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2004년 대전일보 당선 동화 (쥐 잡는 소년-문진주) |  | |
| * *
“모두 강물에 퐁당퐁당 빠졌어!”
“강물 건너 다른 곳으로 갔을 거야.”
누나는 ´피리 부는 소년´에 나오는 쥐들이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그 쥐들은 모두 강물에 빠졌단다.”
아빠가 누나의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나가 우쭐거릴 사이도 없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쥐들이 죽은 건 아니란다. 강물 밑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나라가 있으니까.”
그렇죠! 그렇죠! 모두 행복하게 살았죠? 내가 신이 나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다 엄마에게 꾸중도 들었습니다. 엄마는 밥을 먹을 때에 지저분한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시거든요.
밥을 다 먹고 단감을 먹을 때 아빠가 이야기를 꺼냈어요.
“얘들아, 아빠도 쥐잡는 소년이었단다.”
“에-. 믿어지지 않는 걸요!”
누나와 내가 단감 속에 들어있는 씨를 뱉어내며 아빠를 쳐다보았어요.
그러자 아빠가 천천히 입을 떼셨어요.
-하나-
“성균아, 어디 있니?”
할머니 목소리다. 나는 곧 마당으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까만 봉지를 들고 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분명히 고등어가 들어 있을 것 같다.
“할머니, 그거 고등어죠?”
“그래. 우리 성균이 주려고 샀지.”
할머니가 웃자 얼굴이 더 쪼글쪼글 해졌다. 나도 옆에 앉아 고등어 손질하는 것을 구경했다. 깨끗이 씻은 고등어에 소금을 뿌렸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봤다.
“밭에 다녀오마.”
“저는 쥐 잡으러 갈래요.”
할머니는 밭에 가고, 나는 쥐 잡으러 갔다.
봄에 수길이가 커다란 쥐를 잡았다.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큰 것은 쥐가 아니라고 했고, 어떤 아이들은 대장 쥐는 원래 이 정도로 크다고 했다. 그 쥐를 사이에 놓고 싸움이 붙었다. 하지만 두 편 다 팽팽하게 우기는 바람에 결국 정미소 아저씨에게 가져갔다. 쥐라면 정미소 아저씨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수길이가 자루 속에서 그 커다란 뭉치를 꺼내자 정미소 아저씨가,
“고 놈, 잘 잡아왔구나! 쥐라는 놈은 무조건 다 잡아야 하지, 암!”
아주 시원하다는 듯 말했다.
누구나 쥐를 싫어했지만 특히 정미소 아저씨가 제일 싫어했다. 아침마다 쌀가마니에 구멍을 뚫기 때문이다. 정미소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쥐를 잡아오면 쌀튀밥을 한 주먹씩 주겠다고 했다.
그후로 우리는 매일 쥐를 잡았고, 매일 쌀튀밥을 먹었다.
-둘-
쥐를 잡을 때는 조심해야 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뱀처럼 독을 품는다고 했다. 독오른 쥐에게 물리면 쥐처럼 찍찍거리다 죽는다고 했다. 그래도 찍찍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곧,
‘저 놈을 잡으면 또 쌀튀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까짓 냄새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독오른 쥐가 무섭긴해도 쌀튀밥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쌀튀밥. 천천히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쌀튀밥.
아, 맛있는 쌀튀밥!
우리는 막대기와 돌맹이로 쥐를 잡았다. 주머니에는 조약돌이 가득해서 걸을 때면 언제나 ‘찰그락찰그락’ 소리가 났다.
주머니의 돌맹이를 툇마루에 꺼내 놓는데 밥 냄새가 솔솔 넘어왔다. 밥 냄새를 맡을 때면 늘 엄마 생각이 났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밥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에게로 갔다.
“할머니, 저게 뭐예요?”
텃밭 앞에 놓여있는 것을 손짓하며 물었다.
“쥐새끼란다. 마루 밑에서 잡았는데 어찌나 찍찍대던지…. 어미는 없고 조것들만 소복히 있더구나. 일부러 밖에다 들어놨다. 저렇게 울어대면 어미가 나올게다. 그러면 그때 어미와 함께 파묻을 생각이지.”
나는 텃밭으로 걸어가 새끼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셋-
할머니가 밥상을 마루에 올려놓고 나에게로 왔다.
“어서 먹어라. 할미는 밭에 좀 다녀오마.”
“이게 정말 쥐예요?”
“그래. 왜, 징그러우냐?”
“아니예요! 참 예뻐요!”
“아기 때 안 이쁜 게 어디 있겠니. 돼지도 소도 염소도 어릴 때야 다 사랑스럽지.”
“요것들 제가 키우면 안될까요?”
“얘가 무슨 소릴 하누? 매일 쥐 잡으러 다니는 녀석이 쥐를 키우겠다니!”
“하지만 이렇게 작고 귀여운 걸…어떻게 파묻겠어요.”
“금방이라. 이것들도 자라면 호박 물어뜯고, 고구마 갉아먹는 고약한 쥐새끼에 지나지 않아.”
마루에 올라가 밥상 앞에 앉자 할머니가 대문을 나섰다.
밥을 먹으면서도 텃밭 앞에 있는 새끼쥐를 보았다. 밥을 다 먹고 숭늉을 마시면서도 쥐들을 건너다 보았다.
