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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 |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한겨레신문사, 2003)을 읽다.
프로야구를 나름대로 좋아하는 나로서는, 언젠가 신문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토록 매력적인 책 제목을 결코 놓칠 리 없었다. 게다가 본 소설을 썼으리라고 믿어지는 작가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다지 어울릴 것도 없는, 울트라맨을 연상시키는 선글라스를 끼고 어줍지 않은 폼으로 사진 속에서 서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엘리베이터 내부에 부착되어 기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티커에 누군가가 해 놓았던 시의적절한 낙서, ´후까시 금지´가 이내 내 머리를 강타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질 만한, 프로야구 원년부터 경이적인 패배의 퍼레이드를 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책 제목에서 발견했음은 나에게 무조건적인 구매와 일독을 강요하였고, 나 역시 그러한 지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책을 독파하고 난 지금, 결코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라니? 가당치 않다.
by http://intheway.hihome.com/
구도라 불리는 도시가 몇 곳 있으니, 요즘이야 80년대의 삼미 슈퍼스타즈 못지 않게 ´죽을 쑤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과 김진영 감독을 배출한 인천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이 인천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화려한 출발과 함께 성장한다. 그러나 한창 꿈 많은 소년의 ´과학적´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지고 또 지면 그만 질 리도 있건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줄기차게 패배할 뿐이다. 허나 이에 기죽어 어깨를 늘어뜨린다면 어찌 소설이 되겠는가? 소년은 결국, 죽도록 노력해야 평범한 성적을 얻을 수 있는 ´프로´의 세계를 이 땅에 전도한 음모의 원년 1982년, 그러한 자본주의의 대세를 비웃으려한 것과는 무관하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프로의 세계에서 프로답지 않은 실력과 성적을 보여줌으로써 프로의 복음 전도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도가 철학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방수원이라는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에게 국내 최초로, 치고 싶지 않은 것은 치지 않고 뛰고 싶지 않으면 뛰지 않는 ´노히트 노런(No hit no rum)´을 기꺼이 헌납한 비프로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철학의 경전이라 할 만하다.
인생을 도박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대부분의 야구 중계 해설자들은 인생을 야구에, 혹은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삼미 슈퍼스타즈의 영욕의 역사(실은 ´욕´의 역사가 대부분이다)는 인생의 두 가지 진리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 중 하나는 인생지사 새옹지마. 프로야구 출범의 원년에 이미 16연패와 한 리그 최저 승율인 1할 2푼 5리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달성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듬해 장명부라는 희대의 강철 어깨를 영입하여 전후반기 리그 2위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83년의 시즌에서 삼미 슈퍼스타의 마크는 아마 슈퍼맨보다는 너구리(장명부의 별명)로 바뀌어야 할 만큼 그의 활약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농심 슈퍼스타즈였다면 라면 ´너구리´의 판매량도 불멸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인생의 제 1 원칙은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이 아닐까? 비록 새옹지마라는 예외 부칙을 허용하고 있지만 첫 번째 룰은 역시 세 끗짜리 인생은 장땡을 잡을 수 없다는 것임에 분명하다. 84년 삼미는 ´삼미의 라이벌은 역시 삼미뿐´이라는 것을 논증하듯, 동네 야구도 깨기 어렵다는 16연패의 기록을 냉큼 18연패로 대치하면서 그 찬란한 역사를 마무리하고야 마는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후 청보 핀토스로 구단주와 팀 이름을 바꾸면서 꾸준한 패배를 기록하다가,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라는 이름으로 2003년 프로야구에서 페넌트 레이스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이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첫사랑과의 만남은 현재의 나를 부단히 간지럽힌다. 누구라도 그녀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여자들이 세상에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새벽에 술에 취해 길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백설공주를 만나지만, 나는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을 비로소 가을로 만드는 요정을 만났으니, 그 여자가 살며시 두 팔을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그 여자의 머리카락과 소매깃을 훑고 지나갔던 바람은 비로소 ´가울 바람´이 되었고, 그 여자의 ´아 시원해´로부터 세상의 공기는 그 향기와 색을 바꿔 가을로의 변신을 분주히 서둘렀던 것이다. 아, 도무지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계절의 변화를 주관하는 요정이 나와 나란히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그랬었다, 웃었다.
나와 함께 학창 시절 말미의 대부분을, 학생회관의 뒤 편 벤취에서 커피와 담배 연기를 함께 섭취하면서 국제 정세와 남한의 자본주의, 그리고 이 땅의 진보를 위해 난상토론을 일삼았다기보다는, 프로야구로 시작하여 주변 인물들의 연애사와 뒷담화에 철저히 일관했던 나의 후배 K군에게 강력히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삼성 라이온즈의 열렬한 팬이자 프로야구 전반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그 후배에게 이 책은 세 가지 면에서 유익한 지침서이자 복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1. 기록의 스포츠, 야구, 그것도 국내 프로야구의 기록사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혁혁한 전과를 확인하는 재미. (연패와 실점, 그리고 빈공에 대한 모든 기록의 집합소와도 같다)
2. 누군가를 좋아하며 전전긍긍하는 남의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 (애써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3. 프로의 세상에 대항하는 재미. (가장 재미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K군의 천성을 감안한다면 찡그리지 않고 읽을 수 있으리라)
기하야, 꼭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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