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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리오 영감 |  | |
| 발자크 : <고리오 영감>
역자 : 박영근 / 출판사 : 민음사 / 출판일 : 1999년 2월 15일 / 페이지수 : 420
프랑스의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1799년 프랑스 중부에 있는 투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는 책과 몽상에 파묻혀 우울한 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1816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 문학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법률 공부를 포기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 때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은 ˝크롬웰˝이라는 희곡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위의 혹평을 받으면서 그는 희곡 작가로서의 꿈을 접고 소설가의 길을 택했다. 그 뒤로는 한동안 작가로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소설 습작에 몰두했다. 1825년 무렵까지 가명으로 몇 편의 통속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문학적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다양한 소설 기법을 익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돈을 벌어 크게 출세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던 발자크는 통속 소설을 써서 생활이 안정되자, 출판업과 인쇄업 등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그에게는 야심만 있었을 뿐, 사업가로서의 재능은 없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5만 프랑이라는 엄청난 빚이 전부였다. 그 뒤 그는 이 빚 때문에 평생 동안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빚을 갚기 위해 소설을 써야 했다. 그러나 이 쓰라린 경험 덕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위력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훗날 문학에 반영했다.
문학으로 다시 돌아온 발자크는 1829년 소설 <결혼의 생리학>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계속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던 그는 1832년 무렵부터 자신이 쓰는 소설을 서로 연관시켜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체계화할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1842년부터 (통속 소설을 제외하고) 자신이 쓴 중·장편 소설들을 모아 <인간 희극>이라는 총서명(叢書名)으로 한데 묶어 펴내기 시작했다. <인간 희극>에 남아 있는 발자크의 소설은 무려 90여 편에 이른다.
그의 대표작인 <으제니 그랑데>(1834년), <고리오 영감>(1835년), <골짜기의 백합>(1836년) 등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다. <인간 희극>이란 제목은 단테(1265-1321, 이탈리아 시인)가 장편 서사시 <신곡>에 대항해 ´인간의 이야기´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
<인간 희극>은 자신이 살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사회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모습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재현해 보겠다는 발자크의 야심이 구체화된 것이었다.
<인간 희극>의 특징으로 ´인물 재등장 기법´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른 작품에 다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희극> 전체에 무려 2,0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중 재등장하는 인물이 600여 명이라고 한다. 이 ´인물 재등장 기법´이 처음 적용된 작품이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즉 이 소설에서 조연으로 나온 인물이 다른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발자크는 끊임없이 소설을 쓰고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였으며, 틈틈이 사랑하는 여인과 여행을 하는 등 삶에 충실했다. 그러나 하루 열여덟 시간의 원고 작업은 그의 건강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 가고 말았다. 결국 그는 30여 편의 미완성 작품을 남긴 채 1850년 5월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주인공인 고리오 영감이 묻힌 바로 그 곳, 페르 라셰즈 공원 묘지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신하는 거너릴과 리건이라는 두 딸이 나온다. 그나마 심성 바른 막내딸 코넬리아가 없었다면 리어왕은 한낱 미치광이 노인으로 광야에서 삶을 마쳐야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리어왕의 비극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계속 반복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도 우리는 ´고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좀더 초라하고 평범한 모습의 리어왕을 만날 수 있다.
<고리오 영감>은 1834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잡지에 연재되었다가 연재가 끝난 뒤 단행본으로 출판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딸들에게 평생을 바쳤으나 끝내 배신을 당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는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두 딸에게 본능에 가까운 사랑을 쏟아 붓는 고리오 영감은 비극적인 아버지의 전형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아버지의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만 볼 수는 없다. 여기에는 입신출세를 꿈꾸는 귀족 청년(으젠 드 라 라스티냐크)의 이야기와,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 찬 타락한 귀족들의 모습, 그리고 타락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탈옥수(보트랭)의 이야기 등 하숙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 시대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을 배치했던 것이다. 하숙인들 중에서 특히 입신출세를 위해 야망을 불태우는 젊은 으젠은 고리오 영감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어 있다.
으젠은 1820년대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부르주아 사회에서 입신출세를 꿈꾸는 야심찬 젊은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순진한 젊은이가 출세를 위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를 볼 수 있다. 으젠은 처음에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앞에서 양심 때문에 고민하지만, 결국 출세하기 위해 사회와 타협하고 만다. 그리하여 고리오 영감의 무덤 앞에서 마지막으로 순결한 눈물을 흘린 다음,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사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그런 으젠에게 사회의 진실과 추악한 사회에 어울리는 처세술을 알려 주는 사람이 바로 보트랭이다. 보트랭은 두 주인공 외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등장 인물이다. 그는 강한 의지와 뚜렷한 사회 의식을 가진 사람이기에,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 온갖 추악한 짓을 일삼는 귀족들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발자크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세 인물을 통해 당시 파리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한편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돈´ 문제이다. 발자크가 보기에 당시 프랑스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바로 돈이었다. 고리오 영감의 비극도 따지고 보면 혈육의 정마저 돈으로 좌우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젊고 야심만만한 으젠 라스티냐크에게도 돈은 역시 고민거리이다. 돈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작가는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드러난 혼탁한 사회상과 ´돈´의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고리오 영감>은 발표된 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어쩌면 고리오 영감의 이야기가 20세기 후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무언가 불쾌하고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버이가 어버이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식이 버림받는 이 시대에 고리오 영감의 비극은 새삼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by http://www.edu.co.kr/kwank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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