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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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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등 - 모카 - |  | |
| 기욤은 창 위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있었다. 토요일에 비가 오면 김이 새고 만다. 친구인 폴과 브노아와 장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절대 안 돼. 너처럼 기관지가 약한 애가 또다시 감기 걸리려고 그러니!˝
이건 공평하지 않다. 폴 같은 애는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리고 놀아도 끄덕없고 브노아도 결코 모자 쓰는 법이 없다. 외투에 모자까지 걸친 기욤만 항상 감기에 걸린다. 할머니도 여러 번 엄마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 않은가.
˝애를 너무 껴입히는구나. 저렇게 땀을 흘리니까 감기에 걸리는 거야.˝
할머니 말씀이 옳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 할머니는 아침에 요구르트와 시리얼을 먹으라고 하시지도 않는다. 웩. 절대로. 대신 할머니는 맛있는 빵과 버터, 그리고 초콜릿을 주신다. 또 밀크 커피도. 엄마야 그런 건 애들에게 아주 나쁘단다, 라고 말하지만. 빨리 할머니네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됐으면. 그러면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일을 해도 괜찮을 텐데.
이제 비는 거의 그쳤다. 어쨌건 장터의 축제를 보러 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내게 형이라도 있었다면 전기 기차를 가지고 함께 놀 텐데. 아니, 아니야. 다른 누나가 있어야 했어. 발레리 누난 정말 참기 힘들다니까. 그나마 아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근처 광장으로 소풍을 간다든지, 동물원에 가서 낙타를 탄다든지, 그렇게 여러 가지 멋진 생각들을 해 내시니까.
기욤이 현관 앞에 다다랐을 때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빠! 오늘은 뭘 사오셨어요?˝
아빠는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무것도 안 사 왔는데?˝
˝그래요... 전 아빠가 저한테 틀림없이 뭔가 주시리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네 생일이냐? 아니면 크리스마스야? 그것도 아니면 너 어디 아프니?˝
˝아뇨... 그렇지만 전 따분한걸요.˝
˝장난감이 좀 부족하던가?˝
˝그건 아니고요. 전 그냥...˝
아빠는 주머니를 뒤적이셨다. 그리고 5프랑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셨다.
˝이번엔 이 정도로 되겠니?˝
˝전 돈은 필요 없어요 아빠. 그냥 깜짝 선물이 있었으면 좋겠단 말예요!˝
아빠는 곰곰이 생각하셨다. 아빤 틀림없이 새로운 멋진 생각을 해 내실 거야.
˝이런, 빵 사오는 걸 잊었구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듯이 뭔가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날은 없는 날이었다. 기욤은 썰어 놓은 시골 빵을 사기 위해 다시 나가시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욤은 그 빵을 싫어했다. 잼을 바를 때 보면 언제나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체. 체. 게다가 발레리 누나가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으니 미국 연속극 보기도 다 틀렸다. 누나는 겨우 게임하고 동물들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보니까. 기욤은 하품이 나왔다.
아빠가 돌아오셨다. 그런데 빵은 없었다. 대신 작은 과자들이 든 봉지를 들고 계셨다. 아빠는 소파에 앉더니 엄마를 부르셨다.
˝방금 이상한 일을 겪었다오.˝ 아빠가 말씀하셨다.
엄마는 웃기 시작하셨다.
˝또 무슨 일을 꾸몄어요?˝
˝내가 조용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는 기욤이 곁에 다가오기를 기다리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
˝갑자기... 웬 나이든 중국인이 불쑥 나타나지 뭐냐!˝
˝에이, 농담.˝
˝아니라니까. 그 노인은 등에 커다란 보따리를 지고 있더라.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 중국 비스킷들을 좀 사시구려. 이 비스킷들 속엔 지혜가 한 아름 들어 있다오.´ 난 이렇게 말했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노인은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 봉지를 주었단다. 그리고 사라져 버렸지. 휘~ 익! 그러고 나니 아무도 없지 뭐냐! 게다가 기욤, 그 노인 말이 정말이었어. 그 중국 비스킷 하나하나마다 메시지가 담겨 있단다.˝
아빠는 봉지를 여셨다. 기욤은 어떤지 살펴보려고 비스킷을 하나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으로 쪼갰다.
비스킷 안에는 초록색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중국말로 쓰여 있기라도 하면 넌 끝장일걸!˝하고 발레리가 말했다.
기욤은 종이를 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발레리는 ˝완전 엉터리˝라고 말했다.
˝이제 누나 차례야.˝
˝난 배 안 고파.˝
˝먹으라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읽어보라고!˝ 기욤은 소리쳤다.
