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1923년 9월 1일 <송재찬> |  | |
| 저기다! 잡아라!
어둠 속에서 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막으며 도망가고 있었다. 잡아라. 소리가 내 발목을 잡을듯이 쫒아오고 있었다. 에잇! 잡았다! 앞쪽에서 느닷없는 몽둥이가 어깨를 때렸다. 앗! 내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발길질. 발길질 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몽둥이로 나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살려줘. 제발 이러지 마. 이건 놀이가 아냐.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의 발길질과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미 쓰러져 차가운 흙처럼 엎드려 있었다. 누구야?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내가 소리치자 어둠 속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구냐구? 하하하-˝
그 소리와 함께 한 아이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전체적인 얼굴은 여전히 어둠에 싸인 채 두 눈만 보였다. 그 얼굴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을 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냐구? 하하하-˝
또 한 사람의 얼굴이 두 눈만을 보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소리가 날 때마다 소리는 두 눈의 모습만 드러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모든 소리가 사라졌을 때 나는 내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주 먼 곳에서 웃음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들려왔다. 긴 금을 그으며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웃음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꿈이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런 꿈은 첨이라는 생각을 했다. 깨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지만 얼마나 힘이 들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 애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나를 죽일듯이 때리고 짓밟던 어둠 속의 그 애들.
몇 시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말고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여기가 어디지? 낯선 방에 내가 누워 있었다. 낯선 유리문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래, 우린 어제 이사를 했지.
이상하게 또 한숨이 나왔다. 그래. 우린 이사를 했어. 아빠의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독립 공원이 있는 동네라고 했어.
감미로운 잠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한 잠을 더 자고 일어나야지.
˝조심해. 새 친구들 만나서 잘난 척하지 말고.˝
아침 밥상에서 꿈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금새 어두운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래. 너무 설치지 말고 며칠은 성질 죽이고 지내거라. 너무 잘난 척하지 말고. 말도 아끼고. 잘 난척한다고 두들겨 맞을라.˝
아빠는 더 길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럴 생각이었다.
˝괜찮다. 개꿈이야. 나도 어릴 때는 무서운 꿈을 꾸면서 자랐어. 남자 가 할 말은 하고 지내야지. 전학 왔다고 기 죽을 것 없다. 누가 뭐라 고 하면 전화해라. 내가 달려갈 테니.˝
내 편을 드는 할아버지는 젊어진 얼굴이다. 아빠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범아, 좋지? 태릉에 살았음 잠도 잘 못자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 고 또 막히는 출근 길 때문에 짜증이 날텐데. 이제부터는 잠을 실컷 자거라.˝
하고 어린애처럼 좋아하신다.
새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 죽을 것 까지는 없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세째 시간, 축구를 하고 나면서부터 나는 단번에 스타가 되어 전학 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천호야, 너 정말 축구 잘한다. 이번 일요일, 5반하고 시합이 있는데 이제 우리 반이 이기겠어.˝
˝5반 명기보다 더 잘 한다. 하느님이 우릴 도왔어.˝
남자 아이들은 너나 없이 천호야, 천호야 하며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 새 담임 선생님도 나를 눈여겨 보는 게 분명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그건 개꿈이야.
첫 날임에도 학교 공부가 끝났을 때 나는 웅영이란 친구와 교문을 나섰다. 웅영이는 반장이면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타입의 아이인게 분명했다.
˝천호야, 너 독립 공원 구경 안 했지?˝
웅영이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막 사귄 아이지만 웅영이는 아주 진지한 아이다. 말투부터 어른스럽다.
˝아직.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가자. 내가 안내할게.˝
˝좋아.˝
나는 웅영이가 좋아졌다. 그는 아는 것이 많았는데도 조금도 거만하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런 말을 하는데도 그게 밉지 않았다.
얼마쯤 걷자, 큰 길이 나왔다.
˝저기야. 가깝지?˝
가게가 즐비하게 서있는 큰 길에 서자 길 건너가 독립 공원이었다.
우리는 독립문과 서재필 동상과 사형장과 유관순 굴이라는 지하 여자 감옥같은 것을 보았다.
