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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소매치기 <손연자> |  | |
| 변두리에 있는 작은 파출소에 어린 소매치기가 끌려왔습니다. 대담하게도 넘어진 할머니를 일으키던 김 순경의 바지 뒷주머니를 슬쩍하다가 들켰던 것입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파출소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는 품이 파출소가 하나도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있던 정 순경이 턱짓을 했습니다. 뭐야? 그런 물음 대신이었습니다.
“아 뭐, 별거 아닙니다.”
김 순경이 어물쩍 가볍게 넘겼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던 정 순경은 동네에 좀 갔다 오겠노라며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무슨 급한 신고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발을 꼬고 앉아 파출소 안을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파출소는 작고 허름하고 우중충했습니다.
“흥!”
어린 소매치기가 입을 비틀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곤,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런 델 끌고 오는 거야?”
작고 허름하고 우중충한 파출소가 쩌렁 울리게 중얼거렸습니다. 좀 쉰 듯한 데다 쇳소리가 났지만 비쩍 마르고 껑충한 키에 비하면 애띤 목소리였습니다.
“순경 옆에만 서 있으면 다 소매치기란 말인가 뭐?”
‘말인가 뭐?’
라고 내뱉는 품새가 비쩍 마르고 껑충한 어린 소매치기를 당당해 보이도록 했습니다.
“짜식, 당돌한 척하기는.”
김 순경은 콧방귀를 뀌며 느긋한 태도로 모자를 벗어 벽에다 걸었습니다. 그러곤 거울 앞에 서서 모자에 눌린 머리를 매만진 다음 천천히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이름!”
“멀쩡한 사람 잡아다 놓고 이름은 왜 대라고 야단이람.”
어린 소매치기가 입속말로 중얼대며 등을 돌렸습니다. 곧이어 주전자 뚜껑이 열렸다 되닫히는 소리가 요란을 떨었습니다.
“이름이 뭐야?”
김 순경이 달래듯 물었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모른 척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더니 꼭지에다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이름!”
김 순경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린 소매치기가 화들짝 엉덩이를 들썩이는 바람에 물방울이 턱을 타고 목으로 지르륵 흘렀습니다.
“강, 춘, 섭.”
어린 소매치기는 윗몸을 빳빳이 세우고 군인처럼 말했습니다.
“나이?”
“스물둘.”
“나이!”
“열다섯.”
“너 맞을래?”
“여, 열셋.”
“주소?”
“그런 거 없어요.”
“없어? 그럼, 도망쳐 나온 고향 주소.”
“도, 도망이라구요?”
어린 소매치기의 얼굴이 핼쑥해졌습니다.
“그래, 인마. 니 얼굴에 다 써 있어.”
“전라남도 보, 보성군 득량면 송곡리.”
“득량면? 이거 원!”
득량면이라면 외가가 살던 곳입니다. 김 순경은 구시렁대다 말고 걸려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다시 따분해서 몸이 뒤틀린다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나 번짓수를 말하고 심드렁하게 선하품을 했을 때는 몹시 지치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칠이 벗겨진 창으로 3월의 봄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막 물이 오른 버드나무라도 쓸고 왔는지 봄바람은 푸릇푸릇 싱그러웠습니다. 어린 소매치기의 코가 벌름거렸습니다. 무슨 냄새인가를 맡으려 애를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콧방울을 여러 번 찡긋거리는 걸 보면 퍽 안타까운 것도 같았습니다. 갑자기 어린 소매치기의 눈이 맥없이 풀리며 멍청해졌습니다.
그때 어린 소매치기는 문득
‘이랴 이랴 어뎌뎌뎌!’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소를 모는 소리였습니다. 겨울잠을 깨기 시작한 논밭의 흙이 쟁기 밑에서 부드럽게 갈라지며 엎어졌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한쪽 엉덩이를 반쯤 들고 창 너머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파출소는 논이나 밭하고는 어지간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제야 코끝에 스민 싱그러운 바람결에 흙냄새 나는 풍경 하나가 묻어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쯤 고향 빈 들엔 들풀이 파릇이 솟았을 것입니다.
두 뺨이 훌쭉 패인 아버지는 목에다 때묻은 수건을 건 채 남의 논을 갈 것이고, 엄마는 자꾸만 굽어지는 등을 두들기며 봄나물을 뜯거나, 품삯 몇 푼에 종일토록 남의 집 일을 할 것입니다. 꼬질꼬질 가느다란 동생들 손목이 눈앞을 스쳤습니다.
소같이 큰 눈을 껌벅여 고향 집 풍경을 밀어 낸 어린 소매치기는 머리카락 속에다 다섯 손가락을 곤두세워 쑤셔 박고 벅벅 소리나게 긁었습니다.
“에이, 재수 없어.”
어린 소매치기가 불량을 떨었습니다.
“강춘섭.”
통화를 마친 김 순경이 턱짓을 했습니다.
“너 별이 몇 개냐?”
“벼, 별이요?”
“그래, 별.”
“별은 무슨 놈의 별. 쳇, 별 같은 소리 하시네.”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습니다.
“왜 이래? 소년원에 들락거릴 때마다 하나씩 늘었을 거 아냐.”