˝난 하기 싫어.˝
˝재미삼아 해 보려무나.˝ 엄마가 말씀하셨다.
˝전 그런 거 재미없어요.˝
발레리는 언제나 시무룩했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뭔가 해 보려고 하는 법도 없었다.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게 엄마 말씀이셨다. 기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내가 열두 살이라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그러면 친구들과 바깥에서 놀 수도 있을 거고, 혼자 버스를 타도 되고, 또 차 탈 때 앞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것 아니야.
˝내가 발레리 대신 한 장 뽑지.˝ 하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봉지 속에 손을 집어넣으셨다. 발레리는 짐짓 전혀 관심 없는 척했다. 아빠는 큰 소리로 메시지를 읽으셨다.
˝푸른 등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시오.˝
˝그건 정말 묘한 내용이로군요.˝ 엄마가 말씀하셨다.
˝완전 엉터리라니까요.˝ 발레리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기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해가 화창하게 비췄다. 기분이 들뜬 기욤은 아빠에게 장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빠에겐 밀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엄만 친구인 마르그리트 아줌마를 만나러 나가야 했다.
˝발레리가 한 번쯤은 너를 돌봐 줄 수 있을 텐데.˝하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이, 싫어요!˝ 발레리가 소리쳤다.
˝전 사람들 많을 걸 참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장은 너무 시끄러운걸요! 재미도 없고!˝
기욤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코까지 훌쩍였다.
˝너 감기 걸렸니?˝ 엄마가 걱정하셨다.
발레리는 기욤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좋아. 하지만 딱 한 시간만 있는 거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셨다. 기욤은 더욱 울고 싶어졌는데, 아주 기쁠 때면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모자 쓰고 목도리를 둘러라. 장갑도 잊지 말고. 청룡열차는 타면 안 돼. 네 심장을 아프게 하니까. 또 아무거나 먹어서도 안 된다. 병에 걸리거든...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솜사탕하고 감자 튀김 한 봉지를 먹지 않을 거면 장에 갈 필요도 없단다... 하지만 딱 한 봉지만이야!˝ 엄마의 말씀이었다.
기욤은 서둘러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맘이 바뀌곤 하는 누나의 눈치를 살폈다. 둘이 이미 층계참에 다다랐을 때 엄마가 또다시 부르셨다.
˝길 건널 때는 누나 손을 잡아야 한다!˝
˝엄만 날 정말로 애기 다루듯 한다니까.˝ 기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길을 건너기 위해 누나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창에서 내다보고 계셨다.
˝누나, 그 중국 비스킷 생각나? 그 속에 사람들이 나를 즐겁게 해줄 거라고 쓰여 있었잖아.˝ 기욤이 물었다.
발레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바보 같은 말이야!˝
기욤은 꼬마 열차를 세 번 탔다. 공포의 궁전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천장에서 해골이 떨어졌을 때만 약간 움찔했을 뿐이다.
˝이제 끝이야.˝ 발레리가 말했다.
˝아이, 딱 한 번만 더...˝
˝다 이상 말 꺼내지 마. 이제 끝이야. 끝났다고!˝
기욤은 토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걸 발견했다. 푸른 등을!
˝누나, 누나! 푸른 등이야!˝
˝저건 그냥 오래 된 캠핑카인데.˝
발레리도 흥미를 느끼고 멈춰 섰다.
˝정말 푸른 등이 있네.˝ 발레리가 중얼거렸다.
문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르마 부인, 신통력이 대단한 뛰어난 예언가.´
˝들어가 봐야 돼. 그리고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저기 대단하다고 써 놨잖아!˝ 기욤이 말했다.
˝그건 전부 헛소리야!˝
˝누나가 겁나면 나 혼자 갈 테야.˝
˝안 돼, 그건!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내 메시지였잖아.!˝
기욤은 웃기 시작했다. 누나도 이젠 중국 비스킷을 믿고 있는 거야! 발레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캠핑카 안에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들어와요, 들어와. 꼬마 아가씨!˝
˝그걸 어떻게 맞혔을까? 창문도 없는데!˝ 기욤이 말했다.
발레리는 숨을 한껏 들이마시더니 문을 열었다. 기욤은 뛰어서 달아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누나만 내버려두고 갈 순 없었다. 어쨌든 여잔데! 기욤은 누나의 손을 꼭 잡았다.
안은 몹시 어두웠다. 기욤은 또다시 공포의 궁전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이 오너라, 얘들아!˝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요!˝ 기욤이 따졌다.
