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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山門), 치인리 십번지 |  | |
| 치인리 십번지에 사는 스님들 이야기
책 제목의 ´치인리 십번지´는 해인사의 주소이다. 우리 나라 거대 사찰 해인사에 무슨리 몇번지라는 속인들의 주소가 있을 줄이야. 250여명의 스님들이 살고 있으며 팔만 대장경이라는 국보를 보유한 해인사의 주소는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현재 해인사에서 수행중인 현진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참으로 신기하다.
스님들에게는 병역 특혜가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스님들이라 하더라도 영장을 받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거기다 예비군 훈련에 민방위 훈련, 그리고 소방 훈련까지 받는다. 똑같은 수천 켤레의 고무신을 구별하기 위해 ‘나이키’ 상표를 그려 넣기도 하고, 당직 업무를 하면서 방이 추워 몰래 장작을 넣었다 노스님께 들켜 혼쭐이 나기도 하며,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스님들 삭발하는 날의 풍경, 김장하고 문풍지 바르는 산중의 겨울 채비, 3시에 기상해 9시에 취침하는 스님들의 빽빽한 하루 일과, 용맹정진 중 한 스님이 심하게 앓자 ´죽어도 이 방에서 죽으시오´라고 다그쳤다는 일화 등이 생동감 있게 펼쳐져 마치 한 편의 ´VJ특공대´를 보는 것 같다. 책은 담 높은 해인사의 이쪽 저쪽을 담아내 그 깊은 속내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역시 스님이다. 빨래를 통해 독신 수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해우소에서 버림의 의미를 되새기며, 차 한 잔을 머금고서도 감성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은 일상적인 일에서조차 수행을 이끌어내는 영락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또 현진 스님은 중간 중간 선문답을 주고받는 여러 대스님들의 일화를 들려주며 독자들에게 사색할 거리를 제공한다.
자동차를 몰고 컴퓨터를 하고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스님들이 살아가는 산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현진 스님.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더도 덜도 아닌 한국 불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오늘도 수많은 스님들은 첫번째 화살을 맞는 인간에서 출발해 치인리 십번지 혹은 무슨리 몇번지에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수행중인 것이다.
˝나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답다, 아프면 아프다고 느낀다. 이것은 첫번째 화살이다. 나도 범부들과 똑같이 처음의 화살은 맞지만 첫번째 화살을 맞는 그것으로만 끝나고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은 두 번째 화살까지도 다 맞는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그 아름다운 꽃을 내것으로 만들었으면 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또 아프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분노의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처럼 너희들은 첫번째 화살에 이어 두 번째 화살에도 맞아버리는 것이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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