-넷-
댓돌로 내려섰다. 살금살금 다가가 새끼쥐들을 들여다보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아기 쥐가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촉촉하면서도 따스한 맨살이 밀가루 반죽처럼 보드라웠다.
‘모두 형제이겠구나.’
어미 쥐가 생각났다. 마치 밥 냄새를 맡을 때처럼 포근했다. 어미 쥐가 어딘가에 숨어서 새끼 쥐를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코끝에 갖다대자, 새끼 쥐들이 콧김에 바르르 떨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미 쥐의 낌새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손바닥에 든 쥐를 멀리 던지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어미 쥐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미 쥐가 나타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미 쥐가 와서 새끼 쥐들을 모두 데려가길 바랐다. 하지만 어미 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오기 전에 어서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만약 어미 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새끼 쥐는 어미 쥐를 영영 못 만날 지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새끼 쥐를 품에 안고 집안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먼저 부엌으로 갔다. 부엌엔 먹을 것도 많고 따뜻하기도 하다. 그러나 부뚜막은 고양이의 잠자리다. 게다가 고양이는 생쥐를 제일 맛있어하니까 안되겠다. 외양간으로 갔다. 푹신한 짚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금방 생각이 바뀌었다. 뒤채다 떨어지면 소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여물통으로 떨어지면 소 밥이 될지도 모르니까.
다시 텃밭 앞으로 돌아왔다. 이 일을 어쩌나. 어미 쥐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집 가까이 왔는지도 모른다. 옆집 광을 지나고 있을 지 모른다.
그래! 그거야!
그제야 광이 떠올랐다. 얼른 광으로 달려갔다. 낡은 털 장화를 찾아서 나무상자 속에 놓았다. 신발바닥에 쌀겨를 두툼하게 깔았다. 그 다음 새끼 쥐를 올려놓고 천으로 덮었다.
“성균아, 어디 있니?”
할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재빨리 광을 나와 문을 닫고 뒷간으로 갔다. 나는 뒷간에서 바지도 내리지 않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 똥 누어요!”
-다섯-
“이 놈의 쥐새끼, 그새 생선 냄새를 맡았나보네.”
생선 도막 중에서도 제일 살이 많은 몸통이 없어져서 할머니가 화났다. 남아있는 것은 꼬리와 머리뿐이었다. 할머니는 내 생일마다 고등어를 구워주셨다.
“어떻게 그걸 물고 갔을고. 정말…이 놈의 쥐새끼를….”
고등어를 부뚜막에 얹어 놓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망할 놈의 쥐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그릇에는 고등어의 머리와 꼬리만 남았다.
“할머니, 왜 쥐한테만 그러세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할머니가 깜짝 놀랐다. 할머니의 놀란 표정을 보자 미안해졌다.
“쥐가 아니면 이걸 누가 가져간단 말이냐? 응?”
이번엔 할머니의 목소리가 커졌다. 마치 쥐가 들으라는 것처럼 컸다.
“고양이가 먹었는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울고싶어졌다. 사실, 나도 쥐가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꾸 쥐들을 욕해서 속상했다. 광에 숨겨둔 생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털 장화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귀를 쫑긋거리는 생쥐들. 이 새끼 쥐들을 볼 때마다 이전에 내가 죽였던 쥐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나 때문에 영영 엄마 쥐를 만나지 못한 아기 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소리 지른 것도 무척 미안했다.
-여섯-
할머니는 고등어의 머릿살을 숟가락에 올려놓았다.
“생선은 머리 쪽이 제일 맛있단다. 쥐새끼들이 그걸 모르고 몸통만 가져갔구나.”
“헤헤, 그러면 젤 맛있는 건 내가 먹고, 쥐새끼들은 맛없는 몸통만 먹는 거네요.”
할머니도 따라 웃었다.
저녁을 다 먹은 후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밤에 이불 속에서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성균아, 너 왜 오늘은 쥐 잡으러 가지 않았니?”
“이제 그만 할래요.”
“왜, 독오른 쥐한테 물릴까봐 겁나던?”
“아니에요. 이제 재미없어졌어요.”
할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할머니의 가슴은 엄마의 가슴과는 달랐다. 엄마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었다. 꽃처럼 향기롭고, 과일처럼 달콤한 냄새였다. 이제는 맡을 수 없게 되었지만…. 하지만 할머니의 마른 풀 냄새도 좋다.
찍찍찍! 찍찍!
“저 놈의 쥐새끼, 또 잠 설치게 하는구나.”
할머니가 천장을 향해 말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털 장화 속에 숨겨놓은 새끼 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광에 숨겨둔 네 마리의 새끼 쥐가 빨리 자라길 빌었다. 빨리 자라서 어미 쥐를 찾아가길 바랐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스르륵 풀렸다. 아아, 나도 그만 잠이 드나보다.
* * *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누나와 나는 아빠의 입을 바라보았습니다.
밖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습니다.
“벌써 9시구나. 이젠 잠자야지.”
엄마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 계속 그렇게 있었을 거예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누나가 먼저 이층 침대로 올라갔습니다.
불을 끄고 조금 지난 뒤 내가 물었습니다.
“누나, 그 아기 쥐들은 엄마 쥐를 만났을까?”
그러나 누나는 벌써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습니다.
아기 쥐가 정말 무럭무럭 자랐을까? 엄마 쥐는 어떻게 만났을까?
내일 아빠에게 여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감깁니다. 아아, 나도 그만 잠이 드나 봅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