곧 램프가 하나 켜졌다. 이르마 부인은 수정 구슬 앞에 앉아 있었다.
˝미안하구나. 난 눈이 피곤하단다. 나이가 아주 많기 때문이지. 자, 값은 50프랑이다.˝
˝전 돈이 없어요.˝ 발레리가 대답했다.
이르마 부인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기욤이 소리쳤다.
˝이런! 잘못 생각하셨어요! 저희는 점치려고 온 게 아녜요! 푸른 등 때문에 온 거예요!˝
이르마 부인은 꽤 놀란 것 같았다.
˝등이라니? 아, 초롱 말이로구나... 그건 내가 사육제 때 주운 거란다. 예뻐 보여서 말이다.˝
˝그러면... 그 중국 비스킷은 어떻게 된 거예요?˝
이르마 부인은 피곤에 지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욤은 부인에게 푸른 등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이르마 부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지만 잘 모르겠구나! 아니... 알았다! ´푸른 등´이라는 골동품 가게가 느릅나무 가에 있단다!˝
느릅나무 가는 장에서 아주 가까웠다. 발레리는 ´그냥 한번 보기 위해´ 거기까지 가 보고 싶어졌다. 발레리는 점쟁이에게 친절히 대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편 기욤은 깜박 잊고 탁자 위 수정 구슬 옆에 장갑을 놓아 두고 나왔다.
기욤은 코를 공중으로 쳐든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기묘한 물건을 쳐다보았다.
˝저 등은 좀 이상하게 생겼는걸... 그리고 그렇게 파랗지도 않고.˝
그 때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한 노인이 골동품 가게에서 바람처럼 튀어 나왔다.
˝아, 아! 여기 세상에 둘도 없는 희귀하고 진귀한 물건들을 사랑하는 분이 오셨구먼! 나를 따라 들어와요, 젊은이! 느부갓네살의 보물들을 보여 줄 테니. 또 시바의 여왕이 쓰던 코코아잔도 있다오! 온갖 취향의 물건이 다 있고, 값도 천차만별이지!˝
기욤은 손가락으로 등을 가리켰다.
˝그럼 이건요? 이건 그 느브... 아니, 느부... 게맛살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물건이 아닌가요?˝
˝아, 그거! 젊은이. 그건 프죠 사에서 만든 1897년 형 오픈카의 이중 등이라네!˝
˝그러니까 중국제가 아니네요...˝
골동품상은 기욤의 팔을 잡아끌었다.
˝중국 물건들이 보고 싶나? 내 찾아 주지!˝
발레리도 그들을 따라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물건이 하도 많아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제 동생이 하려는 얘기는 중국 비스킷에 관한 거예요.˝ 발레리가 말했다.
골동품상은 진열장 안을 뒤적였다. 그러더니 한 쌍의 무용수 도자기를 꺼냈다.
˝자, 자. 이게 두 번 구운 물건이오!˝
˝이게 과연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기욤이 물었다.
˝먹다니? 이건 리모주 도자기요, 젊은이! 그리고 이런 걸 비스킷이라 부른다오.˝
기욤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가게 한가운데 용수철 달린 말이 하나 놓여 있었다. 기욤은 그 위에 올라탔다. 말이 사방으로 움직여 매우 재미있었다. 앞으로, 뒤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러다가 기욤은 모자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발레리는 엄한 눈초리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멈추지 못해! 너, 그러다간 심장이 아프게 된다고!˝
골동품상이 외쳤다. ˝보기 좋은데 놀게 놔 두지! 그런데, 말해 봐요. 도대체 찾는 게 정확히 뭐지?˝
˝푸른 등이오.˝
골동품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커다란 상자 위로 몸을 굽힌 채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몽땅 땅바닥으로 끌어냈다.
˝그러니까 방금 우리가 얘기를 나눈 바로는... 아, 요강 단지네! 이건 아니고, 또 이건... 타자기고! 그럼, 이 것도 아니지. 코뿔소 뿔 하나라! 아니, 아니, 아니고! 어이구, 내 기침약이 여기 있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 이건 또 뭐람?˝
골동품상은 만화책 한 권을 들어 보였다.
˝이게 자네들이 찾는 푸른 등일세!˝
발레리는 책을 받아들었다. [땡땡과 푸른 연꽃] 이었다.
˝연꽃이 푸른색인지는 몰라도 등은 노란색이네요. 어쨌든 전 이 만화책이 이미 집에 있어요.˝
골동품상은 매우 실망했다. 고객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 건 정말 이번이 처음이라나!
