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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의 화장법 |  | |
| 아멜리 노통 <적의 화장법> / 보헤미안
적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아멜리 노통의 중편<적의 화장법>은 최근에 읽은 소
설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유럽에서 일고 있
는 아멜리 노통의 열풍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소설은 한 불완전한(우리 모두) 인간의, 자아와의 불행한 싸움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살
면서 여러 가지 이름의 적들과 부딪는다. 늦은 밤거리를 위협하는 강도들의 위협. 직장 상사
나 동료들, 함께 몸담고 있는 단체들 속에서의 싫은 사람들의 위협. 각종 질병과 인간관계로
파생되는 공공의 적들, 그런 외부적 적들은 그 적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내부에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이 소설은 --그러한 정신적인 고통들, 이를테면 내부의 적과 싸우는 한 남자의 이
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항에서 비행기 연착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중 한 중년의 실업가에게 낯선 사내가 접근하면
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사내는 시종일관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하여 실업가를 괴롭힌다.
결국 사내의 말장난에 말려든 실업가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강간이나, 살인 등, 그 낯선 사
내의 과거에 얽힌 엄청난 고백을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상황은
계속해서 반전을 거듭하고 마침내 마주치게 되는 것은 결국 내부에 자리잡은 적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다소 기억하기 불쾌한 기억들을 품
고 살게 마련이다. 그것은 강간의 기억일수도 있고 누군가의 물건을 훔친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식 속에서 그와 같은 불행했던 기억들을 지우고자 노력한
다. 이 소설은 그와 같은 인간 본성의 기억을 처절하게 파헤친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기
억의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멜리 노통의 문체는 인간의 깊은 의식세계를 끝없이 두드린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악마성
과, 죄에 대한 유기. 사악한 상상력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게 한다. 19
세기의 작가 E. T. A호프만의 단편 ´모래 사나이´나 ´적막한 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공포
를 유발하는 적은 인간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이다, 라는 호프만의 해석은 아놀드 노통에
이르러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셈이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미로의 날들´에서는 한 천사와 사악한 악마들의 싸움을 보여준다. 천사
가 어리숙한 대중이라면 악마는 단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폭력의 전형이다. 미로의 날들
에서 천사와 대립하는 악마는 외부의 적이다. 아멜리 노통의 이 소설은 실존하는 내부의 적
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로의 날들´과 좋은 비교가 된다.
또 유럽에서는 아멜리 노통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은 사람으로 독서가들을 구분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 현상은 1950년대 미국에서 샐린저에 의해 <호밀밭의 파수꾼>이 발
표 되었을 때 코우필드 신도름을 낳았던 주인공 <코우필드>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
는 사람으로 독자들이 나뉘었듯이 말이다. <물론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다.> 당신은 코우
필드를 좋아하는가? 혹은 아멜리 노통을 좋아하는가? 개인적으로 두 사람 모두 좋아한다.
번역자도 일부 지적했듯 이 소설을 읽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독자는 묘하게도 다음 단
계에 걸치는 극한과 대립의 감정 상태를 겪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황담함 --> 답답함 --> 역겨움 --> 섬뜩함 -->충격]
황당함은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거는 낯선 사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며 답답함은 그런 낯선
사내 하나 뿌리치지 못하고 말장난에 말려드는 주인공에 대한 동정심이며 역겨움은 태연하게
살인과 강간의 과거를 고백하는 낯선 사내의 뻔뻔함에 기인한 것이며 그 사내가 주인공을 위
협할 때 독자는 똑같이 공포에 빠지게 되고 마지막 그 공포가 현실화되었을 때 충격에 빠지
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나를 파멸시키는 것은 나 자신이다.
희망으로 들뜨게 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다.
도대체 이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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