“글쎄 난 그,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이마에 보이지 않게 주르륵 달려 있을 별들을 들킨 것처럼 어린 소매치기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러곤 그걸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 자꾸 이마를 문질렀습니다. 김 순경이 껄껄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손자국이 나 있는 기다란 거울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습니다.
거울 속엔 어른이 되다 만 소년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파리하고 눈은 퀭하니 깊었습니다.
“휴우!”
김 순경 모르게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바람에 덜컹거린다 싶던 파출소 문이 빠꼼이 열리더니 곧 해맑게 하얀 얼굴 반쪽이 쏘옥 솟았습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똑같이 문 아래쪽으로 쏠렸습니다. 작은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마주 보았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뭘 도와 드릴까요?”
김 순경이 작은 아이의 허리를 담쏙 안아서는 머리 위로 치켜올렸습니다. 간지러운 듯 작은 아이가 쿠르륵 웃었습니다. 아이는 별들이 부서지는 소리로 연달아 웃었습니다. 어린 소매치기 입에도 덩달아 미소가 물렸습니다.
김 순경이 작은 아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습니다.
“아가야, 여긴 웬일로 왔니?”
아이는 방금 새로 신은 것 같은 운동화 발을 모아 가지런히 하더니, 김 순경 어깨에 잎사귀 계급장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런 다음 손보다 배를 먼저 쑥 내밀고는 손을 폈습니다.
“돈이구나!”
사탕이나 개미나 풍선밖에는 만지지 않았을 작은 손에 착착 접힌 천 원짜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까까 사 먹으라고 주셨니?”
김 순경이 두툼한 손으로 아이의 두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질끈 눈까지 감고 도리질을 했습니다.
“그럼?”
“저기 전봇대 앞에서 주웠어요. 아저씨, 이거 주인한테 주세요.”
“주인?”
김 순경이 흘끗 어린 소매치기를 돌아보았습니다.
“크음, 흠흠.”
어린 소매치기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얼른 주전자 뚜껑을 열고는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 알았다. 너 참 착하구나. 아저씨가 이 돈 꼭 주인 찾아서 줄게.”
김 순경은 주름진 돈을 정성껏 펴서 책상 서랍 속에다 넣었습니다. 그러곤 안주머니로 옮겨 넣었던 검은색 가죽 지갑을 꺼냈습니다.
“이건 말이다. 네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아저씨가 주는 상이란다.”
김 순경은 제일 깨끗한 천 원짜리를 골라 손에다 쥐어 주었습니다. 작은 아이 눈에 기쁨이 차 올랐습니다. 아이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빠져 나오지 말고 거기 잘 있으라는 듯 몇 번을 토닥였습니다. 그러곤 다른 쪽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엄지손톱만한 은박지 별 두 개가 나왔습니다.
“아저씨, 이거.”
바닥으로 깡충 뛰어내린 작은 아이는 별을 두 사람 손에다 하나씩 쥐어 준 다음, 즐거워하며 집으로 갔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은박지 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렸을 적 새벽녘, 마루 끝에 나와 오줌을 눌 때면 개울 건너 미루나무 꼭대기에 작은 별 하나가 걸려 있곤 했습니다.
“얼릉 들어가, 감기 들어.”
어느 새 일어나 아침밥을 짓는 엄마. 부엌에서는 마른 삭정이 타는 소리에 섞여 구수한 보리밥 냄새가 풍겼습니다.
어린 소매치기는 멀뚱한 눈으로 얼룩이가 진 파출소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쓴 엄마의 편짓글이 어룽거렸습니다. 얼마 전 물어물어 찾아갔던 먼 친척뻘 아저씨가 벌써 온 지 오래라며 건네 준 거였습니다.
“어이, 친구!”
부르는 소리가 따뜻했습니다.
‘친구라니?’
어린 소매치기가 두리번 좌우를 살피더니 엉거주춤 일어나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습니다.
“그래 인마. 여기 너밖에 더 있어?”
김 순경이 다가와 엄지와 검지 사이에다 은박지 별을 끼어선 흔들었습니다.
“별이 제자리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별똥별이 되는 거야.”
춘섭이의 눈썹이 꿈틀거렸습니다.
“집을 뛰쳐나와서 살아 보니 어떻든, 좋든?”
춘섭이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강춘섭, 너 이렇게 살고 말 거니? 그러다가 별똥별이 돼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말 거냐구!”
김 순경이 춘섭이의 엉덩짝을 탁 소리나게 때렸습니다.
“남자가 한 번 세상에 태어났으면 빛나는 별이 되어 봐야지. 안 그래?”
엉덩이를 맞았는데 왜 가슴이 찌르르 저리는지요. 서울에 있다는 친척집에 가서 밤에는 학교에 다니고 낮에는 공장 일을 하겠다며 무작정 집을 뛰쳐 나온 뒤로 엉덩짝에 이렇게 따뜻한 손자국을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춘섭이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 큰 녀석이 울긴.”
어린 소매치기의 어깨를 감싸며 김 순경은 아이가 주고 간 별을 마저 쥐어 주었습니다.
작고 허름하고 우중충한 파출소 창문 안으로 3월의 봄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풀잎내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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