˝하여간, 내가 전에 푸른 들을 가지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오... 아, 그렇지! 그건 석유를 사용하는 오래 된 램프였는데, 뭐 흔하디흔한 물건이었지! 하지만 그걸 어떤 식당에 팔았다오. 푸른 등 주막인가, 그게 그 집 이름이지! 엄지 왕자 가에 있는.˝
기욤은 아쉬운 마음으로 흔들목마에서 내려왔다.
˝그리로 가 봐야겠어요 할아버지. 이것저것 고맙습니다! 특히 말을 타게 해 주셔서요!˝
발레리는 그 곳을 떠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골동품상이 하도 소리를 질러 대서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푸른 등 주막
식당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발레리는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 닫혀 있는 게 네 눈에도 보이잖아!˝
˝하지만 안에 누군가 있는걸. 덩치 큰 여자가 지나치는 걸 봤어...˝ 하고 기욤이 반박했다.
기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느닷없이 문이 열렸다. 기욤의 말이 옳았다. 여인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좀 무섭기조차 했다. 기욤은 누나 뒤에 숨었다.
˝무슨 일이냐?˝ 뚱뚱한 여인이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안...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발레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중국 비스킷 때문에 그러는데요...˝
˝뭐? 뭐가 어쨌다고? 중국이라니? 난 프랑스 요리만 한다!˝
그 때 기욤은 식당의 계산대 위에 걸려 있는 골동품상의 석유 램프를 발견했다.
˝아, 저 등이다!˝
˝그래그래...˝ 요리사가 중얼거렸다. ˝들어오려무나. 아마 내 요리책들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다... 그 중국 비스킷 만드는 법 말이야.˝
여인은 테이블 하나에 아이들을 앉혔다. 기욤은 목도리를 끌러 의자 위에 걸쳐 놓았다. 뚱뚱한 여인은 벌써 쟁반을 들고 돌아와 있었다.
˝난 프랑스 비스킷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사블레, 마카롱, 튈 오 자망드, 므렝그! 이것 좀 맛보고 소감을 말해 봐라!˝
발레리는 조심스럽게 사블레를 한 쪽 집어 들었다. 기욤은 약간 배가 고팠다. 아니, 대단히 고팠다. 그래서 거기 있는 과자들이 전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마카롱은 맛이 아주 좋았다. 기욤은 계속 과자들을 집어먹었다.
˝그걸 죄다 먹으면 어떡하니?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발레리가 외쳤다.
뚱뚱한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요리책을 몽땅 꺼냈다. 여인이 책장을 하도 빨리 넘기는 바람에 책이 그만 찢어지고 말았다.
˝어디 보자... 사과 튀김, 브리오슈, 케이크, 샤를로트, 아이스크림, 크렙, 크르와상, 플랑, 레몬 파이! 으, 없네, 없어. 중국 비스킷은 없다고!˝
발레리는 기욤을 쳐다보았다. 이 아줌마하고 푸른 등 얘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겠어.
˝너희들이 말하는 중국 비스킷 속엔 뭐가 들어 있지? 생강? 리치? 아니면 숙주냐?˝
˝메시지요.˝ 입 안 가득 과자를 문 기욤이 대답했다.
요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욤을 쳐다보았다.
˝아몬드 반죽으로 된 거냐, 아니면 설탕 시럽으로 된 거냐?˝
˝종이로 된 건데요.˝
낙심한 뚱뚱보 요리사는 코를 다시 책 속에 파묻었다.
˝아, 아! ´중국인들´로 잼 만드는 법이 하나 있구먼! ´껍질을 벗긴다. 일주일 동안 물 속에 담갔다 꺼내 말린다. 그 다음 그것들을 설탕 시럽에 재운다. 그리고 나서 화주 속에 넣어 보관한다!˝
˝어머, 정말 무시무시해요. 가엾은 중국 사람들!˝ 발레리가 비명을 질렀다.
˝안심해요, 이 아가씨야! 여기서 ´중국인들´이란 작고 초록빛 나는 오렌지 이름이니까!˝
기욤은 확인해 보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요리법들은 약간 이상해요. 보세요. 여기 밀가루를 ´중국인´으로 걸러 내라고 쓰여 있네요!˝
˝그 ´중국인´은 체의 일종이란다.˝ 요리사가 설명했다.