˝여긴 본래 우리 독립군을 잡아 넣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지은 감옥 소였대. 나중에는 그냥 일반 죄수들이 갇히는 구치소였다가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어. 나는 일제가 우리의 조상을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죽인 줄 몰랐어. 그런데도 우린 벌써 그걸 잊어버린 것 같애.˝
웅영이는 마치 선생님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저 건물은 뭐니?˝
˝전시실이야.˝
전시실은 약간 어두웠다. 잘 꾸며진 바깥하고는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1층 전시실에는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하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일본군인들은 한국, 중국,소련,몽고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생체 실험.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다 놓고 죽이는 실험을 했던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빨리 잔인하게 죽이나 하는 실험. 그 실험은 서른 가지가 넘었다. 얼려 죽이고 말의 피를 사람 몸에 주사하기도 하고 총탄의 효능을 실험하는데도 쓰였다. 그게 일본 사람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생체 실험을 하는 그림들을 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관동대지진의 기록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관동대지진?˝
일본군의 생체실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관동대지진 이야기는 첨이었다.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웅영이는 나를 조용히 끌어 설명문이 써 있는 앞에 세웠다.
1923년 9월 1일 정오. 7.9의 굉장한 지진이 일본의 관동 지역을 급습-건물이 넘어지고 길이 묻히고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묻혔다.- 도쿄가 포함되어 있는 관동 지역에는 대혼란이 온다. 지진이 발생할 때 점심을 준비하던 불들이 바로 대화제로 연결되어 도시는 지진과 함께 불길 속에 묻히고 만다. 일본 정부는 전전긍긍- 불안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그 때 돌연 어디선가 이런 소문이 들려 온다- 조선 사람들이 지진의 틈을 타 일부러 불을 지르고 다닌다.-일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타 놓고 있다-그렇지 않아도 지진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은 눈이 시뻘개진다- 조선 사람을, 조선 사람을 잡아라!-마을 마다 조선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한 ´자경단´이 조직된다.
누가 만들어낸 유언비어일까? 조선사람들은 어디서나 쫒기기 시작한다. 곧 피비린내 나는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진다-
곧 산더미같은 시체가 쌓인다. 일본 사람들에게 잡혀 죽은 사람들이다. 일본 사람들도 조선사람으로 오해 받아 죽은 사람이 있었다.
웅영이가 설명문을 읽는 내 옆에서 간간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문에 없는 것까지 그 애는 알고 있었다.
˝이게 다 그 때 죽은 우리 나라 사람들 시체들이야. 얼마나 많이 죽 였는지 나중에는 그만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려왔다는 거야.˝
웅영이는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시커먼 흑백 사진들 속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집들과 여기 저기 짐승처럼 포개진 시체들 뿐이었다. 조선 사람들을 잡아죽였다는 ´자경단´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넌 언제 이런 것까지 다 공부했니?˝
˝우리 아버지, 고등학교에서 국사 가르쳐. 나랑 여기 자주 와.˝
˝이 사진 좀 봐. 정말 불쌍하지?˝
나도 뭔가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 때였다. 입을 열다말고 나는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학살된 조선인 사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베어져 버려진 나무들처럼 아무렇게나 쓰러져 죽은 사람의 한 얼굴이 내 마음을 찡하게 잡아끌었다.
할아버지 얼굴이랑 똑 같애.
나는 사진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얼굴. 흑백으로 처리되어 잘 알 수 없는 얼굴. 그러나 흑백이기 때문에 더욱 잘 알 수 있는 얼굴 특징이었다. 그 얼굴은 아주 야위어 있었다. 거기에 살만 붙이면 우리 할아버지랑 똑 같은 얼굴이 될 게 분명했다.
우리 조상도 관동 대지진 때 죽었을까?
나는 갑자기 전시실 안의 사진들이 새롭게 보였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보였던 시체들이 여기 저기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 왔다.
숨이 막히면서 천천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꿈. 이사 오던 날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숨이 툭 끊어질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2층에도 볼 만한 게 있어.˝
웅영이가 끌었지만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보겠어. 비참해서 더 이상 못 보겠어.˝
우리는 나무 그늘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웅영이가 뭐라고 했고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에 충격을 받았댔어. 아빠의 이야기로는 그 당시 일본의 소학교에선- 소학교는 초등학교야.- 조선 사람을 때려 죽이는 놀이도 있었대. 아이들까지도 우리 나라 사람을 때려 죽이는 놀이를 했다는 거야.˝
˝뭐라구? 그게 정말이니? 한국 사람들을 잡아죽이는 놀이를 했단 말 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랬대. 어른들은 실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아이들은 그것을 그대로 본받아 놀이를 하고.˝
그렇구나. 너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내가 그 꿈을 꾸었구나. 나는 그제서야 꿈이야기를 했다. 날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문득, 어디선가 살려줘!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웅영이는 내 꿈 이야기를 놀란 얼굴로 듣고 있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그 애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내가 이상했다. 내가 정말 그런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정말 우리 나라 사람들이 관동 대지진 때,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타 넣었을까?˝
˝유언비어였대.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그럼 아무 잘못도 없이?˝
˝나라를 빼앗긴 죄지. 아빠가 그랬어.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하지만 마음을 놓아선 안 되는 친구가 일본이래.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잖아.˝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만들어 냈을까?˝
˝몰라. 그냥 우리 나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고......˝
˝일본 정부는 아니겠지?˝
˝누구였다고 딱히 말할 수 없어. 그러나 나는 일본 정부도 의심스러 워. 정신대 문제도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잖아. 심지어는
우리를 식민지로 삼은 것까지 우리를 위해서라고 우기는 그들이 니까.˝
웅영이와 헤어져 집으로 가다 말고 나는 다시 독립 공원 전시실로 되돌아 갔다. 들어서자 마자 한 장이 사진이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그 사진 앞에 섰다.
