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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숲 |  | |
| 신영복 : <더불어 숲>
출판사 : 중앙M&B / 출판일 : 1998/6/29 / 페이지수 : 198
이 책에서 인상깊은 건 글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들어가 있는 그림 역시 작가의 생각의 깊이를 드러내 주었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는 앞에 있는 시인의 서두를 보고 이 엽서들이 그에게 보내진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이 독자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걸 안 건 책을 다 읽은 후였다. 모든 캡터들이 다 마음에 와 닿았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것 몇 개를 뽑아 보았다.
´진보는 삶의 단순화입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영화 ´간디´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난 아직도 그 영화를 잊지 못한다. 삐적 마르고, 안경을 쓰고, 하반신만 천으로 가린 남자의 삶과 사상을... 그는 모든 인도인이 자신을 희생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희생하는 거라면 할 수 있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도 같이 희생하자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건 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 그 영화를 다시 찾고자 했을 때 너무 오래 된 영화라 찾을 수가 없었다. 인도에 갔을 때 델리에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개봉당시 친한 친구의 생일에 보러 간 영화였다.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영화였는데, 그 이야기가 미화된 것이라는 건 충격이었다. 스필버그는 유대인이면서 동시에 장사꾼이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마저 이용해서 영화를 팔은 것이다. 비극은 언제나 좋은 장삿거리가 된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에 잠겨야 했다.
´피라미드는 돌아오지 않는 영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집트에 갔을 때 물론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에도 갔었다. 하지만 미라 전시관에는 가지 않았다. 가볼 걸 그랬다. 계속 만나온 람세스 2세의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봤더라도 나는 신영복 선생님처럼 어떤 의미를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많이 부끄러웠다. 나의 여행은 무엇을 위한 여행이었나.
피라미드는 웅장했고, 난 일단 그 크기에서부터 압도당했었다. 그리고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점이 부러웠었다. 입장료에 카메라 반입료까지 따로 받는 걸 보면서, 줄지어 서 있는 관광객들을 보며, 우리 나라에 관광객이 온다면, 우리 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관광품이 무엇이 있나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 나라가 이집트처럼 관광이 주요한 외화획득 수단이 아니라는 건 차라리 다행스럽다고 느꼈다. 외국인들이 걸어다니는 돈 보따리인 양, 사기를 치고, 바가지를 씌워대는 모습들. 물론 우리 나라도 남대문 시장이나 명동으로 가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문법에도 안 맞는 일어를 쓰며 일본 사람에 대한 호객 행위를 하고, 인사동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일본 간판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캡터였다.
´동물은 정신병에 걸리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은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특징이 있다. 그 특징들로는 항상 좋은 것들만이 나열되었기에, 인간만이 정신병을 걸린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었다. 동전의 앞과 뒷면 같은 속성일지도 모른다. 인간만의 창조를 해 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 있고, 인간만이 자신이 만들어낸 것으로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입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어릴 적 무척 인상깊게 봤던 책이었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 때는 그 책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 제제를 때리던 아버지가 마지막에 제제를 다정하게 포옹하는지, 라임오렌지나무가 잘리는 진짜 이유, 더 이상 제제가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 따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라임오렌지나무는 말하는 나무였고, 살아 있는 나무여서, 그 나무가 잘린다는 구절에서 난 너무 놀랐다. 왜 제제가 아버지에게 그 나무는 말하는 나무니 자르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언젠가 나도 제제가 살던 브라질에 가보고 싶다.
´나스카의 그림은 겹겹의 포장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현대 문명의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난 중,고교를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이 일이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인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인지 확실하게 기억하진 못한다. 어느 쪽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리라. 난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운동장에서 한 아이가 친구에게 ´날 보라.´며 발로 운동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족히 10m 는 될 법한 미키 마우스였다. 난 스탠드에 있었기에 그 그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 애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차마 그러질 못했었다.
나스카의 그림은 흥미롭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의 유희였을 수도 있고, 당시의 신앙에 관련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걸 상상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완전히 알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가끔 타임머신을 타고 샤머니즘의 시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태초의 원시적인 신앙에 매력을 느낀다.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희생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아스텍에는 얼굴이 하얀 신이 그들을 맞이하러 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비극이었다. 스페인인이 왔을 때, 그들은 그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의 결과는 언제나 잔인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딜레마라는 것을 이 글을 보고 알았다. 그들의 몸에는 이미 코르테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가져온 문명도. 아스텍의 인신 공양이 옳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가지고 온 기독교는 더욱 많은 사람을 더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종교는 많은 경우에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 <잉카>편이 있다. 그 책을 끝까지 다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그 책은 잉카 문명이 어떻게 파괴되었으며, 침략자들이 벽에 붙은 벽화까지도 뜯어내 간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건 분명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우리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먼저 문명화가 되고, 먼저 무기를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를, 다른 문명을 짓밟을 권리는 누가 주었을까.
´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찾을 수 없다. 굿바이 소년은 관광객이 있기에 굿바이 소년역을 할 수 있다. 세계 어디에 가든 코카콜라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것을 잃어 간다. 그걸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먼저 도달한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파괴해온 역사가 그렇게 많은데. 그걸 비웃을 수 있을까. 우리 나라 역시 미군들의 뒤를 쫓아 다며 ´Give me gum and chocolate´을 외치던 시절이 그다지 먼 과거의 일도 아닌데. 돈을 위해 스스로 노리개가 되어 버린 소년의 이야기가 슬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 앞 장에서 읽었던 간디의 말이 떠오른다. 외국 제품을 불사르느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타고르의 반론에 대하여 간디는 그것을 불태울 때 우리는 수치심도 함께 태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용기와 지혜와 결단력이 부럽다.