뚱뚱한 여인은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오늘 내 명예가 실추되었다! 내가 중국 비스킷을 만들 줄 모르다니! 내 수석 주방장 자격증과 이 지역 내 과자 만들기 대회 일등상을 내놓아야겠어!˝
기욤은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만드신 과자는 정말 맛있어요. 중국 비스킷 아니면 뭐 어때요!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잖아요. 제가 아빠께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그러면 아빠가 아빠 친구분들한테 그 얘길 할 거고, 또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아주머니네 예쁜 식당으로 음식을 먹으러 오게 될 거예요.˝
뚱뚱보 요리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구나. 용기를 잃어선 안 되겠지. 기필코 그 비스킷 만드는 법을 찾아내고 말 거야.˝
발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저희는 가 봐야겠어요, 아주머니.˝
발레리는 기욤의 팔을 잡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후유!˝ 발레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람한테 등 이야기를 안 하길 정말 잘했지!˝
˝그래.˝ 기욤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저 아줌마 요리책 속엔 틀림없이 ´등´이 바나나 아니면 냄비의 일종이라고 쓰여 있을 거야!˝
기욤은 발이 아파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발레리는 막무가내였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우체국에 가서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는 거야!˝
˝난 피곤한걸. 그리고 우린 우리가 찾고 있는 게 뭔지조차 모르잖아!˝ 기욤이 우겼다.
하지만 발레리는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푸른 등을 찾아내야겠다는 것이었다.
우체국
발레리는 전화번호부의 ´L´ 항목을 펼치고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알퐁스 랑테른, 앙드레 랑테른... 웃긴다. 이런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니! 아, 여기 있다! ´푸른 등. 골동품 가게, 식당... 저렴한 가격의 호화 조명 기구...˝
˝그게 뭔데?˝
˝등 말야, 바보야! ´물감 및 그림 도구... 햄 가게!´ 이런 이런... 다 아니야.˝
발레리는 단호하게 전화번호부를 덮었다.
˝이래선 안 되겠어.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신비스런 모험이야. 두 명의 영웅이 도시에서 길을 잃었어. 그러다 갑자기 문 앞에 푸른 등이 매달린 집을 하나 발견하는 거지. 그들이 그 안에 들어갔는데...˝
˝들어갔는데?˝
발레리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동생에게 달려들었다.
˝벽장 속에서 식인귀가 튀어 나와 그들을 잡아먹으려 하는 거야!˝
기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발레리는 고함을 치며 동생을 쫓아갔다. 그 놀이는 무척 재미있었다. 기욤은 어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시늉을 했고 발레리는 배고픈 괴물 흉내를 냈다.
˝으아아! 내가 네 껍질을 벗겨 화주 속에 담가 버리겠다! 그 다음 네 녀석을 체에다 걸러 버릴 테야!˝
기욤은 하도 웃어서 옆구리가 다 아팠다.
˝그만 해.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들은 벤치 위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결국 더 이상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있었어! 근데 네 모자는 어디 있지? 장갑은? 또 목도리는? 기욤, 너 감기 걸리겠다!˝ 발레리가 말했다.
기욤은 아니라고 반박하려 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그들 앞에 등에 큰 보따리를 진 중국 노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노인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비스킷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지혜가 담뿍 든 꼬마 과자 하나 먹어 보겠니, 얘들아?˝ 하고 노인이 말했다.
˝지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할아버지 마침 때맞춰 나타나셨네요! 할아버지 때문에 저희는 푸른 등을 찾아서 사방을 돌아다녔어요!˝ 발레리가 대답했다.
중국 노인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오, 알겠다! 너희들은 ´푸른 등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시오´라는 메시지를 읽었구나! 푸른 등은 내 새 가게 이름이란다. 가게를 선전하려고 내가 비스킷 속에다 메시지를 넣었지!˝
노인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초록색 종이를 꺼냈다.
한 귀퉁이엔 그 문제의 메시지가, 그리고 다른 쪽 귀퉁이엔 가게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푸른 등, 중국 상점. 여름 비 가 22번지.´
˝광고였단 말이지. 그냥 광고였을 뿐이라니!˝ 기욤은 되뇌었다.
˝과자 하나 줄까?˝ 중국 노인이 물었다.
˝벌써 받았는걸요.˝ 발레리가 대답했다.
기욤은 봉지 속에 손을 넣었다. 발레리도 망설이다 동생을 따랐다. 기욤이 고른 메시지는 ´당신의 건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레리의 메시지는 ´당신에겐 평생의 친구가 있습니다´였다.
˝난 내가 튼튼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하고 기욤이 말했다.
발레리는 기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난, 내게 평생의 친구가 있다는 걸 안단다.˝
기욤도 누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코를 크게 한 번 훌쩍인 것은, 물론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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