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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신춘무등문예 ‘동화’ 당선작 : 토끼풀꽃 선물/배순아 |  | |
| 학교 앞에는 기다란 백사장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습니다. 수평선과 백사장에 갇혀있는 바다가 아름답습니다.
현우네 학교는 바다와 낮은 산에 둘러싸인 시내 변두리의 조그마한 학교입니다. 뒤뜰에 커다란 팽나무, 은행나무, 벽오동나무가 빽빽하게 서있고, 그 짙은 그늘에서는 매미가 하루종일 매암매암 울고 있습니다.
현우는 여름내내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으면, 같은 반 성구가 떠오릅니다. 말하지 않는 성구도 매미처럼 시원하게 소리 좀 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긴 건 멀쩡한 녀석이 왜 하필 그런 병에 걸려서…”
어른들은 성구를 보고 자폐를 가진 아이라고 합니다.
성구의 병은 학교에 오면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랍니다. 마치 무서운 벌을 서고 있는 아이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발에 쥐가 나고, 또 여름에는 엉덩이에 땀띠가 나서 고생할 텐데 말입니다.
흰 얼굴에 까만 머룻빛을 닮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성구는, 5학년인데도 몸집이 작아서 2학년 짜리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현우는 성구를 좋아합니다.
성구는 현우네 동네에 삽니다. 외톨이인 성구가 하는 일이라곤 풀밭에 앉아 풀잎을 뜯어 으깨거나, 코에 대고 큼큼거리는 것입니다. 그런 성구를 못하게 말리거나 야단치면, 아예 땅바닥에 납작 엎어져서 몇 시간이고 화가 풀릴 때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모두들 일으키려다 그만 포기하고 맙니다.
유난히 풀을 좋아하는 주성구를 사람들은 ‘푸성구’라고 놀립니다. 학교에서도 교실에 조용히 그림처럼 앉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아이들의 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고개만 돌립니다.
“성구야, 우리 운동장에 나갈까?”
“……”
현우가 중간놀이 시간에 함께 나가자고 말을 걸어보지만,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는 중간놀이시간, 체육시간이나 과학실습, 특기적성 어느 것도 함께 하지 않고, 성구는 교실만 지키고 있습니다.
성구는 상상의 세계 속에 갇혀 삽니다. 마음속으로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성구는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늘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철없다고 무시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성구는 굉장한 천재일거야.”
“아냐, 어쩌면 예언자일지도 몰라.”
“혹시…, 별나라에서 지구여행을 온 어린 왕자인지도 모르지. 낄낄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새떼처럼 떠들며 비웃어도 오직 성구만 깊은 바다 속의 잠수함처럼 조용히 가라 앉아있을 뿐입니다.
가끔 특수반 선생님이 오셔서 성구에게 말을 걸어봤다가, 대답 듣기를 포기하고 도로 가십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성구를 선생님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가만 놔둘 뿐입니다.
성구는 어렸을 때부터 순둥이라고 불릴 만큼 순했답니다. 부모님이 뱃일을 나갈 때마다 하루종일 혼자 방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성구가 여섯 살 때, 불행히도 성구 아버지가 고기잡이 뱃일을 나갔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고장이 나서 멈춰버린 배 밑바닥으로 들어가, 스크루에 감겨 있는 그물을 풀어내다, 갑자기 스크루 날개가 돌아가는 바람에, 휘말려 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 넋이 나간 성구 엄마는 바닷가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이웃 어른들이 혀를 차며 위로를 했습니다. 얼마 동안은 현우네 엄마를 따라 쥐포공장에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이면 언제나 성구 엄마는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성구 엄마의 병이 깊어지자, 혼자 사는 외할머니가 성구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성구는 엄마를 찾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말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에 오면, 화장실 갈 때 외에는 항상 그 자리에만 앉아있어, 그 모습이 마치 종이인형 같고, 허깨비 같아 불쌍해 보입니다. 현우는 성구 곁에 다가가 말을 걸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작년에 현우는 점심식사를 굶고 있는 성구에게 점심을 먹여보려고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성구 짝꿍이랑 함께 살살 꼬드겨서 급식실 입구까지 데리고 갔으나 급식실 앞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억지로 밀어 넣으려던 아이들에게 저항하던 성구가, 갑자기 머리를 벽에 마구 찧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선생님이 나서서 말리고 달래 겨우 교실로 데려왔는데, 그 작고 빼빼 마른 아이가 무슨 힘이 그리 센지,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이 뻘개져서 씩씩거리는 성구를 보고,
“얘들아, 성구를 절대 건들지 마라.”
선생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5학년에 올라와서 성구는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담임을 여자 선생님이 맡으셨는데, 이 학교에 오시기 전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다니는 성혜학교라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신 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 성구에게 많은 관심을 쏟으십니다. 운동장 조회 때 밖에 나가시면서,
“ 주성구, 선생님 가방 좀 맡아줄래?”
하시면서 선생님 가방을 성구 책상 위로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성구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실 때까지 가방을 꼭 붙잡고 잘 지켜줍니다. 선생님이 칭찬하실 때면 성구는 눈으로 웃어 보입니다.
학급아이들도 선생님처럼 성구에게 말도 걸어주고, 잘 대해줍니다.
