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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변의 카프카 |  | |
|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3)를 읽다.
좋아하는 후배가, ´여전히 정진하고 있는 하루키´라는 평으로 나의 구미를 자극했기 때문에의 주저하지 않고 거금 1만 8천원을 들여서 상, 하권을 구입하여 독파하였다. <태엽감는 새> 이후 7년 만의 장편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갖고서 읽었는데, 크게 기대에서 어긋나는 작품은 아니었다는 느낌이다. 여전히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재기발랄하며, 빼어난 상상력과 구성적인 완결성도 갖추고 있었다. 때로는 지나친 황당함과 약간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런 점이 바로 2003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Cool´하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15세 소년(다무라)이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집을 나서서 겪게 되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일들(고양이와 말을 하는 나카타 상이라든지, 고양이의 영혼을 팔아서 피리를 부는 사나이, ´입구´의 돌 따위는 분명 비현실적인 것들이다)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성인으로 변신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치열한 신화적 상상력과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아버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은, 집을 나서서 자신에게 씌어진 운명적인 굴레들을 우연처럼 포장된 필연으로 하나씩 만나게 되고 이런 제의(Ritual)적인 절차들을 통해 결국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 과정을 하루키는 그만의 섬세한 상상력을 통해서 전달해준다. 소설에서의 상상력과 개연성의 조화는 참으로 난망한 과제다.
어떤 면에서는 개연성과 사실성의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소설이다. 현실은 이미 그런 검증을 넘어선 마당이 아닌가. 주인공이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냉장고에 깔려 죽는다는 얘기에는 어떠한 개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가 소설로 쓰여진다면 이는 독자의 비웃음과 평단의 철저한 외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기염을 토할 일이겠지만, 그런 얘기가 텔레비젼의 뉴스에서 방송된다면 이는 누구라도 의심할 수 없는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방송된 사실은 개연성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과 사건들의 동향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을 필요가 있다. 사이트 맵 위에서 깨지지 않은 링크의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 같은 현실에 염증을 느껴 현실보다 훨씬 현실같은 이야기를 소설에서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철저한 판타지로 일체의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자신을 포장해야하는 것이 적어도 정당한 게임의 룰을 지키는 길이다.
주인공 다무라가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으로 거듭나기 위해 집을 나간 후, 자신에게 씌여진 아버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운명처럼 기거하게 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란 사실은 참으로 흥미롭다. 사실, 소년 시절의 도서관이란 나에게도 세상으로 향하는 문과도 같은 곳이었다. 모든 책마다 품고 있는 작은 세계가 서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도서관은 그 자체로 세계의 집합소였으며,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집과 학교에서는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진풍경이 가득한 만화경 속이었다. 걷기엔 다소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자동차의 매연이 자욱한 문래 고가 도로와, 쇳가루 흩날리던 공구상이 밀집한 문래동,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시끌벅적하고 혼잡했던 영등포 시장, 소비욕조차 자극하지 않았을 만큼 철저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백화점을 지나면, 어린 나로서는 이해하기 버거웠던 영등포의 사창가 입구가 나왔고, 그 곳에서도 한참을 걸어서 페인트 가게들이 많이 모여 있었던 길을 지나 비로소 영등포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긴 여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상인과 노점상, 행상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 자체로 좋은 구경 거리였다. 어쩌면 나는 일부러 그 먼 길을 걸어서 왕복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등포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책 두 권씩을 꼬박꼬박 빌려 읽던 기억은 나의 성장이 있어 그 어떤 유기농 비료보다도 유익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 나이에겐 금서였던 거의 낡아서 파본 일보직전의 ´어우동´을 남몰래 수 페이지씩 탐독했고, 나에게 한자 성어와 무공 초식에 관한 수많은 지식을 전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던 무협지는 밤을 쉽게 세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도와주었으며, 추리 소설은 오늘날 나의 지병처럼 되어 버린 ´분석증´의 바이러스를 내 몸에 서서히 퍼지게 만들었다. SF 소설을 통해서 미래의 인류 생활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기보다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에 매료되었던, 세상에서 가장 터프하지도 않은 소년을 키운 건 어쩌면 학교가 아닌 도서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by http://intheway.hihom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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