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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 사회와 그 적 들´을 읽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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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 들´을 읽고
작가 「김소진」은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하였으며, 1991년 「경향신문」에 ´쥐잡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열린 사회와 그 적 들(1993)´, ´고아떤 뺑덕어멈(1995)´, ´자전거 도둑(1996)´,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1995)´, ´양파(1996)´, 장편 창작동화 ´열한 살의 푸른 바다´, 짧은 소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1996)´ 등으로 1996년에 제4회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김소진」 작가의 소설을 읽노라면 보통 작가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기존 작가들이 쳐 놓았을지도 모르는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고 잘도 피해갔기에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사회현실과 주인공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그린 비판적 리얼리즘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사회의 솔직한 모습만을 보여 줄 따름이지 마지막에 가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은 남겨져 있지 않다.
이 점이 바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구별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비판적 리얼리즘을 가장 잘 대변한 작품으로 ´적리(赤痢)´를 들 수 있다.
그의 소설은 80년대 후반의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써내려 간 것이기에 읽는데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입맛을 되살리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그의 또다른 소설을 읽고 싶게 만드는, 군침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 들´은 1991년 가을 「문예중앙」에 실린 글이다.
이 소설은 열사의 시체를 지키는 백병원의 밤샘 현장에서 벌어진 세칭 밥풀때기들과 지식인 사회론자들의 대결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상황이 바로 ´열린사회의 적´으로 파악된다.
그럼 여기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열린 사회´란 어떤 사회를 뜻하는지 생각해 보자.
「김윤식」 교수의말에 따르면, ´열린 사회´란 반증 가능성 반박 가능성 또는 테스트 가능성이 있는 점차적 사회공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일거에 목표에 이르고자 행동하는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고, 그 목표에 노예화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열린 사회´에 대한 정의는 「김소진」 의 소설이 1945년에 출판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철학자인 ´칼 포퍼(Karl Popper)´의 명저 ´개방사회와 그 적들´의 제목을 붙인데서 의미심장한 일로 해석한 부분이다.
이렇듯이 이 소설은 80년대 후반 무렵의 혼란한 사회적인 틈을 소재로 삼아 ´열린 사회´로의 길이 어떠한 것이며, 이를 방해하는 적이 우리의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적리(赤痢)´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기자인 ´노순태´, 또 한 사람은 시청 시설계획과 주임 ´홍석주´이다.
´홍석주´는 자신의 예상과 빗나간 전보발령 인사와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의 돌림병으로 인해 정신적 쇠약의 상태이고, ´노순태´는 기자로서 자신의 위치와 한 마을의 대책위원으로서의 위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부상을 사회적 책임으로 돌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그 역시 정신적 혼란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우연히 총알 택시에 합승을 하고, 그러한 첫 만남은 포장마차에 함께 가게되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포장마차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은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김승옥´의 소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만남이었지만 ´김소진´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의 인연을 가지고 있어 단지 우연 만으로는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어떤 신문사에서는 필연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우연을 필연으로 끌어올리기´란 헤드라인과 함께 실린 기사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작품의 높은 밀도유지를 가능케 하는 힘이 이 특정지역이 뿜어내는 분위기와 관련.....영등포가 그러한 사례..... 두 사람의 이런저런 인생담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소설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이 작품 속에는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대목이 깔려있는데 ´요즘은 누굴 보든지 꼭 어디서 본 듯한 착각에 곧잘 빠지는 버릇이 생겼다´가 그것이다.
이것은 우연성을 필연성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철거반을 거느린 ´홍석주´가 밀어붙여 깔아뭉갠 현장에서 허리를 다친 노파는 사실 지금 마주앉아 수작하는 ´노순태´의 노모(老母)였던 것, 소설이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는 우연성이 어째서 필연성으로 바뀌었느냐, 고쳐말해 어째서 무쇠라든지 사금파리의 세계가 순금덩이로 변했느냐고 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작품이 빛을 뿜어내게 된다.
그 물음을 가능케 한 곳이 영등포였다.
꿈(부모, 고향)을 꿀 수 있는 곳이 영등포인 까닭이다.
영등포라는 특정공간이 가까스로 마음의 안식처일 수가 있었다.
