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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돔 120일 |  | |
| 사드의 <소돔 120일>을 읽고
네 명의 전무후무한 탕아가 외딴 성에 수많은 희생양들을 거느리고 모여 섹스의 향연을 벌인다. 고문과 살해가 뒤섞이는 핏빛 향연이다.
창녀를 십자가 위에 매달아 윤간하고, 미사 시간에 소년을 비역질하고, 발가벗은 소녀를 똥단지에 담았다 꺼낸 뒤 그녀의 몸이 원래대로 깨끗해질 때까지 온 몸을 핥고, 노파의 이빨을 뽑아 자신의 성기를 발기시키게 하고, 하인과 남색질을 하고, 여자를 기둥에 쇠사슬로 묶어서는 수십 마리의 굶주린 뱀이 산 채로 뜯어먹게 한다.
이 가공할 잔혹과 음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감방 안에서 37일만에 써내렸다는 이 소설은 묘사되는 행위들의 집요함과 현란함(?)에 있어 감히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듯하다. 가히 관능적 상상력의 극치라 할 만하다. 이 상상력 하나만으로도 사드에게 천재라는 칭호를 붙이는 데는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소설에 사드의 혼신의 힘이 바쳐졌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소설 곳곳에서 예리하게 갈파되는 철학적 사색, 각종 음란행위에 대한 정교한 묘사, 생생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풍부한 비유법들은 이 소설을 싸구려 포르노와 분명하게 갈라놓는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소설에는 확실히 한 영혼의 숨결이 있다. 자기 생 전부를 내기 거는 치열한 정신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사드는 소설의 초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자 제위여, 이제부터 당신은 세상이 존재한 이후로 한번도 발표된 일이 없는 가장 부도덕한 이야기에 당신의 가슴과 정신을 맡겨야 한다......당신의 눈 앞에 그려질 수많은 일탈들은 두말할 나위없이 기분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그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안의 누군가가 당신을 후꾼 달아오르게 만들 것인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사드가 목적하는 건 분명 ´후꾼 달아오르게´ 하는 일 하나뿐인 것 같다. 작심하고 행하는 신성모독이나 장황한 철학의 설교 등이 이 소설에 체제와의 대결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덧붙이고는 있지만 그건 지엽적이다.
사드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부분은 관능적 상상력이다. 혐오하고 진저리쳐하면서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달아오르는 것, 사드의 목적은 그 한 가지이다. 바타이유는 바로 그런 식의 달아오름 속에 ´넘어서기´의 무엇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식의 달아오름은 내게는 요령부득이다. 이 소설의 독특한 문학성은 인정하겠다. 이 소설에서 한 영혼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한 앞의 내 말은 우리가 한 작품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에 속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순수한 독자로서 내가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나는 이런 식의 달아오름을 원치 않으며, 이런 달아오름을 통해 무엇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 넘어서야 할 것이 특히 실존의 불안이라면, 사드 식의 관능은 적어도 내 실존과는 무관할 듯싶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실존의 가슴앓이란 결국 자기 식이 있을 뿐이다. 타인에 대해서는, 우리는 다만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때의 이해야말로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연민일 터인데, 나는 사드를 이해하는가? 그를 연민하는가?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나는 기쁘다. 그 대답 속에서 문득 나는 자신이 작가임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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