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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록1 |  | |
| 『한정록』은 중국의 여러 책들에서 속세를 벗어나, 또는 속세안에서 부와 권력의 탐욕을 뿌리치고 은거하여 한가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기록을 뽑아 만든 책이다. 허균은 『한정록』에 실린 모든 글을 붓으로 한 글자씩 정성들여 종이에 옮겨 적었다고 한다. 하루 이틀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글을 필사한 허균은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우리는 서문의 한 구절을 통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날 언젠가 숲 아래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세상을 버린 선비를 만나게 될 때 이 책을 꺼내 서로 즐겨 읽는다면 내 타고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저버리지는 않으리라´. 그것은 바로 허균 자신의 산림(山林)으로 돌아가고픈 욕망의 표출이었을 것이다.구속을 싫어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허균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불여세합(不與世合)´ 즉,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허균은 역적 모의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여섯 번의 파직과 세 번의 유배를 겪었다. 순탄하지 못했던 삶은 허균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는 은둔 사상을 동경하여 4천 권이 넘는 중국 선가(仙家)의 서적을 발췌하여 『한정록』을 집대성하였다. ´한가로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책을 이리저리 들추며 읽으면서, 한가로움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울리되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上帝)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였노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즐거움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를 구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하생략)´[금뢰자] 『한정록』에 실린 일화를 통해 우리는 한가로움의 정취가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지 점점 깨달아간다. 또 다른 페이지를 넘겨본다. 가슴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고사성어가 깊이 박히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째깍 째각 들리는 시계의 초침소리에만 귀기울이며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한정록』은 따가운 일침을 가한다. ´거친 음식을 먹어도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누더기 옷을 입어도 몸만 따뜻하면 그만이고 불평과 불만도 시기가 지나면 그만이고, 탐욕과 질투도 나이가 많아지면 그만이오´라던 손방(孫昉)의 ´안락법´은 우리의 삶과 얼마나 멀어졌는가? ´강과 산, 바람과 달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주인´[소문충공집]이거늘, 우리는 한가로움을 벗삼고, 자연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수묵의 엷은 먹물이 한지의 결을 따라 스미듯, 선문답 같던 일화들은 소리내어 읽을수록 그 소리를 따라 내 안으로 스며들고, 난 그것들을 몸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인다. 그 순간, 나는 옛 사람들의 한가로운 인생의 정취와 감미로운 교감을 나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바쁜 일상 속에 찌든 지친 정신의 골짜기에 맑은 폭포수 같은 책, 삶에 파묻혀 버린 인생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책.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에게 『한정록』의 일독을 권한다. 인적 드문 숲 아래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나 또한『한정록』을 꺼내 서로 즐겨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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