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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오공, 원더우먼 그리고 진화론 |  | |
| ◆ 제목 : 손오공, 원더우먼 그리고 진화론
◆ 주제 : 초감각 능력을 지닌 생명체, 그 존재 가능성을 진화론에 비추어 살펴본다.
◆ 참고도서 : <동물행동> 본능의 좌충우돌
<빛> 드디어 빛이 보인다
<소화> 위대한 드라마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만화 영화
를 즐겨 보곤 했다. 으레 그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조차 없는 일들, 가령 무거운 돌에 깔
려 신음하는 아이를 지구 상공 먼 곳에서 맨눈으로 식별할 수 있었고, 나쁜 일을 저지르고 쫓기는
악한의 체취를 추적하여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쉽사리 알아낼 수 있었다.
한때, 나는 원더우먼이나 손오공처럼 초능력―더 정확히 말하면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의
감각 영역 모두에서 뛰어난 초감각 능력―을 지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기도 했었지만,
차츰 나이가 들면서 초감각 능력을 고루 갖춘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허구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러한 초월적 능력을 지닌 생명체
는 가공의 세계에만 존재한다. 나는 이 글에서 초감각 능력을 고루 지닌 생명체가 현실 세계에 존
재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현재 지상에는 다른 동물에 비해 특정 감각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
인 예로―시각적 능력이 매우 발달된―매를 들 수 있다. 매는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보다
4배에서 8배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다. 인간과 매의 이러한 시각 능력의 차이는 원추
세포와 간상세포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황반의 차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눈에
는 각각 하나의 황반이 있는데 비하여, 매의 눈에는 앞쪽과 옆쪽을 향한 황반이 각각 둘씩 있다. 또
한 매의 황반에는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그 밀도가 인간의 황반
의 약 5배 정도인데, 이 또한 매의 초시각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뛰어난 감각 능력을 지닌 생명체로 잘 알려진 다른 예로는 후각 능력이 발달된 개를 들 수 있다.
특히 진돗개는 그 후각 능력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의 후각 능력은 인간의 후각 능력의 1만
배 이상이라고 한다. 한편 후각 기관이 특별히 발달한 개들은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미묘한 호르몬
의 변화를 감지해낼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생물학적으로 동일인으로 여겨지는 일란성 쌍둥이
를 개들이 후각으로 구별해내는 것으로 입증되기도 한다.
이상에서는 어떤 한 감각 능력이 특별히 발달된 생명체의 예를 살펴보았는데, 청각 능력이 발달
된 박쥐와 촉각 능력이 발달된 말미잘 등도 이러한 예에 속한다. 문제는 이러한 초감각 능력을 고
루 갖춘 생명체가 현실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매의 시각과 개의 후각, 그리고
박쥐의 청각 등에서 관찰되는 감각 능력이 고루 발달된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진
화론은 근대 과학의 성립 이후 생명체의 존재 양식을 설명하는 가장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
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윈은 생물 세계에 나타나는 변이를 생존 경쟁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자
연적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변이는 보존·선택되지만, 불리한 것들은 소멸되기 쉽다고 이해했다. 그
리고 생존을 위해 유리한 변화들이 보전되고 해로운 변화들이 제거되는 변화 과정을 ‘자연선택’―
‘자연’이 생존에 유리한 생물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매의 시각 능력이 발달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진화론에 따르면 매의 시각
능력은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발달된 것으로 이해된다. 즉, 매는 보다 많은 사냥감을 얻
기 위해 더 멀리 보는 능력에 해당하는 형질을 지니게 되고, 이러한 형질이 유전적으로 전이되었
다. 이제 여기서 서론에 제시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이 지구상에는 왜 모든 감각 능력이 고루 발달된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첫번째 생각해 볼 수 이유는 생물 외적인 요인으로, 초감각 능력을 요구하는 생존 환경이 존재하
지 않는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어떤 생명체의 특정 감각 능력이 발달된다는 것
은 그 생명체가 생존하는 환경에서 그러한 감각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어떤 생명체에게 여러 감각 능력이 고루 발달된다는 것은 여러 감각 체계를 최대한으로 발달
시켜 총동원하여 살아가야만 할 환경 조건이 요구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러한 환경이란 어떠
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 그러한 생명
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러한 환경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생물 내적 요인으로, 생명체의 감각 능력에는 일정한 형식
의 ‘총량 불변의 법칙’이 있어 어떤 감각 능력이 발달되면 그에 비례하여 다른 능력이 발달되지 않
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모든 생명체는 각기 활용할 수 있는 감각 능력의 총합에 일정한 제
한이 있으며, 각 생명체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최대한 적응하기 위해 생존에 요구되는 감각
능력을 특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박쥐의 예에서 그 타당성을 검증해 볼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박쥐는 청각 능력이 발달하였지만 시각 능력은 심하게 퇴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이는 ‘감각 능력 총량 불변의 법칙’의 구체적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초감각 능력을 고루 갖춘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생물 외적인 면과 생
물 내적인 면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 과정의 최정점에 있는 생명
체이다. 이는 곧 인간이 ‘자연선택’에 가장 잘 적응하여 왔음을 뜻하는 것으로, 생물 외적인 측면에
서는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여 왔음을 의미하고 생물 내적인 측면에서는 ‘감각 능력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감각 능력이 잘 진화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의 감각 능력은 앞
서 살펴본 대로, 결코 다른 동물에 비하여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 인간의―다른 동물과의 차이로
지적되는―주된 특징 가운데 한 가지는, 인간은 감각 능력보다는 사고 능력이라는 면에서 다른 동
물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제까지의 자연 환경은 생명체
로 하여금 감각 능력 그 자체보다는 사고 능력을 포함하는 지각 능력의 발달을 요구하였고, 인간
은 이러한 자연의 요구에 잘 적응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은 자연이 선택한 초능력적 존재인가? 적어도 진화론과 앞서 가정한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인간은 감각 능력과 사고 능력을 포함한 ‘지각 능력 총량 불변의 법칙’에 가장 잘
적응한 초능력적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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