어째서 그러한가. 시를 버린 ´노씨´가 시를 되찾을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개씹앓이 하면 아래뜸 황대목 아저씨 떠오른다´라는 목소리를 회복케 하는 곳이 영등포인 까닭이다.
지게꾼인 ´홍씨 아비´가 죽은 곳이 영등포인 까닭이다.
영등포란 무엇이겠는가. ´적리(赤痢)´와 같은 질명이자 시(詩)였다.
이를 두고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변질시키는 비결이라 할 것이다.
위의 기사와 같은 것은 글의 첫 부분부터 시작되는 영등포의 묘사에서부터 알 수 있다.
영등포의 밤.
벼루 바닥에서 갈다 만 먹물을 흠뻑 적셔 허공에 뿌린 듯, 역사 너머 한 구석엔 흐린 별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다.
서늘한 택시 차창에 힘없이 옆이마를 붙이고 눈동자를 씀박 거렸던 순태는 까칠한 입술을 하릴없이 서걱서걱 맞부볐다.
묵직한 혀 뿌리로 목젖을 헤집으며 마른 입안에서 생침이라도 돋우려 애썼지만 혓바닥 위로 모래알처럼 도도라진 맛 봉우리들 때문에 입천장이 아릿한 느낌만 돌 뿐이었다.
´김소진´ 소설에는 세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김소진´은 소설의 처음부터 묘사를 해 두고 독자의 발을 묶어 두고 있다.
이 부분에서 벌써 주인공들의 내면을 읽었으니 말이다.
역사에 던지워진 자신들. 하지만 하늘에 흐린 별하나 깜박거리지 않듯이 그냥 그러저러하기만 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내면이 담겨 있었다.
´쥐잡기´는 ´부자이대(父子二代)´에 걸친 쥐잡기 시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강렬한 문장력 발휘에 있다.
1991년도 신춘문예 총평을 쓰는 어느 마당에서 한 평론가는 이렇게 적은 바가 있다.
´단 한마디의 현재형도 용납하지 않는 이 철저한 과거형 일변도의 글쓰기란 작가의 강렬한 독아론(讀我論)을 새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뚜렷한 주관이랄까 사상을 가진 자, 그러니까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독아론(讀我論)에 빠져 있으면서도 소설 나부랭이를 쓸 수 있을까´ 라고 하지만 이런 평론가의 의문쪽으로 작가는 조금도 기울임 없이 글쓰기를 계속해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쥐잡기´는 속담 사전적 표현뿐만 아니라 기층 민중어에 기반을 둔 언어군을 택하고 있어서 어휘에 심각한 장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빼고는 여러 면-소설적 표현력(묘사와는 거리가 먼 속담스런 민중어에 개성적인 묘사를 동시에 구사), 소설적 흥미 유발과 관계된 줄거리(´쥐잡기´의 줄거리)-에서는 완성도 높은 소설이었다.
특히 ´쥐´로 표상되는 환각에 관한 것은 기층 민중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한층 심화된 이데올로기 소설의 면모를 띠게끔 하였던 것이 아닐까.
솔직히 문학적 측면에 있어 아주 작은 지식을 가진 내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읽고 때로는 비판하고, 또 때로는 칭찬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학적 전문용어를 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소감을 남긴다고 시건방을 떨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에겐 아무런 악의가 없다.
난 다만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내가 접한 모든 책들-하다못해 만화책이나 엽색서적일지라도-을 읽고 나서는 나름대로의 기록을 남기는 버릇이 있다.
잘 모르는 용어가 있으면 이곳저곳을 뒤져서라도 꼭 알아보는 습관이 생겼고, -모르면서도 써 놓은 것들도 많지만- 또 비평가들의 비평내용을 스크랩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분들의 좋은 지식과 말씀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또 그곳에 나의 느낌을 덧붙이고 하다보니 퍽이나 유식한 듯해 보이는 것뿐이다.
평을 당한 작가 분들이나 부족한 평(소감)을 읽는 독자 분들의 너그러운 이해가 있으시길 바란다.
´김소진´의 소설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테디 셀러 !´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러한 말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단단한 문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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