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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가 되었네 |  | |
| <새가 되었네> (성석제, 도서출판 강, 1996)를 읽다.
장정일도 그렇거니와, 시를 써본 소설가의 소설은 시스러운 언어 구사로 그의 권력을 드러내기 마련이며, 성석제도 마찬가지다. 그의 탁월하면서, 적절한, 늘 해학적인 요소를 곳곳에 배태한 채로 긴장의 끈을 놓치니 않는 언어 활용 능력은 그의 전작(全作)을 통해 두드러진다.
성석제의 소설은 교훈적이지 않다. 전혀 참여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이른바 건강하지도 않다. 하물며 그에게는 동년배로서 명성을 날리는 윤대녕과도 같은 점잖음 -어줍지 않은, <빛의 걸음걸이>는 그의 지겨운 추구와도 같은 행보법이다- 도 없다. 성석제는 가볍다. 때론 경망스럽고 가끔은 천박하고, 어쩔 때는 경박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너무도 결정적인, 황선홍이 무수히 놓쳐 욕을 먹었던 수많은 찬스보다도 결정적인 강점은, 그의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실 흔해서 닳고 닳은 교훈은 태어나면서부터, 귀를 뚫고서 반대 쪽 귓구멍으로 튀어나올 만 한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귀가 닳아 없어지지 않은 것이 신통할 만큼. 성석제는 성인도 군자도 아니기에 우리는 그에게 경구나 진리, 해타를 바라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이, 즐거운 것이 곧 선(善)이 된 지금, 성석제는 시대의 요구에 무척 충실하다.
성석제 소설이 주는 재미는 친근하고 향수어린 소재를, 유려한 문체로 조직하여 독자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한 다음, 팽팽한 희극적 긴장감의 매듭으로 독자의 속을 죄는 듯 전해주는 재능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이미 남자라면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통해서 누구나 한 번쯤 상상으로 경험했을 건달의 희비극적인 종말을 다룬다. 낯익은 소재와 청바지, 청카바, 황포, 마사오, 큰 형님과 같은 등장인물의 무모함은 희극도 되고 비극도 된다. 역시 재미있다.
다음은 <금고 은의 왈츠>.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지 어슴프레하게 안개가 낀 신도시의 아파트 촌에 찾아온 새벽이 생각난다. 드라마로 각색한다면 주인공은 탤런트 강남길로 하면 제 격이다. (미미지가 딱이다) <금과 은의 왈츠>는 누구나 소중히 갖고 있는 향수를 자극한다. 향수는 아버지, 고향, 전쟁, 피난길, 옛 앨범, 모두를 대상으로 해도 좋다.
<첫사랑>. 특이하게도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유년기를 떠올리는데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황금의 나날>과 함께 마치 예전 <소나기>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새가 되었네>는 꼭 채만식 -확실치 않다- 이 썼던, 비오는 날 인력거꾼의 불행하면서도 동시에 재수 없는 하루치 이야기를 작금의 현실에 맞도록 고친 것 같다. 역시 희비극적인 우리네 이웃의 특별할 것도 없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죽음을 다룬다.
<이른 봄>은 우화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바, 우화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풍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끈질기고 집요한, 어쩌면 추악한 생에 대한 집착과 젊음에의 욕구 따위를 다룬다. 꿩의 의인화가 무척 새롭게 느껴진다.
<스승들>. 이 소설이 실제 성석제의 삶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작가 스스로 언급한, ´누구에게나 첫 번째 소설은 자서전´이란 말로써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연성의 혐의에 의심을 두지만, 어차피 과거란 또는 추억이란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언어로 구성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구성하는 사람의 후회, 바램, 의지, 욕구 등이 과거를 재창조하게 마련이므로, 역시 작가의 말대로 (p.182) ´소설과 현실이 정말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남의 첫 소설을 읽을 자격이 없다´는 말로써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 (´진리만이 나를 자유케 할 수 있다´ (p.192) 는 인용문의 비문법적 단어 사용은, 추론컨데 역시 작가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의 어법에 맞지 않는 교리,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실은 ´자유롭게´가 맞다- 하리라´에서 연유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영향을 끼친 여러 스승들에 대한 이야기인, <스승들>. 대단한 자기 자랑만이 판을 치지만, 슬쩍 떠올리게 되는 미소는 역시 여지없다.
나도 책을 사서 읽는 것을 (빌려 읽는 것과는 많이 다르므로) 습관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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