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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의사들의 감동 만들기 |  | |
| 1986년 8월 27일 명문 홍콩 중문(中文)의대 신입생 셰완원(謝婉雯·여·36)은 입학 첫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
다. “의대에 입학한 것은 사회와 서민들을 위해서이며, 나는 앞으로 가진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바칠 것
이다.”
17년 후인 지난 5월 13일 그녀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치료 도중 감염돼 투병생활에 들어
갔지만 끝내 사망했다. 그녀는 굳이 사스치료에 나서지 않아도 됐던 자원봉사 의사였다. 사망 10여일이
지났지만 홍콩에는 한 자원봉사 여의사의 의사정신, 여전히 사스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의료진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제 간호사의 날’이던 지난 12일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인들은 역시 사스치료 도중 사망한 남자 간호사
‘류융자(劉永佳)’ 영정(影幀) 앞에서 통곡했다. 그는 정부 병원 의료진 중 첫 희생자였다. 시민 대표들은
추도사를 바치면서 마스크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훔쳐야 했다. 둥젠화(董建華) 행정수반도 손수건
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면서 행사장을 나갔다. 지난 29일에는 롄허(聯合)병원 건강 보조요원인 덩샹메이
(鄧香美·36)도 영결식 후 땅속에 묻혔다.
요즘 홍콩 거리 곳곳에는 ‘당신들을 치하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격려사가 붙어 있다. 시민들은 의료진
을 접할 때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험악한 사이버 공간도 변했다. 정치적 말장난, 입장이 다른 상대
방에 대한 음해와 비난, 도색(桃色)사진과 글귀들 대신 따스한 인간의 정(情)을 교감하려는 아름다운 말
들로 가득찼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작은 천사. 자신을 팽개치고 환자를 돌보던 그 사랑, 너무 고맙
습니다.”(Dr. Tse) “당신들은 진선미의 전형”(Julis)….
홍콩에는 지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엘리트들의 도덕적 책임) 정
신이 무너질 것 같던 홍콩을 되살리는 ‘국가부활’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 언론들도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고, 단합하기는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사스와의 전쟁’ 2개월 반 동안 홍콩 의료진 감염자는 400여명에 육박, 전체 환자 5명 중 한 명꼴이 넘었
다. 숫자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은 투철한 의료정신이었다. 단 한 건의 진료거부도 없었고, 치료 중 감염
돼 병상에 누웠다가 회복한 의료진들이 병원으로 재차 달려가는 투혼에 시민들은 연일 목이 메었다.
희생정신은 실추된 홍콩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홍콩 한국 교민사회
의 화제도 홍콩 의료진들의 희생정신과 1700여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의료시스템이다.
한국 상공회의소는 ‘홍콩 축복대행진’ 자선행사를 열었다. 한 교민 자녀는 예금통장을 깨 사스피해자를
위해 쾌척했다. 이는 홍콩 의사들의 희생정신에 감복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의료 정신에 감복한 각
국 외국인들도 ‘우리는 홍콩을 사랑한다(We Love Hong Kong)’는 캠페인, ‘우리는 극복할 것(We Shall
Overcome)’이라는 합창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네 번째 구절이다. 선서는 ‘나는
인종·종교·국적·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다’로
이어진다.
홍콩인들은 가장 힘든 곳에서 든든히 버티고 서 있는 ‘엘리트 책임의식’(노블레스 오블리주)을 생생히 확
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무너질 것 같던 홍콩은 그들 덕분에 기적처럼 부
활하고 있다.
(홍콩=이광회 특파원/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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