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개미 나라 개미(김목) |  | |
| 파랗고 가느다란 팔을 잔뜩 벌리고 있는 떼잔디밭이 있습니다. 이른 봄이면 연분홍 빛깔 꽃으로 마치 산을 불태우는 듯하는 진달래 숲이 있습니다. 푸르스레한 이끼를 두르고 있는 곰바위가 있습니다. 늘 맑은 물방울을 돌 틈 사이로 솟구쳐 올리는 옹달샘이 있습니다.
바로 개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개미 나라의 궁궐은 곰바위가 있는 곳입니다. 궁궐로 들어가는 커다란 길이 곰바위의 곰발처럼 생긴 바위틈 새에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땅 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수십 갈래로 갈라진 작은 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길 하나하나에 개미 나라의 모든 건물이 지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여왕개미가 사는 궁궐이 제일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방문 앞에는 언제나 병정개미들이 창칼을 들고 지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알방이 있습니다. 아기개미가 될 때까지 보살펴 주는 애벌레방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먹이를 쌓아 두는 창고도 넉넉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식당도 있습니다. 개미 나라의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집도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습니다. 병이 나거나 아프면 치료를 해 주는 병원도 있습니다. 그렇게 온갖 건물이 쓸모 있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 난 우리 나라가 제일 좋아.˝
˝그렇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우리 개미 나라야말로 천국과 같은 곳이야.˝
모든 개미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개미 한 마리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개미 나라가 좋긴 뭐가 좋아? 생각해 보라구. 가끔 우리 개미 나라의 떼잔디밭에 놀러오는 토끼들을 보았겠지? 그 토끼들만 보더라도 흰 토끼, 잿빛 토끼, 검은 토끼 등 털 빛깔도 다르고 얼굴 생김생김도 다르지 않느냔 말야. 또 있어. 우리 옹달샘 물을 마시러 가끔 오는 노루 식구들을 보더라도 얼마나 멋있게 생겼느냔 말야. 얼굴만 보면 금방 누군 줄 알아볼 수 있기도 하고‥‥‥. 그런데 우린 뭐야?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모습으로 생겼으니 말야.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도 없는 데다, 그저 날마다 똑같은 일만 되풀이해야 하고‥‥‥.˝
개미 나라 식구들은 모두가 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개미 나라의 모든 식구가 한 마리의 개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이기도 하고, 네가 나이기도 하고, 또 너와 내가 우리이기도 하고, 우리가 너와 나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 한 마리의 개미가 조금도 틀리지 않고 다 똑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얘, 그런 소리 하지 말아. 우리에겐 위대하신 여왕님이 계시잖아.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잇게 해 주는 수캐미가 있고, 그럼 된 거야. 나머지의 모든 병정개미나 일개미는 다르게 생길 필요가 없는 거야. 우린 모두 똑같은 모습이니까, 다 똑같이 열심히 일하면 되는 거야.˝
˝그래, 구태여 모두 다르게 생겨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수만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전부 다르게 생겼고, 이름이 있다고 해 봐. 우린 이름을 외우고, 틀린 얼굴을 익히느라 아무 일도 못 하고 죽게 될 거야. 안 그래?˝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모두 똑같이 생겼으니 망정이지, 모두 다르게 생겼다면 큰일날 거야. 다른 개미 나라 식구가 슬쩍 들어와도 구별할 수가 없을 테니 말야.
만약에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우리 편인지, 적인지를 알아내서 싸울 거야? 우리가 모두 서로 다른 얼굴을 갖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모든 개미들이 한 마리의 일개미에게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투로 이야길 했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의 일개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못난 것들, 너희들은 생각이 좁아서 그래.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다르게 생겼다는 걸 왜 모르느냔 말야. 하루만 보더라도 밤과 낮이 있지. 또 하늘에 떠 있는 것만 해도 해와 별이 있고, 또 달이 있다는 걸 왜 모르느냔 말야. 그리고 또 우리가 구해오는 먹이만 해도 어디 그게 한두 가지인가?˝
한 마리의 일개미가 불만스럽게 내뱉는 말에, 다른 개미들은 얼른 대답할 말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난, 여길 떠나야겠어.˝
한 마리의 일개미는 다른 개미들이 말릴 틈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난, 이제 한 마리의 개미야. 저 답답한 땅 속에 사는 똑같이 생긴 개미들이 아니야. 자, 보라구. 난 특별하게 생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개미야.˝
한 마리의 일개미는 당당히 가슴을 펴고 개미 나라를 벗어났습니다.
