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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규-울 줄 아는 꽃 |  | |
| 하늘이 맑게 갠 아침이었습니다 막 솟아오른 해님은 눈부신 햇살을 쏘아댔습니다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꽃밭에도 그 햇살이 팍팍 꽂혔습니다 햇살은 꽃잎 하나하나를
들추며 속속들이 파고 들었습니다
꽃들은 이슬로 금방 세수한 해맑은 얼굴을 햇살에 헹구며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다지 조용하지? ˝
˝모두들 늦잠을 자나 봐. 우리가 노래를 불러 잠을 깨울까? ˝
꽃들은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꽃들의 노래소리가 상쾌하게
아침 공기를 튕기며 퍼졌습니다 햇살을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져 갔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살랑바람이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살랑바람은 그러지 말라며
꽃들을 흔들었습니다
˝ 아서라! 노래를 부를 때가 따로 있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왜요? ˝
꽃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랑바람을 쳐다봤습니다
˝ 큰일 났어. 간밤에 하늘나라의 별님이 발을 헛디뎌 땅으로 떨어졌단 말이야 ˝
˝ 어마! 별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
˝ 지금 뒷산 다복솔 아래 누워 있단다˝
˝ 우리들이 가서 별님을 위로해야겠군요 ˝
꽃들은 저마다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꽃이라면 누구나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땅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별님을 만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혹 별님의
눈에라도 들게 되면 하늘나라에 함께 올라가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꽃들은 아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 너희들 가운데 누가 잘 우니? ˝
살랑바람은 꽃밭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며 은근하게 물었습니다
˝ 엉뚱하게 그건 왜 물어요? ˝
˝ 에잇, 그것도 몰라? 우는 꽃은 빼 버리고 우릴 별님께 데려가려는 거지 뭐. 그렇죠? ˝
˝ 걱정 마세요. 우리 중에 징징대는 울보는 없어요. ˝
꽃들은 마음이 들떠 멋대로 조잘거렸습니다 그러나 살랑바람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 별님은 울 줄 아는 꽃을 데려오라고 부탁하셨어 누가 잘 우니? 나랑 별님께 가자˝
˝ 예? ˝
꽃들은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뒤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도리질을 했습니다
˝ 아니, 왜들 그러냐? ˝
살랑바람이 다잡아 물었습니다
˝ 저희들은 울 줄 몰라요? ˝
꽃들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뭐, 울 줄을 모른다고? ˝
˝저희들이 언제 울어 봤어야지요.˝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꽃들은 늘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꽃을 귀엽게 여겼습니다
꽃들은 언제나 남의 비위를 맞추려 웃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 슬픔을
잊었습니다 아픔을 몰랐습니다 울음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 우린 이쁘게 웃을 줄은 알아요 고운 노래를 부를 줄도 알아요 어느 누구도 우리의 웃음과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별님도 우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우리를 별님께 데려다만 줘요 ˝
˝ 낸들 뭘 아니? 별님이 한사코 잘 우는 꽃을 찾으시는데...아마 꽃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나 봐 그런데 꽃들은 아무도 울 줄 모른다니, 이거 큰일이 아니냐? ˝
살랑바람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꽃들은 아무리 울려고 애써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죄다 텅 비어, 운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가를 모두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느 꽃이 말했습니다
˝그치라면 울 줄 알거야 ˝
˝ 누구 말이니? ˝
˝걸핏하면 찔끔거리고 미움을 받다가 꽃밭에서 쫓겨난 앉은뱅이꽃 말이야 ˝
˝ 아, 그 울보! ˝
꽃들은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 그 앉은뱅이꽃이 어디 사는지 아니? ˝
살랑바람이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 햇살도 잘 안드는 골목 모퉁이의 담 아래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
