는 일본의 노(能)를 감상하며 이런 명상에 빠진다.
“노 속의 모든 움직임은 단순하고 느리며 종교적인 광채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울함을 남긴다. 관중의 기분을 다시 북돋우기 위해 항상 비극 뒤에는 희극이 공연된다. 교겐이 다시 흥을 돋우면 마음이 강해져 두 번째 비극에 참가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세 개의 비극이 공연되며 전체 공연 시간은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기독교인이 밤새 그리스도의 열정에 임하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의 열정에 임한 것처럼, 불교도들은 부처의 열정에 임한다. 그것은 부처와 그리스와 디오니소스가 영원히 고통받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pp.245∼246)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 〈거대한 영혼, 중국〉과 〈신비로운 관능, 일본〉이란 제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카잔차키스가 경험한 두 나라의 인상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제목들이라 할 수 있다. 카잔차키스는 ‘묘한 냄새를 풍기고 기형적으로 작은 전족(纏足), 메마른 영혼을 혼입하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묵묵한 게으름의 오후, 그런가 하면 그 이면에 숨겨진 도교와 불교의 신비함, 서양의 종교적 상품과 자본주의에 대한 냉담함’으로 가득찬 중국을 ‘영원한 천상의 제국’이라 칭송한다. 더군다나 그곳은 카잔차키스가 말년에 빠져들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의 원류이기도 하다. 카잔차키스는 ‘부처는 내가 사랑하고 본보기로 존경하는 가장 위대한 신이 되었다. 오감을 부정하라. 속을 모두 비워라. 아무것도 미워하지도 욕망하지도 희망하지도 말라. 숨을 내쉬면 세상이 꺼질 것이다.’라고 〈서문〉에서 절절히 읊는다. 그 만큼 중국와 일본에서 체험하는 동양사상의 현묘한 깊이는 그에게 엄청난 영혼의 충격과 각성을 일깨워주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오감을 비워라’라고 말하지만, 이 책은 정신의 극한까지 치달은 감각의 섬세한 촉수들이 번득번득 살아있다. 이건 미묘한 역설이다. 카잔차키스는 동양의 신비로운 공기를 감각의 극점까지 끌어 마심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해탈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자유를 감득한다. 일례로 그는 일본에서 만난 한 여성과의 접촉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수년 전 나는 한 여자와 함께 우물 위로 몸을 기울인 적이 있다. 서로 닿은 우리의 두 얼굴은 잠시 어둡게 반짝이며 떨고 있는 물 위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문득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일본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 같다.”(p.314)
아울러 그는 ‘나는 촉감(觸感)의 신이 나의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게 된 모든 나라들을 촉감으로 느끼게 되었다.’라고도 말한다. 그렇듯 이 책의 키워드를 단순요약하자면 ‘종교적인 명상과 어우러지는 육체의 예민한 감각들의 향연’ 이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요약은 그것이 간편하고 명징한만큼 위험요소가 다분하다. 중요한 건 육체와 정신이 전신감각으로 교류함으로써 드넓어지는 영혼의 해방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잔차키스의 문장들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분된 서구의 관념으로부터 많이 이격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육체의 떨림을 통해 영혼의 궁극을 표현한다. 때문에 그의 언어는 감각의 충만함과 영혼의 투명성이 샴쌍둥이처럼 맞붙어있다. 이 책은 그런 깊고 치열한 영혼에서 우러나온 부드러운 핏자국이다. 1982년 영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소설가 정영문의 말끔한 번역도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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