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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사람속의검은항아리 |  | |
| 시인의 삶이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가 보다. 기형도가 그러했듯 그 또한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그러한 삶이 이미 그의 소설을 보는 나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까. 그의 연보를 보다가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 미완성 장편 소설 ‘동물원. 미완성이라..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이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알 수 없는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아쉽고 또 그리웠다. 실수로 단지를 깨뜨린 나. 그에 대한 무시무시한 처벌이 두려운 나는 눈사람 속에 아무도 모르게 깨진 단지를 감추고는 하루 종일 말 그대로 방황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방황한 나에게는 내가 예상한 벌은 내려지지 않는다. 눈사람도, 깨진 장독대도, 화를 내며 나오는 어머니도 없었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세계,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들어온다. 울어 버린다. 타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죄의식을 가졌던 나, 그런 나는 볼따구니를 비트는 어머니의 웃음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이 곳에 그의 유년이 있다. 이 곳의 내가 곧 현실의 나이다. 유년의 그가 있던 곳, 미아리가 철거되려 한다.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유년이, 그를 지탱해 왔던 기억이 지금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깨진 항아리 속에 일을 보는 것, 그것뿐이다. 그는 울고 있다. 어엿한 가장이 울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프고 힘든 과거를 가진 그곳이지만 그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그 기억들을 잃어간다는 것에 대해 그는 쓸쓸한 아픔을 느낀다. 흰 눈사람, 죄의식을 피하기 위한 나만의 보호막. 검은 항아리, 아무리 꼭꼭 숨겨도 결국은 내면에 들어있는 죄의식.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는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죄의식에 대한 사고를 요한다. 왜 그는 깨진 항아리에 일을 보며 울고 싶었는가. 그것은 또 다른 죄의식의 표출인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죄의식을 벗어버릴 수 없기에 한 그의 선택인가. 그는 소설을 쓴다. 주인공이 일을 보듯, 그는 힘겹게 글을 쓴다. 그는 그것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것들이 결국은 똥이 되듯,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글을 쓴다. 정감 있는 시어들의 등장으로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삶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과 더불어 한 걸음 한 걸음 삶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하는 그의 작품들. 하지만 지금 그는 없다. 미완성의 작품들을 남긴 채 그는 병마와 오랜 시간 싸워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그였기에, 죽음을 코 앞에 둔 그 시간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였기에 우리는 그를 더욱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무언가 더 전하고자 했기에, 더 할 말이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지금 옆에는 그의 소설집, ‘자전거 도둑’이 있다. 조금 여유가 생기는 얼마 후의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그가 또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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