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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나라 <송재찬> |  | |
| 아빠는 나에게 혼자 잘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잘 수 있고말고요. 오늘부턴 꼭 내방에서 잘 거여요. 새 침대에서요.˝
소원이던 내 침대를 들여온 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들뜬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아빠, 엄마가 안 계셔도 집을 지키며 잘 수 있느 냐, 묻는 거야.˝
˝네?˝
˝혼자선 무섭겠지?˝
´네, 혼자선 무서워요.´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무섭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빠 말 마따나 나는 어리지만 사내 대장부가 아닌가.
˝아빠, 왜 그런걸 물어 보셔요?˝
˝아빠와 엄마가 갑자기 제주도에 다녀올 일이 생겼단다. 세계 식물학자 회의가 그 곳에서 열리거든. 내일.˝
˝내일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어서는 나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어린이날이라는 것도 깜박 잊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비행장으로 떠난 후에야 나는 어린이날을 생각해 냈습니다.
´에이 참 며칠 전부터 생각한 어린이날인데, 이번 어린이날 에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혼자 놀랐습니다.
´아빠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새 침대. 그것은 바로 내가 원했던 선물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빠와 엄만 어린이날 선물로 내 침대를 사온 게 분명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나는 무서웠습니다. 집이 더 커 보이고, 마치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은 더해졌습니다. 전화벨 소리마저도 내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동욱이었습니다.
˝뭐라고? 오늘 집에서 혼자 자? 그럼 나도 갈까? 뭐? 무섭지않아? 목소리엔 무서움이 잔뜩 끼었어. 호수야, 기태에게 전화해서 갈 수 있으면 같이 갈게. 우리 엄마가 허락하시면 말야.˝
˝알았어. 올려면 빨리 와. 난 일찍 자니까.˝
˝자식, 끝가지 무섭단 소리 안 하는구나.˝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동욱이와 기태가 온다면 걱정이 없습니다. 우린 소문난 삼총사입니다.
해가 떨어졌을 때 동욱이와 기태가 달려왔습니다. 나의 무서움은 금세 사라져 버렸습니다.
텔레비전을 싫증이 나도록 봐도 오늘은 잔소리를 할 사람이 없습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라고 선생님은 숙제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우린 웃고 떠들다가 나란히 누웠습니다.
동욱이와 기태는 곧 잠들었지만 나는 웬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얼굴이 떠오르고 아빠 얼굴이 떠오르고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돌아누웠습니다. 야광 시계가 밤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자야지.´
나는 다시 돌아누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습니다. 내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곧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불을 붙잡았습니다.
´내 몸만이 아니야. 우리 집 전체가 떠오르고 있어.´
분명히 우리 집이 모두 붕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동욱이와 기태는 어느 새 일어나 창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들 모습은 희미했습니다. 어느 새 집안엔 짙은 안개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동욱아,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니?˝
나는 걱정스러워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가 말했지만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동욱아, 기태야, 아,아,아!˝
내가 다시 소리쳤습니다. 소리는 안개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해서 내가 그 곳에 도착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긴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더니 나는 어느 새 이상한 나라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곳은 우리 서울과 똑같은 곳이었습니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우리 동네인데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내가 막 우리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어. 누군가가…….´
발자국 소리는 안 들렸지만 나는 느낌으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몸을 돌렸습니다.
´아!´
나는 너무 놀라 주저앉을 것 같았습니다. 내 뒤를 밟으며 따라온 것은 바로 내 모습과 똑같은 아이였습니다.
˝누구니, 넌?˝
그 애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내 말도 소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누구야, 나하고 똑같이 생긴 너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을 때였습니다.
