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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의악마들 |  | |
| 스무 해쯤 전에 내 꿈은 고고학자였다. 고고학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고고학,을 입속에서 굴려보곤 했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많았던 때가 아니어서, 나는 친척이 물려 준 아주 어려운 역사 책들을 한 자 한 자 겨우 읽어나갔고, 간신히 서점에서 엄마를 졸라서 구한 책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왔던 것은 지금 찾아 볼 수 없는 유적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전란에 불타 소실된 유적에 대한 안타까움은, 머리가 큰 다음에 신문과 방송 뉴스에서 듣는 유적의 훼손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의 근원쯤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가보고 싶은 유럽의 박물관에는 동쪽에서 ´허락 없이 빌어 간´보물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 유물들은 제자리에서 벗어나 포르말린으로 간신히 부패를 면하면서 멍한 눈으로 서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유물들을 되찾아 원래의 자리로 다시 옮기는 일도 마음 한켠에서 저어함이 일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마땅한 박물관도 없고, 관리의 소홀과 문화 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이 곳에 굳이 옮기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른다. 두렵다. 남이 맡아주겠다고 강제로 맡아간 자식이 이곳에서는 놀림받고 홀대받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피터 홉커크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중앙 아시아 유적들에 대한 탐험기이자 서구의 문화 약탈기이다. 이런 책을 서양의 작가가 썼다는 것도 참 기분 상하는 일이다. 이런 연구와 반성이 과연 유물 빼앗긴 곳에서는 얼마나 고민되고 있는지 생각하면 무척이나 우울하다. 지은이는 당조(唐朝)의 실크로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과 서를 이은 이 길은 두 문화를 연결하고 각 문화의 풍요로움을 반증하고 있다. 이 길은 그렇게 쉽게 접근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사막과 준령이라는 물리적인 위험과 곤란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차이, 재화의 통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도적떼와 같은 위험도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오랫동안 끊어졌고, 그 끊어진 길 위로는 모래와 사막이 덮쳐 당시의 영화(英華)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이 책은 그 끊어진 역사를 이어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불행하게도 그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정주민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의 집요한 의지와 수준높은 측량기술은 이 곳의 오랜 역사를 다시 이어주는 동시에 더이상 찾을 수 없도록 그 역사를 서구의 호사가들이 즐기는 호기심의 궁전으로 노략질 해갔다. 하여 이 책은 자기 선조들의 역사를 찾을 줄 모르고 무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를 빼앗기게 되는지에 대한 가슴아픈 글이다. 중앙 아시아를 거의 마지막으로 찾았던 미국인 랭던 워너의 말은 동서양인 모두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재 파괴 행위에 대한 윤리적 소감을 말하라면, 주저없이 이 장소를 훌렁 벗겨가 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 또 중국 군대가 이곳에 숙영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더 나쁘게는 모두가 예감하고 있는 무슬림 반란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아마 20년 후에는 이 장소는 방문할 가치도 없게 될 것이다.˝(317쪽) 이 말은 정확히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부끄럽고 마음 아프다. 번역도 깔끔하고, 세심한 주석도 돋보인다. 출판사는 독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도록 지도를 별지로 만들어 두었다.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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