˝ 고맙다 ˝
살랑바람은 골목 쪽으로 힁허케 날아갔습니다
골목안에는 이제 겨우 몇 줄기 햇살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직 그늘이 두터운 담 아래에
샛노랗게 핀 꽃이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 네가 앉은뱅이 꽃이니? ˝
˝ 그래요 ˝
˝ 너 조금 전에 운 모양이구나. 아직도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 미안해요.˝
˝아냐, 괜찮아. 그런데 왜 울었지? ˝
˝날갯죽지가 부러진 나비가 금방 쉬어 갔어요 거미줄에 걸려 밤새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빠져 나왔대요. 얼마나 불쌍한지 함께 울었어요 ˝
˝어제도 울었니? ˝
˝ 어제는 생판 낯선 이곳으로 팔려 온 강아지가 찾아왔더군요 엄마가 그리워 낑낑거리는 모습이 너무 가여웠어요.˝
˝ 넌 날마다 그렇게 울기만 하니? ˝
˝ 아니죠 ˝
˝ 그럼 언제 웃어 봤니? ˝
˝ 앞집에 돌이라는 아이가 있어요 아버지는 돈 벌러 먼 사막 나라에 가셨어요 돌이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적마다 나에게 찾아왔어요 걔는 아버지께 장난감을 사 달라고 생떼를 쓴 것을 늘 부끄러워했어요 그런데 며칠 전 돌이 아버지가 검게 탄 얼굴로 돌아오셨지요 그 날 둘이서 정말 마음껏 웃었답니다 ˝
살랑바람은 잇달아 끄덕였습니다 그러다가 주걱같은 잎을 잡아끌며 재촉했습니다
˝ 나랑 같이 좀 가자 ˝
˝어딜요? ˝
˝별님한테 ˝
˝예! 제가 어찌 하늘나라에 가나요? ˝
˝ 그게 아니야 어젯밤 별님이 땅에 떨어졌단다 ˝
˝ 어머! 많이 다치셨겠군요? ˝
˝그래서 하늘 나라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꽃을 만나고 싶다는구나 ˝
˝ 나보다 아름다운 꽃이 많은데요......˝
˝아무리 고우면 뭐하니? 별님은 울 줄 아는 꽃을 찾으시는데 누가 울 줄을 알아야지 ˝
앉은뱅이꽃은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어쩌면 좋죠? 나는 이 응달진 골목을 떠나지 않겠다고 친구들과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뿌리를 깊게 내렸어요 난 한발짝도 옮길 수 없는 걸요˝
˝이 일을 어쩐담?˝
살랑바람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러다가 솔숲으로 급히 달려가 별님에게 앉은뱅이꽃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나는 꽃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하늘에 올라갈 수 있어. 나를 이 땅에서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꽃뿐이야˝
별님은 살랑바람에게 앉은뱅이꽃을 꼭 데려다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살랑바람이 골목으로 다시 돌아 왔을 때 한 움큼의 저녁햇살이 앉은뱅이꽃 위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별님과 무척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 저도 별님을 뵙고 싶어요 별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고요 하지만 여길 떠날 수가 없어요 ˝
앉은뱅이꽃은 안타까웠습니다 끝내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습니다 앉은뱅이꽃의 울음소리는 어느 꽃의 노래보다 맑고 깨끗했습니다 우는 모습 또한 어느 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살랑바람은 앉은뱅이꽃의 울음소리를 뒷산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별님이 있는 곳을 향해 자꾸자꾸 날려 보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갔습니다 먼 데서부터 어둑어둑해져 왔습니다 그 때 뜻밖에도 별님이 나타났습니다
앉은뱅이꽃과 살랑바람은 깜짝 놀랐습니다
˝ 네가 앉은뱅이꽃이로구나 고맙다 나를 위해 울어줘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단다 ˝
˝찾아갈 수 없어 마음이 아팠어요 ˝
˝그래도 살랑바람이 수고해 줘서 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나와 하늘나라로 가자꾸나˝
앉은뱅이꽃은 감격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응달진 골목에 살면서도 하늘의 별이 되려는 꿈을 늘 간직해 온 앉은뱅이꽃이었습니다 앉은뱅이꽃은 이 순간만은 자신을 위해 울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눈물이 흥건히 괸 눈을 들어 별님을 쳐다 보았습니다
별님은 웃음을 머금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앉은뱅이꽃은 떨리는 손으로 별님의 손을 마주잡았습니다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그러자 몸이 붕 떠올랐습니다 그 길로 곧장 별님을 따라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살랑바람은 저 아래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별이 하나 더 늘고 땅에는 꽃 한 송이가 사라졌음을 바람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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