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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  | |
| 김성동 <집>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든다. 김성동은 책이 몇 부나 팔리는 작가일까?
조금 속된 호기심이랄 수 있는 이런 생각을 불쑥 해보게 되는 것은, 사실 어느 만큼 이름있는 작가이면 대개 일정한 수의 고정 독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 독자란 한 작가가 신간을 발표하게 되면 그 작가의 이름만 믿고 무조건 책을 구입하는 그런 독자들이다.
´무조건´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무조건 안에는 당연히 그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통하여 쌓여진 진득한 신뢰와 호감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재미를 듬뿍 주었다거나, 깊은 감동을 주었다거나, 문체가 마음에 든다거나, 주제 의식이 자기와 통한다거나, 기타 그 어떤 이유로든 한번 진한 교감을 느끼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해당 작가의 이름 하나로 무조건 신간을 사 보게 된다. 일종의 ´팬´이랄 수 있겠다.
그래서 출판계에서는 이문열은 몇 부 작가이고, 이청준은 몇 부 작가이고, 박완서는 몇 부 작가라는 말들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 이름 하나에 맹목적(?)으로 따라붙는 독자의 수를 따져보기로 했을 때 , 김성동은 과연 몇 부 작가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나 작품성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수가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든다. 이유가 뭐냐 하면, 대개의 독자들에게 김성동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인식돼 있지는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김성동은 ´깊이´있는 작가이지 ´재미´있는 작가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때문에 <만다라>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일찌감치 대중적 명성을 얻은 바가 있다고는 해도 실상 일반 독자에게 그리 널리 읽히고 있는 소설가는 아니다.
그런데, 김성동은 정말 재미라는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작가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집>을 권하고 싶다. 집이라니? 제목부터가 사실 별로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이처럼 감각적이면서 끈적하게 끌어당기는 제목들도 많은데 고작 <집>이라니, 앞뒤가 탁 막혀 어떤 상상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덤덤한 제목의 소설은 내가 근래에 읽은 가장 재미있는 장편 소설이었다. 상,하 두 권으로 원고지 3000장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 나는 하루에 한 권씩 뚝딱 이틀만에 읽어 버렸다.
그러면 이 소설의 줄거리는 어떠하던가? 그것이 또 맹숭하기 그지없다.
˝나는 맞선을 보기로 결심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되는 이 <집>이라는 소설은 서른할 살짜리 노처녀가 한 남자와 선을 보고 이러저러하게 교제를 하다가 마침내 결혼하여 한 지붕 아래에 살아가게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조금 색다른 게 있다면 선을 보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그 상대 남자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점일 텐데, 스님이나 신부라면 모를까 소설가라고 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그 또한 실상은 아무런 색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뿐더러 상큼하고 뭉클하며 가슴에 숙연한 여운까지 남긴다. 총 칠백여 쪽의 적지 않은 분량이 어느 새 다 읽었나 싶게 지루함 한번 없이 화라락 넘어간다.
나는 이 책을 반쯤 읽었을 때 아무래도 뭔가 좀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책을 덮었었다. 무엇을 정리하고 싶었느냐면, 도대체 거창하거나 심오한 주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토록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가 하는 점을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내 자신도 소설을 쓰는 처지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추어 독자의 가슴에 송곳처럼 파고드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게 모든 작가의 욕심일 터인데 그게 대개는 낙심으로나 끝나게 마련이다. 나름대로 온갖 재주를 피우고 고통스럽게 가슴을 태워도 막상 다 쓰여진 원고가 제 눈에부터 먼저 심드렁할 때 그 자조의 뼈아픔이라니...
한데 이 소설 <집>은 줄거리나 주제에 변변한 무엇 하나 없는 것 같으면서도 독자를 강하게 빨아들이고 있으니, 대체 어느 구석에 그 원천이 숨어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간단히 소설 줄거리를 살펴보자.
사실 줄거리는 앞에서 이미 다 말했다. 서른한 살짜리 노처녀가 소설을 쓴다는 남자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가 전부다. 그밖에 다른 건 없다. 하기야 왜 다른 것이 없겠는가. 교제하고 같이 사는 그 과정에 끼여드는, 아니 끼여든다기 보다는 남녀의 연애와 가정사에 의례껏 있게 마련인 일상적 정황이 소설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 자체로부터 나오는 맛인가? 확실히 전개되는 이야기 대부분이 흥미롭기는 하다.
우선 화자의 상대로 나오는 소설가라는 사내의 행동거지가 이채롭다. 선보는 자리에서 무슨 교장 선생처럼 일장 훈시를 한다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땅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는다거나, 술만 들어갔다 하면 영락없이 어린아이 한 가지가 된다거나, 하루종일 석상처럼 말이 없다가도 일단 말문이 트이면 폭포처럼 좔좔좔 수 시간을 떠든다거나, 기타 여러 기행적인 면모들이 심심찮게 이어진다.
거기에다, 그러한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황당해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기울어가는 여자의 심리 묘사가 감칠맛 있고, 결혼 이후에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치르는 고부간의 갈등이 더 없이 실감있게 그려진다.
허나 이뿐이라면, 사실 비슷한 소설들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연애와 가정사에 대해서 다루는 소설이 엄청 많아졌으며, 소설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예술과 일상의 갈등을 토로하는 내용도 새삼스러울 게 없고, 이러저러한 형태의 자전적 소설도 비온 뒤의 죽순처럼 꽤나 많이 쏟아져 나왔다.
분명 그런 점에서만이라면 이 소설이 유별나게 눈에 띌 것은 없다. 그렇다고 무슨 실험적 기법도,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감성도, 요즘 유행하는 추리적 긴장감도 이 소설에는 없다.