학살된 조선인의 사체-장소 불명
쓰러져 오래된 나무처럼 죽어 있는 한 사람. 아무리 봐도 그 얼굴은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 사진에 붙잡힌 사람처럼 오래 오래 서 있었다.
˝문 닫을 시간이다.˝
아저씨 한 분이 전시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전시실에는 나 뿐이었다. 해는 떨어진 것일까. 아저씨 얼굴에는 저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전등 불빛이 들어와 있었는데도 전시실은 왠지 어둡고 음산해 보였다.
나는 돌아서며 자꾸 뒤돌아보았다. ´학살된 조선인의 사체´가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다시 올게요.˝
나는 사진 속의 사람에게 말했다.
˝그래, 나중에 다시 오렴. 6시까지다.˝
전시실 아저씨가 문닫을 준비를 하며 말했다. 밖은 어느새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어둠이 밀물처럼 빠르게 몰려오고 있었다.
세상이 연두빛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우리 마당에 있는 자귀 나무도 푸르고 섬세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기 시작했다. 섬세하고 녹색인 잎이 잘 차려 입은 자귀나무의 옷이라면 자귀나무의 그늘 역시 안 보이는 옷이었다. 눈에 보이는 푸른 옷도 좋지만 나무 밑으로 드리워진 안 보이는 옷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특히 그 옷을 좋아했다. 자귀나무의 눈에 안 보이는 옷-푸른 그늘에는 전 주인들이 쓰던 깔끔한 나무 탁자가 있다.
나는 할아버지와 그 탁자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모임이 있어 나가시고 나는 숙제를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누구를 닮으셨어요?˝
나의 물음이 뜬금 없었던지 할아버지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지만 나는 모르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아버 지라. 아버지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가셨거든. 내가 두살 때라고 했어.˝
˝어디로 가셨는데요?˝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일본으로 가셨나요? 하는 물음을 나는 꼴깍 삼켰다.
˝그 때는 일제 시대였지. 모두 살기가 힘들었어.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들었지. 우리 아버지는 돈을 번다고 집을 나가서 그만이었어. 일본 으로 건너 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모르지. 해방이 되고 많은 사람 들이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어. 어머니와 할머니가 나 를 키웠지. 늘 아버지가 보고 싶었단다. 자랄수록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컸지. 이상한 일이야. 결혼해서 너희 고모며 니 아버지가 태어났는데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거야.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하고 서늘했어. 이제야 알게되었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사람은 어른이 되서도 그 그리움이 메꾸어지지 않는다는 걸.˝
˝할아버지, 그럼 지금도 아버지가 보고 싶단 말예요?˝
˝그럼. 아침에 눈을 뜨면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걸.˝
˝지금도요?˝
˝그래, 지금도. 나이로 따지면 돌아가셨겠지만, 내 마음에는 어렸을 적 내 마음에 새겨진 아버지만 남아 있어. 할머니랑 어머니랑 같이 기다리던 아버지….˝
할아버지 눈가가 반짝 빛났던 것 같다. 나는 일어섰다.
˝할아버지, 전 들어갈게요. 야구 중계할 시간이거든요.˝
나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2층 내 방에 몸을 숨기고 할아버지를 내려다 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앉아 계셨다.
저런 할아버지에게 독립 공원의 사진을 보여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부르는 끊임없이 소리가 들려온다. 독립 공원에 다녀온 다음 날 부터였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그 소리는 들렸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은 독립 공원이었다. 나를 부르는 것은 사진 속의 그 사람이다. 할아버지를 닮은 그 사람.
