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옥루몽 |  | |
| 옥루몽-김남희
「옥루몽」은 말 그대로 대하소설이다. 일단은 조선시대의 여타 고전소설들과는 다른 방대한 양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사건들 등은 「옥루몽」을 대하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하게 한다. 하기는 그 덕에 소설을 읽는 내가 굉장한 시간과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했으나 읽고 나니 그 동안 투자한 시간이나 에너지가 아깝지는 않았다. 「옥루몽」은 적어도 구운몽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옥루몽에서 나타나는 탁월한 서사적 구조와 등장인물들의 개성, 반전의 미학 등이 어울려 빚어내는 소설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제를 위하여 며칠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내리 읽어대어 앞서 언급한 작품의 깊은 맛을 음미하지 못한 면이 있기는 하다.
옥루몽의 줄거리는 너무나 방대하고 그 구성 또한 절묘하여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대충 간추리자면 이렇다. 천상의 백옥루에서 인간세상을 동경하던 문창성은 함께 酒宴을 즐기던 옥녀, 제천선녀, 천요성, 홍난성, 도화성 등의 선녀와 함께 謫降하게 된다. 문창성은 곧 양씨집안에 태어나 이름을 창곡이라 하였다. 그는 타고난 영특함과 탁월한 성품 등으로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남방의 반란을 진압하여 천자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된다. 그는 한림학사, 병부상서, 승상 등을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나중에는 30미만에 이미 연왕에 봉해지는 영광까지 누린다. 그는 함께 謫降한 선녀들을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그녀들은 항주의 名妓 강남홍, 강주의 名妓 벽성선, 윤각로의 令愛인 윤소저, 황각로의 令愛인 황소저, 축융왕의 공주인 일지연으로 환생하였던 것이다. 그 중에 윤소저와 황소저는 두 부인으로 나머지 여자들은 첩으로 맞이하여 양창곡은 처첩들과 함께 부귀공명을 누리고 또한 뛰어난 자식들을 낳아 가문의 영광을 이어나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련은 있었다. 次妃인 황소저가 창곡의 기첩들을 질투하여 집안에 갖가지 환란들을 불러오게 되는데 결국 황소저는 스스로의 악독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쳐 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들어 양씨 일문에서 추방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스스로의 허물을 깨달아 改過遷善하고 현숙한 부인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양창곡의 삶은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그는 중간에 간신의 농락에 걸려 어이없이 귀양살이를 가기도 하고 또한 젊은 나이에 南蠻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고초를 겪기도 하였으나 양창곡의 일생이 당대의 사대부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그는 문창성의 기질을 자신의 삶에 유감없이 발휘하여 국가에는 변함없는 충성과 부모에게는 한결같은 효도를 보인다. 또한 그는 세 명의 소실과 풍류를 아낌없이 즐기면서도 스스로 조심하는 군자의 풍모를 잊지 않았다. 그가 당대의 요조숙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천하의 명기들을 소실로 거느리는 것과 나이 30미만에 제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뛰어난 자질로 필연성을 획득하고 있다.
옥루몽은 얼핏 보면 양창곡 이라는 뛰어난 인물의 일대기라고 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당대의 사대부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입신양명에의 꿈과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세계관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입신양명에의 꿈과 사대부들의 사회적인 위치는 앞서 말한 창곡의 일생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거니와 당대 사대부들의 세계관은 창곡이 南蠻을, 또는 홍도국 등 여러 남방민족들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알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해서 국가적인 팽창을 기도하였던 여러 이민족들의 힘은 양창곡이라는 인물에 의해 여지없이 좌절되고 만다. 중국은 언제나 온누리의 창생을 굽어보는 천자의 나라일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세력들은 역적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는데 결국에는 모두 중화의 넓은 덕에 감복하여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리게 되는 것이다. 창곡은 이러한 세계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으나 작품을 읽은 내가 역시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개 오랑캐에 불과한 東夷族의 후예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좋게만 보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남만왕 나탁의 경우에 그는 중국을 제압하고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양창곡에게 도전하는데 작가의 입장에서 그는 천리를 거스르는 역적이었을지 모르나 당대 南蠻人이나 작품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라와 문화를 지키고자 한 애국자였을 뿐이었다.
또한 옥루몽은 단순한 위인의 일대기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영웅군담소설의 위치 역시 확실하게 갖고 있다. 양창곡의 여러 반란을 진압하고 전쟁을 통해서 자신에게 닥쳐온 위험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영웅들의 존재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참전과 승리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승리를 얻기까지의 고난에 찬 과정이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져 있기 때문에 옥루몽의 가치는 더욱 상승하는 것일지 모른다. 양창곡은 타고난 영웅의 자질로 전쟁을 수행하여 나간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엄밀히 말해 전쟁을 수행하고 갖은 시련을 통해서 승리를 얻는 과정에서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획득한다고 하는 편이 더 합당하다. 나이 이십세에 불과한 젊은 애송이가 전쟁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한결 더 성숙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양창곡은 문학작품에서 언급하는 문제적 인간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내가 옥루몽을 읽으면서 한 가지 주목했던 것은 바로 창곡과 함께 생사를 같이했던 강남홍의 존재였다. 대개 영웅의 처첩들은 아리따운 자태와 고운 마음씨, 또는 家事에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정도로 묘사되고 영웅들과 단순히 남녀상열지사의 苦樂을 함께하는 정도로 그려지고 있으나 양창곡의 첩인 강남홍은 그러한 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옥루몽 속에서 양창곡의 소실들은 모두 그 개성에 뚜렷하여 양창곡에 부수적인 인물의 수준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강남홍의 존재는 더더욱 독특하다. 그녀는 양창곡의 첫사랑이기도 했고 그와 함께 종군하여 자신의 무예를 마음껏 뽐내고 또한 양창곡이 갖지 못한 재주를 더욱 많이 갖고 있다. 그녀는 다른 처첩들과는 달리 양창곡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며 말 그대로 역경을 함께 헤쳐나가는 인물이다. 양창곡은 그녀를 단순한 妓妾이 아니라 삶을 함께 하는 知己의 존재로 여기는데 그들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강남홍은 홍혼탈이라는 이름으로 전장에서 무한한 활약을 하여 여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난성후에 봉해지는 영광까지 안게 된다. 이것은 작품이 씌여지던 당대의 사회를 생각하여 보았을 때 아주 특징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편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활달한 성정을 내보이는 일에 거침이 없다. 그것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이기도 하였으며 아울러 양창곡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었다. 양창곡에게는 두명이나 正妻가 있었으나 머나먼 곳에 있었던 그녀들보다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강남홍이 양창곡의 진정한 배필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강남홍의 존재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강남홍 이야말로 양창곡과 함께 작품의 무게중심을 잡는 두 주인공이었다.
