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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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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표가 붙은 아이 (최균희) |  | |
| 뚜우우---.
이번에는 목을 더 길게 빼어 기차가 울어댔습니다.
그놈 검정 수탉이 날갯죽지를 파닥대며 날이 샜다고 알릴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저마다 짐 보따리를 찾아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진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차안을 둘러봤습니다.
다른 정거장에서처럼 그대로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서울이람요?˝
˝그래, 빨리 내려라. 쯧쯧!˝
˝밤송이처럼 까칠까칠 길게 자란 머리 쪽부터 뒤꿈치가 떨어져나간 검정 고무신까지를 얼핏 흘겨다 본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재빠르게 바지 허리춤을 만져본 진수는 무언가를 확인한 듯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저런, 가엾어라. 어딜 가겠다고 기차는 잡아탔을까?˝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역전을 빠져 나와 진수는 불빛이 많은 쪽으로 달음질치듯 걸어갔습니다.
이렇게 넓은 길은 처음입니다. 시골집 마루보다 깨끗한 아스팔트길을 차라리 맨발로 걷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신발일랑 벗어 던지고 엉덩이까지 내려뜨려진 웃옷자락을 칭칭 감아 올려서 배꼽 바로 밑에 꼬옥 매였습니다.
시골에서 출발할 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굶어 왔는데도 이처럼 기분좋고 신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구, 정말 높다야!. 저런 높은 곳은 사닥다리를 놓고도 못 올라가겠구먼, 서울 사람들은 안 보이는 날개라도 가지고 다닌당가?˝
갑자기 불빛이 휘황찬란해지더니 앞에서 뒤에서 크고 작은 차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진수는 흠짓 놀랐습니다.
˝히야! 되게 많다. 저 차들이 모두 누구네 것이랑가?˝
유달리 흰창이 많은 그 큰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길 한가운데 서 있다가 ˝삐익!˝하고 멈춰서는 노란 택시 운전사 아저씨한테 진수는 크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렇구먼, 사람들은 모두 저기 한쪽 길로 가는가 본디. 뭐가 뭔지 잘 모르겠구먼.˝
진수는 비호같이 택시 사이를 뚫고 나와서는 저 혼자 대견해하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이만하면 나도 진남이 보다는 나을 기여. 지는 항상 할머니를 따라서 서울에 다니잖어. 나만 미워하고 일만 시키는 그런 집에서는 나도 이제 안 살거구만!˝
지금쯤 날을 꼬빡 새우며 자기를 찾고 있을 식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아니여, 찾지도 않을 기여. 나만 보면 밥먹듯이 날마다 야단만치는 엄니가 아닌가베.˝
어디만큼 왔는지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발가락 사이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진수는 길 양옆으로 나란하게 잇닿은 궁궐처럼 큰집들을 구경하다가 층계돌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놈아야, 수박밭을 지키라니까 잠만 퍼잤다냐? 수박밭이 온통 수라장이 되었당게. 니 동생놈 중학교 등록금을 대주려면 이 여름에 한목 단단히 봐야 한단 말여. 저 빙신. 막말로 내 눈앞에서 싹 없어지기라도 하면 속이나 편할긴디.˝
찢어지는 듯 큰소리로 외치다가 어머니는 한숨 섞인 푸념으로 끝을 맺곤 합니다.
˝ 성아, 소먹을 깔을 논두렁에 가서 비어 오란디 뭐하고 누워 있어? 나는 공부하니라 못 나간다 말이여.˝
˝ 이녀석아, 너도 진만이처럼만 똑똑하면사 똑같이 중학교에 보낼라고 안 한기여? 마당이나 빨리빨리 쓸어버려.˝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계속 동생 뒤를 따라 다니며 한 반에서 공부한 것도 창피한데 누가 또 중학교에는 같이 다닐까 봐서 이리들 떠들고 야단일까? 어른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마음이 좁은지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진수 쪽이었습니다.
˝ 그만 일어나서 가 봐야지. 쬐끔만 가면 삼촌집이 있을 기여. 서울역에서 두 시간쯤 걸리고 빨간 기와집이라고 들었으니께˝
진수가 일어나서 옷을 터니까 종이 조각 하나가 나뭇잎 떨어지듯 살포시 발등에 내려와 앉았습니다.