선생님은 풀꽃 그림을 즐겨 그리십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옆 화단에 가서 풀과 나무의 생김새를 그려보고, 이름을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그곳에 함께 따라간 성구는 선생님 곁에만 서있습니다.
아이들이 제각기 흩어져서 뭔가 적느라 수선스러울 때, 선생님은 토끼풀꽃이랑 개망초꽃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스케치를 하기도 합니다. 성구는 그런 선생님 옆에 서서, 선생님이 바라보는 풀꽃들을 함께 바라봅니다.
바다가 화난 얼굴로 토라진 무더운 여름날의 오후였습니다. 현우는 너무 더워서 학교앞 문구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을 향해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었습니다. 앞서 갔던 성구가 혼자 앉아, 담이 그어놓은 긴 그림자 속에 파묻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다가가서 보니까, 토끼풀 이파리를 한 잎 한 잎 또옥똑 따면서 홀린 듯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엄마 풀잎, 아빠 풀잎, 내 풀잎…”
성구는 현우가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구가 말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은 현우는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토끼풀은 세 잎 모두 한 줄기에 붙어사는데, 성구 혼자만 남겨두고 떠난 엄마아빠가 그리워 토끼풀잎을 헤아리나봅니다.
현우는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손등에 흐르는 것을 핥아먹으려다, 땅바닥에 오랫동안 엎어져서 토끼풀 더미에 코를 박고 있는 성구의 등을 슬쩍 건들었습니다.
성구는 깜짝 놀란 듯 옷을 털고 일어나 앞서 걸어갔습니다.
“야, 주성구, 같이 가자.”
성구가 멈춰 섰습니다. 현우는 녹아 흐르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흔들면서,
“아이스크림 먹을래?”
더운 날씨에 점심까지 굶었으니, 성구는 몹시 지쳤고, 먹고 싶어하는 듯 했습니다. 현우는 말하지 않아도 성구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구는 눈으로 말하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현우가 아이스크림을 대주자, 턱을 내밀어 한 입 쪽 빨았습니다.
성구 한 입, 현우 한 입,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현우가 장난을 치면, 웃기도 하고, 말을 걸면 ‘응, 아니, 싫어’정도는 하는데, 학교에서 만나면 여전히 딴 사람 같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언제나 성구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시던 선생님이 며칠 째 결근을 하셨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담임 선생님 대신 교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우리 선생님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응… 너희 담임 선생님은 급성신장염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아이들은 제 각기 ‘급성신장염’을 한마디씩 오물거리며 읊조리더니,
“에이… 그럼 언제 다 나아요?”
“한 보름은 입원하셔야 될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누구보다도 성구의 눈꺼풀이 아래로 쳐졌습니다. 학교를 마친 후, 아이들끼리 선생님 병문안을 가기로 했습니다. 동생 돌봐야된다고 빠진 친구들 외에는 모두 교문 앞으로 모였습니다. 다 모여도 열 두 명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아프신 선생님이 걱정이 되었는지 성구도 왔습니다.
선생님이 입원하신 병원은 버스 정류장을 여섯 곳이나 거쳐야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이층 병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습니다.
“너희들 왔구나”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시는 선생님은 하루 사이에 환자가 다 된 모습이었습니다. 성구는 문 옆, 맨 꼴찌에 서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둘러보시더니, 성구를 보고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성구야, 이리 가까이 오렴.”
쭈뼛거리며 다가서던 성구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검은 비닐 봉지에서 뭔가를 뽀스락거리며 꺼냈습니다.
선생님께 내민 것은 신문지로 둘둘 말아 싼 토끼풀꽃 한 묶음이었습니다.
뜻밖에 성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받자, 선생님은 환히 웃으셨습니다.
“우리 성구가 선생님을 많이 걱정했나 보구나.”
선생님은 목을 길게 빼고 입술을 뾰족이 말아 내밀며 성구의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셨습니다. 성구는 늘 하던 대로 말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은 성구의 입에서 무슨 말인가를 듣고 싶어하지만 성구는 항상 입을 닫고 삽니다.
며칠 후, 선생님이 퇴원해서 다음날 교실로 와보니, 성구의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오시지 않자, 성구는 그 동안 결석을 했던 것입니다.
3교시가 끝나자, 담임 선생님은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성구네 집이죠?”
“…”
선생님은 한 손으로 학급 경영부를 넘기며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너 성구지. 성구 맞지?”
분명히 성구가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처음 듣는 성구의 목소리가 믿기지 않은 듯 전화기에 바짝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구야, 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병이 다 나아 학교에 나왔는데…,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거지?”
“…네…”
성구는 자기만 간직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슬며시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성구는 담임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학교에 나가지 않을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너무 반가워 말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엉겁결에 말을 한 성구 자신도 놀랐을 겁니다.
풀들은 꽃으로 웃는데, 성구는 무엇으로 웃을까요. 선생님은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성구가 학교에 와서 환하게 웃으며 말할지도 모르니까요.
선생님께 성구가 말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 친구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습니다.
현우는 성구가 이제부터 학교에서도 자신 있게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구의 닫힌 마음 속에는 무엇이 웅크리고 앉아있어 학교에 오면 말을 하지 않는 건지 현우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구가 선생님께 드린 토끼풀처럼 현우도 성구와 어깨를 걸고, 늘 함께 어울려 지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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