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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일기 |  | |
| 장정일 - <독서일기>
출판사 : 범우사 / 출판일 : 1994년 11월 1일 / 페이지수 : 270
독서일기 1권, 첫 페이지 여백엔 ´95. 1. 6´이라고 써 있다. 그 때는 이미 장정일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 나와 있었을 때였는데, 난 그의 소설보다 먼저 이 독서일기를 만났다. 그 당시엔 단순히 이 작가의 놀라운 독서력과 날카롭고 신랄한 비판력에 빠져, 밤새 읽었던 기억과 그의 영향으로, 나도 나름대로 독서일기를 열심히 쓰던 일이 생각난다.
그 뒤 일년만에 나온 독서일기 2권도 사서 읽었었는데 여전히 그의 소설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어느 날 뉴스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촌사람같이 생긴 무표정한 얼굴이 경찰서 취조실에 앉아 있었고, 수갑이 채워진 채 법원으로 끌려갔다. 순간 즐거운 사라의 마 교수를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외설스런 책은 일단 거부감부터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보트하우스´를 선물 받았다. 어느새 거부감은 사라지고 숨까지 참아가며 한번에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숨가쁜 이야기들. 환상적이지만 그것이 또 사실 같기만 하다. 이번 소설엔 그가 전에 썼던 소설속 주인공들이 다시 나온다. 전의 소설을 읽지 않은 나의 상태에서는 보트하우스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하니 난 장정일, 이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4년만에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시 집어든 이유다. 이런 나에게, 장정일의 모든 소설(판매 금지된 소설까지도)을 읽었다는 어떤 사람은, 장정일에 대해서 제일 알 수 없는 책이 바로 독서일기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그의 어릴 적 꿈은, 하급공무원이 되어 아홉시에 출근하고 다섯시에 퇴근해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는 초판에 대한 무서운 집착의 증세가 있다. 자신의 소설에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 우선 초판인지 아닌지부터 하고, 초판일 때만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 이런 자신을 스스로 괴짜라고 부르지만, 그의 책에 대한 애착은 대단한 것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산 책이 아니면 보지 않았다고 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남을 빌려주는 일도 없이 사 모으기 시작했단다.
그의 책에 대한 욕심은, 꿈에서까지 나타나는데 헌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처음 보는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다가 깨고는, 한참이나 우울해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는 그의 또 다른 취미는 영화다. 무명시절엔 동시상영관에서 하루종일, 보던 영화 또 보며 지냈다는 그는, 독서감상문 사이사이 ´베를린 천사의 시, 펄프픽션, 나쁜 피, 성스러운 피, 쇼생크 탈출, 비터문.´ 등의 영화감상문도 삽입되어 있다. 특히 펄프픽션의 그 난해한 상징들을, 해석해 놓고 풀이해 놓은 부분이 가장 인상깊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의 에로티시즘이 에리히 프롬과,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란 작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 교수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마 교수의 작품을 놓고, ´속으로는 병들고 겉으로는 멀쩡히 위장된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가식 없는 직시와, 새로운 성 윤리에의 요청´이라는 것으로, ´남보다 앞서 시대를 살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타인으로부터 폄하당하기 쉽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문장은 꼭 자신의 판매 금지된 소설에 대한 변명 같아 보이는데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서 ´표현과 상상의 끝에까지 가보고 싶었다, 나중에 판매금지가 되더라도 꼭 한번, 책으로 내보고 싶었다´고 했던 <보트하우스>의 한 문장과 오버랩되었다.
이제 와서 내가 그에게 가장 크게 끌리는 부분은 끝없는 변신욕망이다. 이것은 독서일기 1권에 초록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해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간 존재에 대한 유한성과 일회성을 두려워하며 현대사회의 강제적인 존재구속이 너무나 갑갑했다면서 그는, 시에서 희곡으로, 희곡에서 소설로 마구 장르 이동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작가의 변신은 생명력이다. 한 곳에 머물러, 같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면 작가의 인생은 끝난 것이다. 그의 이 끝없는 변신의 힘은 무엇인가.. 내가 믿지 않는 말 중에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잘 쓴다는 게 있는데 그를 보면, 그 말은 딱 들어맞는다. 짧은 그의 학력을 보면 믿을 수 없는, 논리 정연함.
문학을 하려면 세상을 죽도록 사랑하거나 죽도록 증오해야 한다는 말에서, 그가 문학을 택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겠다. 4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의 비판적 시각을 일깨운다.
이것을 가리켜, 장정일은 글쓰기의 에로티시즘이라는데 ´껴안는 사람만이 생산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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