대개의 고전소설에서는 처첩간의 갈등을 그림에 있어서 어진 정실부인과 간악한 소실의 갈등, 또는 전처의 어진 자식과 그것을 시새워하는 후처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옥루몽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식에서 과감히 벗어난다. 옥루몽에서는 앞서도 말했듯이 정처인 황씨가 양창곡의 소실을 투기하여 집안에 갖은 분란을 일으키는데 그녀의 모함을 받는 소실은 오히려 스스로의 不德을 자탄하며 죄를 청하는 어진 모습을 보인다. 실제적으로 사랑을 받는 첩들보다는 비교적 사랑받지 못하는 본부인이 투기하는 경우가 많음을 비춰보았을 때 이러한 설정은 상당히 사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한없이 착하고 악독한 사람은 스스로 뉘우치기 전에는 악독함의 밑바닥까지 치닫는 이분법적인 대결구도는 여전하여 조금 씁쓸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사실 나의 私見인데 여러 시앗을 보고 투기하지 않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황씨의 소행을 나는 얼마쯤은 이해할 수 있기도 하였다. 다만 괴롭힘을 받는 벽성선은 간도 쓸개도 없는 듯이 투기하지 않는 당대의 윤리적인 규범에 철저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오히려 인간적인 맛이 떨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뭐 그렇다고 해서 황씨의 악한 소행을 합리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황씨가 시가에서 쫓겨나 외조모인 마씨의 사당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투기한 죄로 인해서 지옥을 경험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의 인지상정을 너무나 무시한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의 소산인 듯이 보였다. 특히 황씨가 비몽사몽 중에서 만난 태임이 ´투기라는 더러운 것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것을 말하는 너는 썩 꺼지라´ 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건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닌가? 여자가 투기를 하는 것은 남성의 욕망만을 일방적으로 충족시키도록 되어있는 일부다처제도, 또는 일처다첩제도가 빚어낸 일인데도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양창곡은 아무렇지도 않고 질투하는 황씨만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물론 황씨가 투기하는 방법이 악독하기 그지없는 것은 죄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어찌 되었건 이러한 갈등의 과정을 소설 속에 삽입함으로써 옥루몽은 가정사소설의 성격 또한 갖고 있다. 거기다가 소설이 양창곡의 일대기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들이 성장하여 아버지의 뒤를 잇는 과정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가정사소설의 성격은 더욱 강해지는 듯이 보인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양창곡의 자식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을 뚜렸이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 양창곡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갖고 있는 영웅의 완벽한 성격들을 모두 하나씩 갖고서 태어나는 듯이 보였다. 아버지가 너무 완벽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해서 이러한 부분적인 장점을 이어받은 것 때문에 내 눈에는 그의 아들들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였다. 장남인 장성은 아버지의 호탕한 기운과 지략, 뛰어난 두뇌 등을 물려받아 20세 이전에 전쟁에서 큰공을 세우고 진왕에 봉해진다. 이것은 물론 그의 생모인 강남홍의 성정을 함께 물려받은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차남인 경성은 어머니인 윤소저의 窈窕하고 덕성스러운 기운을 물려받아 형과는 달리 문관의 길에 나서게 된다. 삼남인 인성은 이치를 숭상하고 재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는 명망있는 도학자가 되고 사남인 기성은 반악을 능가하는 뛰어난 외양과 방탕한 風情으로 황성에서 제일가는 풍류남아가 되어 장안의 기생을 모조리 섭렵한다. 오남인 석성은 부귀권세를 좋아하는 황각로의 외손이었는데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후광을 입어 황녀에게 장가든다. 이러한 아들들의 모습은 양창곡의 분신으로써 그가 갖고 있었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하나씩 나누어 가진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고전소설에서 ´아들과 딸 모두 부귀공명을 자손만대까지 누렸다´ 식의 결말보다는 훨씬 더 사실적이고도 짜임새있는 마무리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작가가 옥루몽이라는 크고 깊은 강줄기를 끌어오다가 이르게 되는 당연한 결말이었을 수도 있다. 옥루몽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장엄하고 화려하게 이어져 나가는데 이것은 작가가 지난 탁월한 역량의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앞서도 말했듯이 옥루몽은 과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 소설적인 감동을 생생히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느낀 것은 구운몽보다는 훨씬 뛰어난 작품이고 소설적인 재미 역시 남다른 작품이었다. 특히 양창곡과 강남홍을 위시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은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접하면서 작가에 대한 존경이 우러나왔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