나는 그 후 자주 독립 공원에 다녔다. 전시실에 가면 나는 곧장 ´학살된 조선인의 사체´ 앞으로 간다. 볼 수록 그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를 닮았다. 나는 자주 그 앞에 서서 있다 오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전시실에 들어 서다 말고 멈칫했다.
내(?) 사진 앞에 누가 서 있었다. 눈에 익은 등 모습. 나는 거기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본 것이다.
나는 돌아섰다. 왜 그랬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할아버니는 그즈음 말을 않고 지내셨다. 그리고 자주 독립 공원에 다니시는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할아버지와 맞딱뜨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그 사진 앞에 서 있는 것을 나는 두번 더 보았다. 그 때마다 나는 돌아서서 밖의 긴 의자에서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 사진 앞에 서있다 나가시곤 했다. 나가실 때 할아버지는 휘청거렸다.
할아버지는 더욱 말이 없이 지냈다. 부쩍 늙어지셨다. 그리고 자주 아프셨다.
토요일이었지만 나는 늦게서야 교문을 나섰다. 반 대항 축구 시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 이긴 시합에서 내가 자살골을 넣었기 때문에 나는 몹시 언짢은 기분으로 교문을 나왔다. 그 자살골로 동점이 되었고 끝내는 승부차기로 우리 반은 지고 말았다. 결승까지 올라 가는 동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찬사가 순식간에 칼끝같은 비난이 되어 내 마음을 도려냈다. 그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내 몸을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그냥 주저 앉고만 싶었다. 내 마음처럼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해는 지지 않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감춘 채 하루를 마감할 모양이었다. 우리 팀의 누구도 떡볶이를 먹고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서로 등을 돌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힘없이 집으로 향하는데 문득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들리지 않는 그 소리. 땅 속 어디선가 흐르는 물을 찾아 떠나는 사람 처럼 나는, 그 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힘 내. 그것보다 힘든 일이 얼마나 많다고. 그만한 일에 축 쳐지 니?˝
독립 공원으로 들어설 때, 나는 그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나는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은 어둡고 눅눅했다. 사방에 걸려있는 지진 사진과 조선 사람들의 시체들 때문에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학살된 조선인의 사체´ 앞에 섰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할아버지, 저 때문에 졌어요. 제가 자살골을 넣었거든요.
내 눈이 뜨거워지더니 그렁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사진 앞에 서 있었다.
˝문 닫을 시간입니다.˝
문께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마음은 이미 돌아섰지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 때였다. 누가 뒤에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할아버지!˝
나는 너무 놀라 킁 하고 주저 앉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만나서가 아니었다. 사진 속의 사람이 내 등에서 나를 감싸 안은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똑 같았다.
˝할아버지, 저 사진......˝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일 오십시오. 문닫을 시간입니다.˝
전시실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등을 하나씩 끄며 말할 때였다. 누가 급히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주춤했다.
˝아빠!˝
˝에비야!˝
˝아버지,천호야!˝
아빠였다. 아빠는 멍한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문닫을 시간인줄 알면서도 전시실을 찾은 아빠.
˝아버지, 알고 계셨어요?˝
아빠가 비밀을 이야기하듯 아주 낮게,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불이 꺼지고 우리 세식구는 어두운 전시실을 나왔다. 1923년 9월 1일. 우리 증조 할아버지는 이렇게 어두운 데 숨어 있다가 당했을까.
˝아버지, 그 사진 속의 남자 분이 정말 제 할아버지일까요? 돈 벌러 가셨다는.....˝
전시실 밖의 긴 의자에서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에게 묻고 있었다.
˝그럴 지 모르지. 그러나, 그 분의 내 아버지가 아니어도 아버지나 마찬가지지. 우리 조선의 아버지들은 모두 그렇게 일제에 당했으니 까. 근데 우린 그 동안 그런 일들을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 같구나. 나부터도… 일본 사람들은 나라 곳곳에, 원자 폭탄 맞은 걸 잊지 않 기 위해 여러 가지 구조물들을 세워놓았다던데. 그들이 가해자가 아 니고 피해자처럼 말이다. 자, 가자.˝
할아버지가 일어서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일어서며 아버지 손을 잡았다. 우리 삼대의 마음을 잡아 끈 사진 속의 그 사람. 그 많은 사진 속의 사람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잡아끈 그 분은 정말 나의 증조할아버지일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게 없이 뒤 돌아 보았다. 그 분이 누워있는 전시실은 캄캄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누워 우리를 지켜보는 그분의 마음을 느꼈다. 그 분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우리 집 남자들을 모두 그 앞으로 불렀다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
할아버지의 건강은 눈이 부실 정도지만 엄마, 아빠는 늘 조심스렇게 지켜 보고 있었다. 노인들의 건강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게 아빠의 말이었다.