˝어딜 가는 거냐?˝
이따금 옹달샘에서 만났던 점박이 노루가 한 마리의 일개미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날 알아보는 거예요?˝
˝그럼, 넌 저 곰바위 밑 개미 나라의 일개미잖아.˝
˝어떻게 그걸 알았지요?˝
˝그야 물론, 너희들 곰바위 밑 일개미는 모두가 다 똑같으니까.˝
˝쳇, 난 그게 싫어요. 난 똑같은 일개미가 아니예요. 난 특별한 개미예요.˝
한 마리의 일개미는 뽀로통한 얼굴로 점박이 노루 앞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안녕, 일개미야, 그런데 어딜 가는 거지? 날도 곧 어두워지는데.˝
이번엔 떼잔디밭에 곧잘 놀러오는 잿빛 토끼가 일개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안녕, 잿빛 토끼님 !˝
종일 걷느라 지친 한 마리의 일개미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날 알아보는 거예요?˝
˝그럼, 내가 왜 곰바위 밑 개미 나라의 일개미를 몰라보겠어?˝
˝어떻게 알아보았지요?˝
˝아, 너희들은 모두 하나같이 똑같잖아. 그래서 척 보고 곰바위 밑 개미 나라 일개미인 줄 알았지.˝
˝쳇 , 멍텅구리같이…….˝
˝뭐, 뭐라고?˝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이번에도 한 마리의 일개미는 어이없어 하는 잿빛 토끼를 놓아 두로 그 앞을 떠났습니다.
곧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여기서 쉬어야겠어.´
한 마리의 일개미는 자그마한 돌틈 사이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습니다.
밤 하늘에 별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아, 춥고 배고파라!´
한 마리의 일개미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괜한 생각을 했나 봐.´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큰별, 작은별, 환하게 밝은 별, 작고 아름다운 별.
´저 많은 별들도 다 제각기 다른 이름이 있을 거야.´
한 마리의 일개미는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얘, 용감한 일개미야!˝
그때, 누군가가 한 마리의 일개미를 불렀습니다.
˝누구세요?˝
˝나야, 네 머리 위에 떠 있는 하나의 별이야.˝
작고 아름다운 별이었습니다.
˝아, 별님. 절 알아보세요?˝
˝그럼, 알고말고. 지난 번에 네 형제인 일개미 한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잖아. 모두들 어쩔줄 몰라 쩔쩔매는데, 네가 나서서 용감하게 건져 줬잖아? 그래서 난 널 잘 알고 있지.˝
˝우린 모두 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절 알아보셨어요?˝
˝그건 말야, 네가 특별한 일을 했기 때문이야. 아무리 모습이 같더라도 네가 한 일은 다른 개미가 한 일이 아니잖겠어? 넌 그때 죽음을 무릅쓰고 웅덩이에 뛰어들어 네 형제를 구해 낸, 어떤 개미보다도 용감한 개미야. 모습이 똑같다고 다 똑같은 개미라고 할 순 없는 거야.˝
한 마리의 일개미는 작고 아름다운 별이 왠지 모르게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졌습니다.
˝별님, 고마워요. 앞으로 별님을 친구로 생각하고 잊지 않을게요.˝
˝그래, 우리 친구가 되자. 이 수많은 별들 중의 나, 그리고 똑같은 모습의 수많은 개미 중의 너, 이렇게 둘이서 친구가 되자.˝
한 마리의 일개미는 작고 아름다운 별이 점점 커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 나라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커다랗게 빛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따스싼 햇살이 한 마리의 일개미가 잠들고 있는 돌 틈새로 끼어들었습니다.
한 마리의 일개미는 눈을 떴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 식구들과 내 모습이 똑같은 건 아무 것도 아냐. 내가 특별한 일을 하면 난 특별한 개미가 되는 거야. 가서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한 마리의 일개미는 길을 되짚어서, 곰바위 밑 개미 나라로 향했습니다.
˝야, 넌 심술꾸러기 일개미잖아. 어젯밤엔 어디서 보내고 이제 오는 거야? 네 형제들이 널 찾느라 야단법석인데.˝
잿빛 토끼였습니다.
˝날 알아보세요?˝
˝그럼, 너희들 모습이 똑같긴 하지만 넌 어제 심술이 잔뜩 난 얼굴로 나하고 얘길 했잖아. 그 심술꾸러기를 내가 왜 모르겠어.˝
˝미안해요, 잿빛 토끼님. 지금 우리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어. 넌 개미 나라 개미니까 개미 나라로 가야겠지. 그럼, 또 만나자.˝
잿빛 토끼는 깡총깡총 뛰어가고 한 마리의 일개미는 부지런히 개미 나라를 향해 걸었습니다.
˝야, 심술통 일개미야. 어디서 오는 길이니? 네 형제들이 바로 저쪽에서 널 찾고 있잖 아.˝
점박이 노루가 큰소리로 한 마리의 일개미를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무척 반가워하는 얼굴이었습니다.
˝노루님도 절 알아보는 거예요?˝.
˝그럼. 어제는 개미 나라의 똑같은 개미 한 마리였지만, 이젠 건방진 말썽꾸러기 개미가 됐으니 잘 알아 볼 수밖에.˝
˝미안해요, 노루님.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모습으로 생긴 것에 불만을 품고 우리 나라를 떠났는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 잘 생각했다. 넌 개미 나라의 개미니까.˝
한 마리의 일개미는 점박이 노루와 헤어져 곰바위 쪽을 향해 힘찬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별님은 날 금방 알아볼 거야. 앞으로 잿빛 토끼도, 점박이 노루도 날 금방 알아볼 거야. 착한 일개미, 용감한 일개미라고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열심히 일 해야지.´
한 마리의 일개미는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끝........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