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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장 |  | |
| <화장> (김훈, 2003)을 읽다.
헬스 클럽에 가면 울퉁불퉁한 근육을 더욱 키우기 위해 인상을 찡그리면서 바벨을 들어올리는 남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바닥에 못 박힌 채 챗바퀴를 돌아야 하는 런닝 머신 위에서 그네들의 인생과도 같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중년의 여자들 또한 흔한 풍경이다. 팔뚝에 그려진 용의 머리가 이미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게 될 정도로 삼두박근을 부풀린 남자와, 런닝 머신 바닥을 15도의 경사로 만들어 평지에서 달리는 이들을 주눅들게 하는 여성의 목표는 뚜렷해 보인다. 군살 제거.
김훈의 김훈의 소설을 읽다 보면 비단 이야기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시종 압도당하게 된다. 누구의 글에 체지방이 가장 적은지를 겨루어 가장 근육질의 문장에게 대상을 주는 육체미 대회가 있다면 김훈의 글들이 수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꼭 필요한 단어와 필수불가결하다고 싶을 정도의 비유, 그리고 적절한 길이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랜 기간의 꾸준한 운동으로 체지방을 모두 불사르고, 흡사 다비드 상과 같은 근육만 남은 남자의 몸. 김훈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다.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장편 <칼의 노래>이다. 작중 화자를 이순신으로 내세워 실로 엄청날 정도의 절제된 감정과 문체를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작가로 남아 있다. 끓어오르는 분마저 모두 삭여 버리는 절제된 문장은 시종 결연한 비장미를 드러내는 것에 실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보기 드문 미문(美文)이라고 내게 일독을 권했던 아끼던 후배의 말이 실로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화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전립선염을 앓고 있는 오십 중반의 한 남자가 뇌종양으로 죽게 되는 아내의 임종의 임종을 지키는 순간부터 화장을 치르게 되는 과정과, 그가 이사로 근무하는 회사의 여사원을 향한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는 진술이 절묘하게 병치되어 있다. 자칫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중년 남자의 늦바람 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는 소재는 김훈의 문장으로 인해 문학의 외피를 입게 된다.
부인의 빈소를 지키는 새벽, 추은주(주인공이 사모하는 여사원의 이름)를 떠올리는 주인공의 심정은 참혹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또한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 인생은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참담해기 마련이니, 바로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순전히 나만 동감할 것만 같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는 이런 것이 아닐까? 아내의 빈소를 지키는 자리에서조차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 역시 결코 주인공이 마음 편히 부를 수 없는 이름이다. 그 여자는 주인공이 이사로 일할 때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한, 어쩌면 주인공의 딸 정도의 연배로,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은주를 향한 주인공의 고백은 숨길 수 없는 것, 비록 독백일지라도 그것은 숭배와 찬양 일색이다. 결코 범할 수 없는 대상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추은주에 대한 상상이 성적인 차원으로 전이할 무렵이면 이내 주인공은 마치 순진한 십대 소년과도 같이 나이와 신분의 벽 뒤로 숨어 버린다. 그 높은 벽 뒤에서 추은주의 사직서 결재란에 ´신속집행요망´이라는 의견을 무심히 첨부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감정 표현 미숙아인 나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는 절절할 수밖에 없다. 아, 담배라도 한 대 물어야겠다.
내게 감정이란 것은 전립선염에 걸린 오십대 남자의 오줌과도 같은 것이라서, 의료 기관의 도움 없이는 결코 제 몸 밖으로 말을 통해 스스로 배출이 안 되는 것이다. 입으로 토해져 전달될 수 없는 감정을 분해하는 효소의 분비샘이 문제를 일으켜, 감정의 과잉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더부룩해지면, 날카로운 관을 꽂아 밖으로 흘려 내보내야 비로소 진정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 따위의 내 글들도 그런 치료의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잡념도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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