´척박한 삶은 온몸을 울리는 맥박처럼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경종입니다´
이집트에서 수피 댄스를 봤었다. 왜 인간을 저렇게 팽이처럼 돌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괜찮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와 내 동행은 좀 심드렁했었다. 그 때 둘 다 몸이 안 좋은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사마 춤의 의미를 알자 달라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행 전 사전 준비를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가 그 여행에서 얼마나 느끼고 갈 수 있게 해주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신영복 교수님은 동아 일보의 제의하에 이 여행을 시작했으며 어디를 여행할지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물론 공부도 충분히 해 갔지만 한 나라에 잠시 체류하면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과 그를 받쳐주는 지식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즐거우면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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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세기말, 새로운 세기 그리고 새로운 천년의 길목에서 신영복 교수는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출국이요 해외 여행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그가 ˝태어나서 자란 조국 그리고 20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조국을 벗어나는 감회˝는 남다른 것이었다(15쪽).
그는 스페인의 우엘바(Huelva) 항구로부터 시작하여 마라톤 평원, 인도의 갠지스강, 네팔 왕국의 수도 카트만두, 사이공과 도쿄, 만리장성과 아우슈비츠까지, 그리고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로부터 미(美) 동부의 보스톤까지 두루 방문하고 살피면서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하고 문명과 문화의 숲 속을 거닐었다. 본서에서 신 교수는 세계 역사의 의미와 지향에 대해 근원적 의문을 가지고 지나간 시대의 유적과 유물 그리고 살아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이를 통해 그는 개인과 사회, 인간과 민족, 오늘과 미래에 관한 그의 생각과 느낌을 서간문의 담담한 문체를 빌려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본서를 읽은 후, 필자는 서너 갈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저자의 여정은 외부 세계와의 ´직선적 대면´을 통해 싱싱한 의문을 갖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 대면은 하나의 충격일 수 있고, 따라서 신 교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저것과 나의 대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54쪽) 저자는 세계의 이곳 저곳을 찾아가 그 곳에 담긴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는 5백년 전 콜럼버스가 출항한 우엘바 항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항구는 유럽이 지중해의 역사를 벗어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유럽 주도의 세계사가 시작되는 기점이기도 합니다. 콜럼버스의 출항은 본격적인 식민주의(植民主義)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16쪽) 뿐만 아니라 그 항구는 ´세계화 논리의 출발 지점´이라고 말한다.
신 교수는 컬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를 궁구(窮究)한 후에, 개인의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속에 엄청난 사회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둘째로, 본서는 20세기를 살아온 ´상처 입은´ 한 엘리트 지식인의 눈으로 지구촌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틀어내고 있고, 특히 피로 얼룩진 ´역사의 피라미드´를 고발하고 있다. 신 교수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에 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찾아갔다. 그 곳은 그리스 비극의 대부분이 상연된 곳이다. 그리스 비극은 ˝부단히 재창작되고 재해석되어˝ 왔다(38쪽).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 비극은 신과 영웅과 왕들에 대한 저항 의지를 결의하는 ´시민 철학의 대장간´이었다. 따라서 그는 디오니소스 극장을 ˝삶의 현장에 구조화되어 있는 빈부와 성과 계급간의 갈등이 키워 온 갖가지 소이(小異)를 대동화(大同化)하는 용광로˝(40쪽)로 해석한다.
소위 ´마지막으로 보아야 하는 도시´인 로마를 방문한 저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 유산 가운데 그 40%가 로마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가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로마는 로마인의 힘만으로 건설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피정복민의 피땀과 재물로 건설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동서고금의 어떠한 제국의 건설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134쪽).
또한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장성을 당시의 심정으로 읽는다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벽돌 한 장, 한 장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노역에 몸서리치며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그 속에 담고 있는 무수한 희생으로 하여 우리들이 수천 년 동안 골몰해 왔던 역사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강대한 제국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부리며 매진해 온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역사를 보여줍니다˝(87쪽). 저자는 만리장성을 내려오면서, 그 장성이 예방전쟁(豫防戰爭)의 역할을 수행한 방벽(防壁)이라는 사실에서 한 가닥의 위로를 얻는다.
셋째로, 신 교수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적지 않은 통찰을 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내게 가장 정직한 사랑의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함께 걸어가는 것´이며, ´함께 핀 안개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63쪽).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에 최후까지 끼어들어 끈질기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열등감과 오만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가장 심하게 왜곡하는 자의식이다. 신 교수는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그들에게는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이나 인디오에 대한 우월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신 교수는 ˝혁명이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미지의 작업˝(127쪽)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먼저 요구되는 것이 ´인식의 혁명´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과정이 상품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온 현대 자본주의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망연해질 뿐이라고 한다.
끝으로, 책머리에서 시인 고은이 언급하고 있듯이 본서에는 ´고금을 오고간 지식의 오랜 섭렵´이 나타나있다. 이는 그의 폭넓은 독서를 반영해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열거한다면, 본서에서 독자는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함께 <주홍글씨>, <백경>, <분노의 포도>, <말콤 엑스>를 만날 수 있고, 네루의 <옥중서간집>,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박지원의 <양반전> 그리고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독서 여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송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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