무엇이지? 그러면 무엇이지? 이 단순하게 보이는 소설이 독자를 강하게 빨아들이다가 마침내 산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가슴 깊은 곳에서 반추해 보게 만드는 그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지?
우리는 어느 시인이 이 작가를 두고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의 후미진 골방을 떠도는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세상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보곤 했다. 종내는 울음으로 끝나기 십상인 그의 통음의 습벽마저 그가 세상과 뒤섞이는데서 오는 비애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산에서 내려와 세상과 살을 섞고 집을 지닌 채 처와 아들딸을 거느린 가장으로 산 지가 적잖은 세월인데도 나는 그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산승의 냄새를 맡곤 한다.˝
그렇다, 이 소설이 지닌 내밀한 저력은 작가 김성동이 이 속세와 중생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업으로서의 삶, 그것이 비극이건 희극이건 숙명으로 짐지워진 업이라는 인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에 사람살이의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절절한 구도의 길이다. 김성동은 백팔번뇌로 표현되는 중생의 삶으로 들어가고자 만다라의 화두를 속세 저잣거리로 들고 내려온 것이니, 이제 집(가정)이 곧 김성동의 화두였던 셈이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 소설에 그려지는 일상의 허다한 삽화들 모두가 절절한 구도의 모습인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집>의 1부는 이 소설의 화자인 노처녀가 애 하나 딸린 이혼남 소설가와 맞선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당최 결합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두 남녀가 엉성하고 우스꽝스런 교제를 나누다가 결국 한몸으로 합해지는데, 거기엔 낭만적 사랑이나 장밋빛 꿈 대신에 질척한 신뢰와 연민이 있다. 만나게 돼 있는 사람들이 만난다는 윤회적 인연의 기미를 독자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결국 만남은 ´업´이고 연애는 ´구도´였다.
<집>의 2부는 아내와 남편과 시어머니 세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받고 상처주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하는, 그 자체로는 다소 진부한 상황을 중심에 두고 이 가족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파란하고 만장하다.
아내의 눈물, 남편의 무기력한 한숨, 시어머니의 가출, 무슨 희극 같기만한 무겁고 서먹서먹한 삼자 회담, 서로를 위해 헤어지자는 남편의 이혼 요청, 오히려 남편을 위로하며 ´다시 한번 잘해 보겠다´는 아내의 다짐, 하지만 결국 ´다 함께 불타 죽어 버리자´고 남편이 절규하게 되는 또 한번의 분란, 이러한 과정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아기자기? 그렇다, 그것은 차라리 아기자기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생생한 풍속도이지 않은가.
이제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의 장면 하나를 보자.
남편이 시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나는 마루에 서 있었다.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벌컥 문이 열리면서 시어머니가 뛰어 나오셨다.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셨다.
˝지집이 잘못허먼 쌔려서래두 버릇을 잡어놔야지 사내꼭대기라는 게 그 따위루 지집 폐녘을 드니 쟤가 점점 더 시에미를 우습게 알구 대드는겨!˝
찬바람 소리가 나게 현관문을 나서는 시어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님, 고정하셔요.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 용서하셔요. 이 밤중에 어딜 가려고 그러셔요. 노여움을 풀고 그만 들어가셔요. 네, 어머님.˝
휙하고 팔을 뿌리치는데 까닥했으면 넘어질 뻔할 정도로 힘이 세셨다. 어두워오는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남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이구나.˝
지옥이구나!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독자는 절절하게 공감하면서 이 세상이 지옥인 것을 느낀다. 억겁의 업이다. 중생이 곧 지옥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찌 하여야 하나? 사람이 서로 웬수고 세상이 곧 지옥이니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살게 돼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연꽃은 멀고 수렁은 깊어만 가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화두가 있으니, 왜 사는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소설의 마지막은 어떻게 끝나던가? 사실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지면서 그 끝처리가 몹시 궁금했다. 독자로서도 그랬지만 한 작가의 입장에서 더 궁금했다.
쉽고 재미있게 일사천리로 읽어오기는 했으나 그 표면의 줄거리를 막상 따지고 보면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흔한 가정사에 불과하고, 한편 그러면서도 사람살이의 의미에 대하여 만만치 않은 화두를 던져 주고 있는 이 소설이 이제 원고 3000장의 대단원을 내리려 하고 있는데, 과연 김성동은 어떤 그럴싸한 대미를 준비해 두고 있을까?
참선 수행으로도 저잣거리의 방황으로도 ´병 속의 새´를 꺼내지 못하여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김성동은 이 새로운 화두 ´집´을 과연 어찌 풀어낼 것인가?
소설의 마지막 처리는 절묘했다. 나는 연신 무릎을 치면서 한 십여 분 소리내어 웃었다. 소설적 구성으로서의 그 완결미도 빼어났거니와, 그처럼 능청스런 절제로 자기 화두를 단번에 개화시키다니, 실로 고급한 솜씨였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겠다.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을 때나 느낄 수 있는 맛이라 여겨진다.
자전소설이라는 부연 설명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사내는 작가 김성동의 분신이 분명한데, 이 작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거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작가와 소설 속 사내를 계속 대비시켜 가며 그 고집스러우면서 천진한 내면의열정을 들여다보는 맛도 의외의 소득이 될 법하다. 가끔 어처구니없고, 가끔 연민이 가고, 가끔 분통이 터지고, 가끔 숙연해지면서, 독자는 김성동이라는 한 독특한 사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총명하고 조숙했으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불쑥 자퇴서를 내고는 ´이름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도(道)´를 찾아 입산하고, 객승으로 떠돌기 수 년만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허공과 같은 화두´에 절망하여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서는 못다 푼 화두를 소설에서 풀고 있는 한 사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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