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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꾸는 인큐베이터 |  | |
| 박완서 : <꿈꾸는 인큐베이터>
출판사 : 현대문학 / 출판일 : 1993년 3월 1일 / 페이지수 : 504
아들은 나에게 있어서 후천적인 남성 성기였다
박완서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녀의 소설에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풋풋함이 베어 있다. 그 풋풋함은 우리를 웃기고 또 울린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타고 난 이야기꾼´이라 부른다. 그녀의 소설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에서 나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과 존재의 의미가 주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미묘한 정을 깨달았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나는 작가의 현실 비판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계기를 맞았다. 그렇다면 이 소설 ˝꿈꾸는 인큐베이터˝가 내 가슴속에 던져 준 아픔과 그 아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딸은 둘을 다 합쳐도 아들 하나만큼 나를 충만하게 하지 못한다.´
´남자 성을 따르도록 한 것은 여자가 그만큼 못났다는 증거 아녜요?´
작가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스스로도 이 땅의 여성이면서 작가 자신도 딸자식을 키우는 이 시대의 어머니면서, 6.25를 비롯한 온갖 한국 역사의 시련과 왜곡을 경험하고 이젠 떳떳하게 우뚝 선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단순한 역설? 반어였을까?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다. 여느 남자가 자신의 소설에 그런 말을 써 놓았다면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항의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도 이 시대를 사는 또 살아가야 할 여자로서 묘한 가슴 아픔을 느꼈다. 자신의 죄를 무마시키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 ´나´의 절실함에서, 그리고 그녀의 억지에서 나는 명치가 아렸다.
´여자´란 이름 옛날부터 여성의 지위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았고 아무리 성차별 법이다, 여성 인권 수호다 해도 아직 우리 사회의 여성의 인권이란 남성의 성기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오죽했으면 주인공 ´나´는 셋째 자식으로 처음 아들을 낳은 후, ´아들은 나에게 있어서 후천적인 남성의 성기´라고 했을까? 아들을 낳음으로써 내가 남자가 된 것처럼 당당해졌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충격이었다. 여성의 약점은 그 해결책 또한 남성이 가진 성기의 존재 여부? 황당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미처 자신이 인식치 못했던 사실이었고 질문에 대한 가장 적합한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성 성기를 가진 이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여성보다 하나 많은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그 권력의 단맛을 일찍이 경험한 그들의 선조들은 한 번 획득한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래서 정치사에서도 법이 바뀌고 유신이다 뭐다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 투쟁이다. 과거 프랑스인들의 인권 운동이 그랬고, 우리 나라 7-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 그랬다. 권력이란 위에서 아래로 저절로 확산됨이란 불가능하다.
문득 질문을 한다. 이 땅의 여성들에게, 내 어머니에게, 여성 인권 옹호를 펼치는 그녀들 자신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찾을 힘이 있는가? 우리는 혹시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유혹과 우상에 빠져 세뇌된 사실 속에 주저앉아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을 듣는다. 자신은 여자로서 삶을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내 자식들은 그런 차별과 불합리를 맛보지 않게 아들을 낳았음 좋겠다고. 그렇다.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생각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아직은 시대가 그래서...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한다면 그 언젠가는 영원한 언젠가일 뿐이다. 여성이여 깨어라. 그리고 여성, 남성의 이분법적 사고를 떠나 내 안의 살아 숨쉬는 생명의 존귀함을 봐라.
나는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위태로운 생명이다. 나는 위로 1년 7개월을 먼저 태어난 오빠가 하나 있다. 나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시골에서 갓 서울로 전근 온 모든 것이 힘든 초등학교 교사이셨다. 그런 상황인지라 어머니의 임신은 반가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아갔고 나의 생명은 발아하기도 전에 생명의 위기를 맞는다. 다행이라면 정말 다행으로 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지라 그 분은 나의 부모님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권유했고, 나는 그런 위태로운 상황을 거쳐 구사일생으로 세상의 벗을 보게 되었다.
가끔 어머니께서 농담처럼, ˝그 때 그 의사가 ´그냥 가서 누우세요.´ 했더라면 어쩔 뻔했어?˝ 하시며 나를 꼬옥 안아 주신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면 문득 문득 숨이 멎는 것 같다.
한 인간의 생명이 그렇게 좌지우지할 만큼 작은가? 도덕책, 사회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하늘이 내린 인간의 존엄성이란 이 땅의 빛을 본 이들만의 가치인가?
박완서의 소설 ´꿈꾸는 인큐베이터´를 읽어 내려가며 느꼈던 명치끝의 이러한 저림은 어쩌면 스스로를 그 입장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병원의 폐기물과 한데 섞여 버렸을지도 모를 내 자신에 대한 자기 연민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소설 속의 ´나´의 성숙된 다짐, ´나를 위해 어떡하든지 달라져야 한다.´는 마지막 인식이 가슴 속의 아픔을 달래 준다.
나는 여성 인권 운동가가 아니다. 다만 이 땅의 진실과 정의가 남아 있다면, 우리 스스로 인간 된 권리를 오용하지 말자. 병원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태아, 그 예쁜 천사들의 눈망울이 원망의 빛이 되지 말도록, 인큐베이터 안에서 세상의 빛을 꿈꿀 우리의 아이들의 배냇짓을 애써 외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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