(이 아이를 서울역까지 태워다 주시오.)
˝하핫, 우습다. 그렇구먼, 돈이 없당게 진짜인 줄 알고 표 검사하는 아저씨가 내 등에다 꼬리표를 붙여 주었제. 요게 여기까지 날 따라 왔다냐?˝
기차 속에서 어리석게 속아넘어간 어른들이 재미있어서 또한번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이웃 마을 고모네 집에 가서 며칠 동안 일을 해주고 받은 돈인데 함부로 무엇을 사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하루종일 걸었는데도 항상 그 자리만 같은 것이 서울이었습니다.
해가 어느 쪽으로 지는 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전깃불이 이쪽저쪽에서 켜지는 걸 보고서야 또 저녁이 왔나 보다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조차 모두 쌀쌀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진수의 옷차림을 곁눈으로 한번 죽- 훑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혀를 쯧쯧 찼습니다.
˝아무래도 저 쪽으로 건너가야 할 것 같은디. 차들이 한시도 쉬지 않는구만. 에이 모르겠다. 아까같이 뛰자. 뛰어.˝
˝찌지직!˝
별안간 진수의 몸이 저만큼 먼 곳으로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진수는 막내동생 순이랑 소꼽놀이하는 꿈을 꾸다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닭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육교가 바로 위에 있었는데도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운전기사 잘못은 하나도 없다구요.˝
진수는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예쁜 누나가 진수의 옆에 서 있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주름살이 얼굴에 가득한 할머니가 진수의 손목을 꼭 쥐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그 옆에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삼촌이 낯설은 아저씨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나 혼자 서울까지 왔당게유. 장하지유?´
입을 열어 자랑하고 싶었으나 맘대로 입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 커다란 병에서는 물방울이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 한방울씩 한방울씩 또르륵 또르륵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려 했으나 붕대로 꼭꼭 묶인 다리가 무겁기만 했습니다.
콧날이 찡- 해지더니 눈물이 피잉하고 돌다가 양쪽 귓속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다시는 서울 안올기여. 시골에서 외막이나 잘 지킴서 소랑 닭이랑 잘 키우면서 살거구만요. 할머니, 미안해유.´
할머니는 진수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떨리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하였습니다.
˝진수야, 염려말랑게. 내려갈 때는 나랑 함께 갈거니께. 이 할미가 애당초 너를 데리고 올라올 건디. 걱정말어. 다신 너 혼자서 집 나오면 안되어. 이번에는 삼촌이 널 데리고 백화점이랑 동물원이랑 모두 구경 시켜 주겠지만 니가 시골에서 말 잘 듣고 있어야 이 할미가 오래 산다고 안 했남?˝
할머니의 두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진수는 붕대가 감겨있지 않은 팔을 간신히 움직여 바지 허리춤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종이돈을 한 장 꺼냈습니다.
´이것 할머니 좋아하는 능금 사먹어.´
˝이이고, 이 불쌍한 내 새끼-.˝
할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 두 개 세 개로 겹쳐오더니, 할머니에게 내민 손을 채 끌어오기도 전에 진수의 두 눈이 먼저 사르르 감겼습니다.
지금 진수가 타고 있는 기차는 오색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였습니다.
기차 안에는 진수 한 사람뿐 두 다리를 쭉 벋고 누워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삼촌이 멀리서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하얀 모자를 쓴 안내양이 차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아름다운 분홍빛 커텐을 내리고 빨간 단추를 꾹 눌렀습니다.
진수의 마음이 이처럼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도 고프지 않고 시끄럽지도 않았습니다.
천정에 뚫려있는 창틈 사이로 하얀 흰구를이 두둥실 떠다니는 게 보였습니다.
(이 아이를 하늘나라로 데려다 주시오.)
보이진 않았으나 이번에도 이렇게 쓰여진 꼬리표가 진수의 등쪽에 붙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아이들이 깔깔대며 놀려댈 때면 버릇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등을 만저 보았습니다.
(나는 바보 온달, 칠푼이 등신이오.)
어느 사이 다가와서 붙여놨는지 언제나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진수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젠 그런 놀림을 받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무슨 재주로 하늘까지 좇아올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진수는 으스대면서 좋아했습니다.
진수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보고싶은 엄마를 찾아나섰습니다.
무지개 기차는 벌써 사랑의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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