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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프루스트 씨 |  | |
| 프루스트의 마지막 10년, 그 잃어버린 시간을 밝히는 고백들
차(茶)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통해 길고 긴 시간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간 마르셀 프루스트. 감각과 육체, 그리고 영혼의 끈질긴 삼투압이 빛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책 속에 담기지 못한 얘기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상상해 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회상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의 먼지는 더 부풀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시간이 과거 속으로 지워지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일생일대의 명작을 쓰면서 현실의 시간을 과거라는 신기루 속에 정지시켜버렸다. 우리가 아는 프루스트는 끝없이 과거의 희미한 성채 속으로 사라져 가는 ‘누군가’일뿐이다. ‘잃어버린 시간’속에서의 깊고 어두운 잠행이 계속 될수록 우리는 정작 그 시간의 모래성을 쌓고 있는 노구(老軀)의 마르셀 프루스트를 신비화시켜 버린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이 표상하는 건 이미 신화가 돼버린 20세기 불멸의 작가, 먼 시간의 초상화로만 남겨진 프루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프루스트 씨」에서 우리는 침침해진 눈에 핏발이 선 채, 현재의 시간을 파헤침으로써 과거를 복원해내려는 한 노인의 열렬한 정신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 책에 담긴 건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미래의 죽음과 싸우는 한 인간의 영원한 현재의 기억이다. 그 기억을 실감 있는 발성으로 되살려낸 사람은 22살 때부터 프루스트의 마지막 10년을 같이 했던 ‘불면의 동반자’셀레스트 알바레. 간호사로서 프루스트의 생활 일체를 보살폈던 그녀는 프루스트가 세상을 뜬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이 프루스트와 지냈던 시간들을 천천히 되살려낸다.
“작품에서 그를 소모시킨 것은 시간이었다. 그는 자기 책들 속에서 그 시간을 뒤쫓았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는 바로 그가 시간의 추적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프루스트 씨의 명령에 따라 돌아가는 우리만의 시계와 우리만의 특별한 달력을 가지고 있는 듯이, 외부와 거의 완전히 차단되고 낮과 밤이 뒤바뀐 그곳에서 프루스트 씨와 함께 사는 동안 - 그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시작한 것을 완성하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그의 공포가 느껴지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P.352) 만년의 프루스트는 자잘한 일상들과 담을 쌓은 채, 오로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에만 매달렸다. 그로 인한 광기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고 지치게 했을 지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스스로에 대한 과민한 애증과 집착, 바람 소리의 미미한 변화에도 춤을 추듯 형상과 질감을 바꾸는 기억의 파동을 따라가면서 프루스트는 스스로를 닦달했다. 삶을 위해서, 그리고 죽음을 위해서.
영혼의 가장 첨예한 꼭대기에서 독거(獨居)하는 인간에게 외로움이나 육체적인 고통은 열정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주위엔 그 독보적인 불덩이를 조금 더 예외적인 애정으로 응시하고 지켜내는 숨은 조력자가 존재한다. 셀레스트가 들려주는 얘기들은 변화무쌍하고도 예측불가능했던 프루스트의 모든 면모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한 젊은 여인의 영혼에 삶의 가장 성실하고도 내밀한 목소리로 저장되어 있는 진짜 마르셀 프루스트를 만난다. 프루스트는 셀레스트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오로지 셀레스트만의 ‘잃어버린 시간’이었던 것이다.
옮긴이는 예전에 이 책을 자신의 스승이었던 불문학자 김붕구 선생에게서 선물받았었다는 기억을 되살린다. 아마도 옮긴이는 셀레스트와 프루스트의 관계를 통해 길고 가는 씨줄과 날줄로 한없이 엮인 시간의 반복성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자신만의 잃어버린 시간.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과거로의 끝없는 침잠이 아니다. 그건 그를 추억해내는 셀레스트도 마찬가지다. 셀레스트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 속에 자신의 마지막 삶과 죽음을 투여한 프루스트의 가장 현재적인 순간들과 만난다. 그 깊고 어두운 시간은 결국 우리가 늘 놓치고 마는 현재의 가장 명징한 순간들을 되찾게 해준다. 우리는 늘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들의 기억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다.
「나의 프루스트 씨」는 그 지난한 대립 사이에 따뜻한 등빛을 키워 자신만의 잃어버린 시간을 반추하게 해준다. 그 불빛 속에서 차분히, 그리고 오래 이야기를 들은 다음 프루스트의 난해하고 두터운 걸작에 다시, 손을 뻗어보시라. 눈에 핏발이 서게 만들던 문장들이 불현듯 감각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며 소름끼치도록 살가운 기억들을 일깨워줄지 모른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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