´난 또 하나의 너야. 만나서 반가워.´
그 애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애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말로 하지 않고 속으로 말했을 때 그 애 역시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알았다는 사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아냐, 여기선 말이 필요 없단다. 여기선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단다.´
´그래?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하니?우리 동네랑 똑같은데 소리도 없고 사람도 없어.´
´그건 네 눈에 안보이고 네 귀에 안 들려서 그래. 여긴 또 하나의 네가 사는 곳이야.´
´근데 왜 내가 여길 오게 되었니?´
´너를 여기 초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지. 어른들은 이 나라에 올 수가 없어.´
´왜?´
´어른들은 이런 나라를 믿지 않으니까.´
´나랑 같이 온 동욱이와 기태는 어디로 갔니?´
´그 애들도 지금 자신의 짝들을 만나고 있어.´
´동욱이랑 기태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보고싶어? 저 저기 봐. 동욱이가 보이지?´
그 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자 정말 동욱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동욱이는, 또 하나의 동욱이에게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동욱이는 내 친구인 동욱이보다 몸이 더 뚱뚱했습니다.
´얘, 저쪽 동욱인 왜 저렇게 뚱뚱하니?´
´우린 여기서 너희들의 마음을 마시고 살아. 너희들이 바른 마음을 가질 때 우린 가장 건강할 수 있단다. 저 동욱이 좀 봐,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려 뚱뚱해진 거야. 네 친구 동욱이가 앞으론 욕심 안 부리겠다고 자꾸 비는 모습 좀 봐. 그렇지만 동욱인 먹는 욕심,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나라의 동욱인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점점 뚱뚱해져 가고 있어. 저기를 좀 봐.´
그 애가 다시 다른 방향으로 손가락질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애가 가리키는 대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아~´
내 눈길이 닿은 곳엔 너무 뚱뚱해서 주저앉은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있고 어른들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낯익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수야,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바른 마음을 가져 줘. 저길 봐라.´
그 애는 다시 다른 곳을 가리켰습니다.
´기태다!
기태는 또 다른 기태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나라의 기태는 바짝 마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았습니다.
´기태의 짝이 왜 저렇게 야위었니?´
´인간 세상의 네 친구, 기태가 너무 게을러서 내 친구는 저렇게 야위고 말았어. 영양 실조야. 네 친구 기태가 계속 게으름을 피우면 내 친구 기태는 곧 쓰러지고 말 거야?´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니?´
´바로 너처럼. 그렇지만 나도 가끔씩은 뚱보가 될 때가 있어. 며칠 전 넌 엄마 심부름으로 빵을 사러 갔었지?´
´빵? 그래, 생각나.´
´넌 그 때 건널목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주웠어. 그리고 돈에 눈이 어두워 주머니에 슬쩍했지. 자기 친구가 잃어버린 돈인 줄도 모르고 말야. 그 때 너의 욕심 때문에 내 몸은 뚱뚱해졌어.´
´미안해.´
´다행히 넌 그 돈은 써 버리고 나서 괴로워했고 끝내는 오백 원을 모아 그 자리에 슬쩍 갖다 놓았어. 그래서 난 다시 날씬한 몸이 되었지. 네 친구는 일주일 전에 잃어 버린 돈을 다시 찾고 기뻐했단다. 그렇지만 그 애는 자기 돈인 줄도 모르고 파출소로 가지고 가더라. 그러니 그 애의 짝은 얼마나 건강한 몸을 가졌겠니?´
´그 애가 누구니?´
´네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 친구 혜옥이.´
´혜옥이? 그럼 내가 슬쩍했었던 돈은 혜옥이 돈이었어?´
´그럼,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 친구 돈을 슬쩍하다니. 내 몸이 얼마나 뚱뚱해졌는지 아니?´
갑자기 발밑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잘 가. 네가 떠날 시각이야.´
내 짝이 손을 흔들었고 내 몸은 어디론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전화벨 소리 때문입니다. 어느 새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뜬 나는 내가 이불 속에서 잔 게 아니라 방구석에 엎드려 잤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동욱이도 기태도 방구석에 엎드린 채 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저 하늘 어디엔가 있는 마음의 나라에서 떨어질 때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던 것입니다.
´이 우주 어딘가에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호수니?˝
제주도에서 걸려 온 엄마의 전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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