정말 할아버지의 건강은 믿을 게 못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쓰러져 입원실로 옮겨졌고 병원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제 저희들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준비를 하셔야겠는데요.˝
하고 의사는 힘들이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준비. 그것은 죽음을 위한 준비였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모셔서 눈을 감게 해드릴 것인가-의사는 그것을 물었던 것이다.
˝집으로 모셔가겠습니다.˝
아빠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자귀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분홍과 하얀 깃털을 생각나게 하는 자귀나무 꽃은 먼 나라의 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분홍과 하양의 깃털 핀을 꽂은 먼나라의 공주.
나는 집을 나서며, 우리 마당을 푸른 그늘로 만드는 자귀나무를 보았다.
자귀나무는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를......내 눈 앞으로 꽃상여의 꽃들이 하늘거리며 나타났다. 꽃상여는 내가 도리질을 하자 푸른 하늘로 묻혀 버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할아버지는 일어나실 수 있어. 나는 징검다리의 돌을 다른 돌로 바꾸어 놓듯이 생각을 바꾸어 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며칠 째 혼수상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은 맑았다. 며칠 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푸른 물빛이었다.
그 하늘처럼, 할아버지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우리를 찾았다.
˝천호야, 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또렷한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많은 한을 품고 죽었지만 그 한을 너희들이 풀어줘야 한 댄다.˝
할아버지는 비장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할아버지의 영혼을 절로 모셔서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 면 할아버지도 끝내 한을 풀으실겁니다.˝
불교 신자인 아빠의 말을 할아버지가 끊었다.
˝아니다. 절에 모시는 것 보다 너희들이 잊지 않으면 되는거다. 우리 아버지, 너의 할아버지, 천호의 증조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 가셨는 지 잊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하셨다. 잊,지,않,으,면….˝
할아버지는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하늘은 새로운 백성을 맞아들이기 위해 푸른 물감을 칠하고, 우리 마당은 떠나는 주인을 위해 화려한 자귀나무 분홍꽃을 피웠다.
˝아버지!˝
˝할아버지!˝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푸른 하늘로 날아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길은 너무 멀어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장사를 지내고 세번째 제사를 지내는 삼우제 날. 우리는 산소에 가서 절했다. 산소는 죽은 분들의 집이라는 데…할아버지의 새집은 잔디가 자라지 않은 벌거숭이 흙집이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와 보니 웬 신사가 우리 대문간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가 간서끄상의 아드님이 사는….˝
신사는 멀쩡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혀짧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제 아버님이 강자 석자 금자…˝
순간 신사는 아버지를 와락 끌어 안았다.
˝그 분이노 아지노 사라 계시니까?˝
나는 그가 일본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그 때서야 알았다.
신사는 일본에서 건너온 교포였다. 증조 할아버지의 친구였던 김진형씨의 손자.
그가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와 강석금 할아버지는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강석금 할아버지는 관토진제(관동 지진)때 불량 선인(나쁜 조선인)으로 몰려 돌아가셨지요. 우리 할아버지는 마음씨 좋은 일본 사람을 만나 용케 목숨을 건졌는데 강석금 할아버지는 조선 사람들을 사냥하던 자경단 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내 귀에는 아뭇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졸고 있었다. 내가 졸다가 번쩍 정신을 차렸을 때
˝이게 강석금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입니다. 저금통장과 일기장과 그 리고 사진이 있습니다.˝
그날 우리 집 세 식구는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소리내어 읽었고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간 증조 할아버지는 일본 사람들이 받는 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을 받았고 그 돈을 모으기 위해 허리 띠를 졸라매었다. 할아버지는 일본 사람들 보다 더 일을 잘하는 데도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반 정도의 임금만 받았다고 적고 있었다.
일기에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디쯤에서 나는 잠이 들었을까. 나는 잠 속으로 들어온 길을 따라 독립 공원으로 걸어갔다.
내가 전시실로 들어서자 사진 속의 그 분이 부시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전시실의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그 설명문을 읽는 동안 할아버지가 들어와 등 뒤에 서고 아버지도 등 뒤에 섰다. 어느 사이에 엄마도 서 있었다.
사진 속의 그 분이 설명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우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 관동 대지진과 함께 희생된 수천, 어쩌면 수만일지 모를 동족의 가엾은 죽음을 뒤늦게 나마 우리는 어루만져야 한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