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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왔도다,보았도다,그리고...(에프라임 키존) |  | |
| 한번은 외국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내 아들 아미르에게 줄 선물로 축구대 하나를 사 왔다. 축구대는 밝은 초록색으로 바닥이 깔린 구장과 양끝에 골대가 하나씩 있었다. 초록색과 빨간색의 유니폼을 입은 인형 선수들이 각각 네 개의 횡목에 매달려 있었다. 그 횡목의 양쪽 끝에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그 손잡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림에 따라 조그마한 나무공을 상대편의 골대 안으로 차 넣을 수 있었다. 또 수비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이들에겐 물론 어른들에게도 운동 시합의 재미를 맛보게 해 주는 신나는 놀이 기구였다. 아미르는 이 기구를 마음에 들어했다. 처음엔 서툰 나머지 당황했다. 마치 축구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아들은 아주 열심히 연습을 했다. 아들은 이 세상에 횡목의 손잡이를 잡고 돌려대는 일보다 즐거운 게 없다는 듯이 열심히 했다.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실력이 좋아졌다. 아들은 그것 때문에 생기가 돌았고 머리도 빨리 깼다.
그러나 그 게임 때문에 가장 활발해진 것은 아들의 용감성이었다. 아들은 무조건 이겨야지 지고는 못 배겼다. 반 친구들과 미니 축구에서 지기라도 하고 온 날이면 얼굴색이 자기 머리칼처럼 빨개지고 굵다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고 나면 다음부터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축구에 매달렸다. 아들은 이 게임에서 자기가 이기는 꿈만 꾸었다. 자기편이 되는 나무 인형들에게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공격하는 쪽을 통틀어 ´펠레´라고 했고 골키퍼는 ´야신´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모두에겐 자기 반에서 제일 축구를 잘 하는 아이의 이름인 블로트를 따다 붙였다.
하여튼 아들은 이 미니 축구대가 없는 제 또래 아이들을 전부 물리치고 나더니, 나에게도 시합을 하자고 했다. 도전을 걸면서 아들은 나에게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져 주세요, 아빠. 제발!˝
나는 아들의 눈길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왜 내가 져 주어야지?´
나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이기고 싶다. 내가 내 아들만한 나이였을 때는 나비잡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 아버지와 무슨 시합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졌다고 그렇게 울고불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들 녀석에게 이겼다. 그것도 연거푸 세 판을 이겼다. 아들은 집이 떠나가라고 울어댔다. 나는 내가 이긴 것이 떳떳하고 공정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듣게 설명하기로 했다.
˝아미르, 아빠 말 잘 들어 봐. 난 어른이고 넌 어린이야. 아빠 말이 맞지?˝
˝응.˝
˝만일 네가 아버지라면 자그마한 자기 아들한테도 지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 아빠가 멋있게 보이겠니?˝
˝아니.˝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면 아빠한테 졌다고 그렇게까지 울고불고할 것은 없잖니?˝
˝난 이기고 싶었단 말이에요.˝
녀석은 또 울기 시작했다. 이 때 녀석의 엄마가 나타났다.
˝아들 한 번 이기게 해 줘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엄마는 자식 편을 들었다.
˝애 자존심도 생각해 주어야지요. 계속 지기만 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판에는 아들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져 주기로 마음 먹었다.
아들의 편인 펠레들이 내 골대를 향해 공을 몰아오면 나는 한 번이라도 골인을 시키려고 일부러 골키퍼를 옆으로 치워주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가 내 골키퍼를 옆으로 치워 주면 펠레의 공은 골키퍼의 몸에 맞거나 골대에 부딪쳐서 다시 아들 쪽으로 굴러가는 것이었다. 한 번은 아들의 골대 안으로까지 들어가서 자살골을 먹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의 얼굴은 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의 얼굴이 하도 안되어 보여서 좀 더 많이 골인을 돕기로 했다.
나는 펠레의 공을 일부러 내 쪽 골대로 차 넣었다. 그런데 그 공은 내 골키퍼의 머리를 맞고 튕기더니 아들의 골대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들의 울음보가 또 터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성질이 있는 대로 난 아들은 축구대를 확 잡아당기더니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기의 화를 그런 식으로 폭발시킨 것이다.
˝아빤 날 이기지 못 하게 하고 있어!˝
아들은 울부짖었다.
˝마음 딱 먹구 못 이기게 해.˝
나는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횡목과 공들을 챙겨 다시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내 쪽의 횡목에 매달렸던 인형 선수 가운데 셋은 모가지가 부러져 나갔고, 둘은 몸통이 부러져 있었다. 멀쩡한 것은 반밖에 없었다.
˝나쁜 녀석, 내 쪽 선수들만 망가뜨려 놨구나!˝
나는 아들을 달래듯 말했다.
˝이런 선수들을 데리고 어떻게 시합을 하지?˝
˝그래두 해!˝
뻔뻔한 아들 녀석은 다시 싸우자고 했다. 아들은 아주 맹렬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나는 반동강이 난 내 선수들을 마음대로 썼다. 아들 쪽에서 볼을 블로트에서 첫 번째 펠레에게로, 첫 번째 펠레에서 두 번째 펠레에게로, 두 번째 펠레에서 세 번째 펠레에게로 전달했다. 드디어 강슛이 날아왔다. 나는 반 토막 난 골키퍼로 막아보려 했지만 골인이 되고 말았다.
˝야아, 하하하!˝
아들의 입에선 승리의 기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골인! 골인! 내가 일 대 영으로 이겼다. 아빨 드디어 이겼어! 내가 이겼어!˝
다음 시합 때는 내 편의 선수들은 모두 반동강이 나 있었다. 몸만 멀쩡하고 다리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에게는 아들놈이 이겼다고 신나하는 것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재미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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