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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 |  | |
| 암소를 찾아 길거리에 나선 작가 도스또예프스끼
˝어떻게 놀라지 않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 지고한 관념들로 가득 찬 언어와 지성과 상상력을 가진 위대한 예술가가 갈색 암소 따위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말이에요.˝
˝니꼴라이 뻬뜨로비치, 당신은 모르시는군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재능있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자상한 가장이랍니다. (중략) 만일 암소가 정말로 어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들, 특히 막내는 우유를 못 먹었을 거예요. 아니면 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남의 암소가 짠 우유를 먹었겠죠. 그래서 남편이 소를 찾아 나선 거랍니다.˝ (pp.466~467)
암소를 찾아 길거리에 나선 도스또예프스끼,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은 이처럼 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뜻밖의 면모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니꼴라이의 말대로 도스또예프스끼는 위대한 작가이다. 그를 생각하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겹쳐지면서 웬지 음울하고 병적인 천재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미지는 그가 평생 간질 발작과 빚에 시달렸고 도박에 매달렸었다는 전기적 사실에 어느 정도 영향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직접 쓴 회고록을 보는 내내 독자들은 니꼴라이가 겪었던 놀라움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은 안나가 첫만남에서부터 도스또예프스끼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와 함께했던 14년간의 결혼 생활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안나는, 악덕 출판업자와 맺은 계약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소설을 써야했던 도스또예프스끼가 고용한 속기사였다. 그 당시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미 인정 받는 작가였지만 안나 보다 25살이 많은 상처한 홀아비였고, 병약했으며, 빚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도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안나는 점차 ‘지혜롭고 선하지만 모든 이에게서 버림받은 것 같은 불행한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기이한 만남에서 시작해 결혼에 이른 이들의 연애담은 흥미진진하다. 이 시기의 기록은 행복에 겨운 그들의 흥분이 그대로 담겨 장밋빛 홍조를 띤 얼굴처럼 생생하게 빛난다.
안나의 눈을 통해 보는 도스또에프스끼는 지적이고 솔직하며 인간적인 인물이다. 결혼 후에도 그는 변함없이 훌륭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한다. 아내의 해산을 앞두고 밤이나 새벽에 갑자기 산파를 부르러 갈 때를 대비해 매일 산파의 집까지 산책했다는 일화나 밤늦게 집필을 하다가도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돌봤다는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지지도 않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가족과 친척들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불행한 작가였다. 안나에 따르면 그의 집필은 소설의 두 세 장은 이미 출판되었고, 넷째 장은 조판 중이며, 다섯 째 장은 막 우편으로 보냈는데, 나머지는 구상도 못한 상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이미 인쇄되어 나온 소설을 읽다 잘못된 부분을 발견해 그의 애초 구상이 훼손되었음을 알고 절망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안나는 자신의 작품을 충분히 다듬을 수 없었던 예술가의 비애를 깊은 회환을 안은 채 떠올린다.
이 밖에도 도스또예프스끼는 평생 계속되었던 간질 발작과 그 이후 찾아오는 우울증으로 큰 고통을 받았으며 사랑하는 두 명의 아이를 잃어야 했다. 특히 막내는 자신으로부터 유전된 간질 발작으로 인해 죽었다. ‘신경이 날카롭고 어떤 일에든 깊이 빠져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그의 아내가 없었다면 과연 그의 작품이나 삶이 유지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사실 결혼 후 도스또예프스끼가 겪었던 시련은 곧바로 안나의 시련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당당한 목소리는 경탄을 넘어 숙연함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비록 물질적인 궁핍과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긴 했을지언정 나의 인생이 분에 넘치게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 하나 바꾸고 싶은 것이 없다.˝ (p.29)
안나가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을 행복했다고 고백했듯 나 역시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주말이 행복했다. 나는 대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일상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아이 같은 질투를 목도하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으며, 그가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는데만 몰두하지 않고 소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 나섰어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불행을 겪긴 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이 아니었음을,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어 그저 기쁘고 고마웠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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