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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고 |  | |
|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고
언제부턴가 사회범죄로 ´성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학생인 소녀 가장이 동네사람에 의해 성폭력을 당해 출산을 하고, 어느 여중학교에서는 화장실에서 출산을 했다는 매스컴 보도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성 윤리가 퇴색되어 가고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격마저 무시된 채 저질러지는 이런 성범죄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서구사회의 좋지 않은 점을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한심할 뿐이다.
신이 주신 섭리를 파헤치는 행위는 마땅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읽게 된 이 책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여성에 대한 이제까지의 사고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제목만 보면 무슨 멜로나 중세 여자들의 사랑얘기 같아 보인다.
라디오 광고를 통해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듣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라디오 광고는 중요한 것들을 빼놓고 있었다.
배경시대가 원시시대라고 하면 잘 팔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제목도 우리나라에서 바꾸어 놓았고,-원제는 Reindeer Moon ´순록의 달´이다-
또 내용도 여성의 패미니즘적인 면만을 강조한 듯하다.
이 소설의 작가는 영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소수민족을 조사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인류학자로서의 통찰력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소녀가 여인이되고, 아내가 되고, 또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짧은 인생을 주인공인 원시부족 여인들의 삶을 통해 여자의 존재가치를 극명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독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최고권위 문학상 중 하나인 ´훼밍웨이 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이 소설에는 2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작가의 단순한 상상이 아닌 연구의 검증을 거친 과학적인 근거와 확실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주 생생하고도 재미있게 그려 놓았다.
아마 2만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은 지금에 와서 원시부족들의 삶이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아닌 오늘을 사는 바로 이웃사람들의 일처럼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종족번식과 양식(糧食)의 해결이 생존의 최우선 가치였을 원시인들의 그런 생활이 무지하거나 천하게 여겨지지도 않았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토테미즘 신앙에 의해 자연을 숭배하는 갖가지 의식들이 어리석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주인공 마틴은 고대 원시시대의 어느 부족에서 태어난다.
그 당시엔 모든 부족들이 다 그랬듯이 여자가 다른 부족 사람들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애정이나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부족에서 다른 부족으로 그 만큼의 노동력이 떠나감을 뜻하거나 두 부족간의 결합을 뜻하기도 한다.
마틴은 원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 그 부족의 사람들과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부족이 10여명의 소수로 구성되어 있기에 마틴은 그녀가 속한 부족과 다른 부족들과의 혈연관계에 있게되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종족번식의 수단이며 집안 일을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 삶 속에서 마틴은 많이 힘들어하고 또 울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자식들이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 자식들이 또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인생의 진리를 알게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녀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기게 된다.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였으므로 마틴의 남편은 이웃부락의 두 명의 여인과 결혼을 한다.
상대적으로 그녀들에 비해 나이와 외모가 뒤쳐지는 마틴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나 다른 여인에 대한 열등감 등, 여성 본연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남편은 언제나 그녀를 조강지처(糟糠之妻)로 대접해 주며 사랑해 준다.
결국 그녀의 자식들이 계속 번창하며 마틴은 그런 자식들에게 훌륭한 어머니로 기억되며 눈을 감는다.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물론 독자들에 따라 각자의 견해차이가 있겠지만...-
우린 구석기인들 하면 인류가 진화되기 이전의 무식하고 아무 생각없는 원시인의 존재로만 이해했었다. 그러나 원시부족에도 불문율과 도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은 오늘날처럼 친족관계와 촌수가 확실한 것도 아닌, 얽히고 설킨 복잡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근친상간의 죄로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후기 구석기 시대였던 이 시기에는 남성 우월주의가 나타난 시기여서 여자들은 집에서 불을 피울 나무나 구해오고 아이를 낳기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남자들과 같이 사냥도 하고 자기의 주장을 말하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점차 크면서 현실에 의해 남자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녀의 그런 반응은 원시사회의 높은 벽에 의해 죽음이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들녘의 짐승처럼 분별없는 행위를 하거나 남을 빗대어서 비난하면 그것이 최대의 모욕이며 가장 큰 수치로 여기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아, 이랬구나 !´하고 지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름대로의 흥미를 느낄 것이며, 무지한 것으로만 보아왔던 원시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우리의 조상으로 섬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또한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한가지 질문거리가 생겼다.
2만년이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자의 삶에 관한 한 변화된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
고기를 구해오고, 오두막을 짓고, 일족을 지휘통솔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고작해야 오두막을 따뜻하게 하고, 고기를 구울 땔감을 구하거나 바느질을 한다든지..., 하는 역할에 만족했던 원시시대의 여인들.
언제든 남자에게 함부로 다루어지고, 다만 종족번식의 도구로써만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들의 삶을 보면서, 그리고 그러한 굴종(屈從)의 세월 속에서도 변혁을 꿈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아왔던 그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고 또 했다.
2만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시대 여인들이 처했던 상황에서 단 몇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여성들의 위상에 관해서 말이다.
오늘날 여성을 종족번식의 수단이 아닌, 오직 성적 욕구충족으로 보고있는 시각이 오히려 2만 년 전의 그 시대보다 더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 남성들이 그러한 시각을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을 방치했을 경우 그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어느 소설제목처럼 언제나 어느 시대나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2만년의 세월이 지난다 해도 여전히 여자만의 몫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세상의 절반씩을 공유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편가르기´ 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 가를 제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
과연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종족 번식 등등, 오로지 원초적인 몇 가지 삶의 형태만 있었던 2만 년 전의 시베리아 남부 어느 계곡으로부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땅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딸들의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행로 위에 피와 눈물로 짜여진 딸들의 발자국은 설령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침묵하고 있을지라도 인간의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생긴 또 다른 좋은 점은 남자와 여자, 신이 인류를 창조할 때부터 생겨났던 이 관계를 후기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때묻지 않은 광대한 자연 풍광, 동물과의 오묘한 교감과 아름답다 못해 처절하도록 순수한 심성을 가진 원시인들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를 밑바탕으로 진지하게 사유(思惟)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젠 거리나 극장을 가득 메운 여자들의 미(美)보다는 어머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이나 따뜻함을 이제서야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어찌되었든 이 소설은 재미가 있다.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딸 들´ 두 권과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의 여자´ 한 권 등, 용량이 무척이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가 않았으며, 그냥 재미뿐 아니라 그 소설에서 얻는 지식도 많으니 이를 두고 바로 일석이조(一石 二鳥)라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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