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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쪽이의 육아일기 |  | |
| 최정현, 변재란 : <반쪽이의 육아일기>
출판사 : 여성신문사 / 출판일 : 1992년 4월 1일 / 페이지수 : 210
´남녀평등´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을 덮고 난 후 내게 남은 질문이다.
결혼을 한다는 것. 그것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평생을 결정지어 버리는 대단한 존재다. 결혼과 더불어 발묶여 지는 것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여자가 집안에 틀어 앉아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워야지´라는 뿌리깊은 사회적 통념상 자기 일을 가지고 가정도 잘 꾸려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최정현, 변재란 부부는 진정한 의미의 삶의 동반자였다.
단 몇 컷의 그림에 불과하지만 오밀조밀하게 그려놓은 남편의 가사일 분담의 어려움, 딸 하예린과의 좌충우돌, 부인과 느끼는 행복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우리 나라에도 과연 이렇게 가사 일에 적극적인 남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만해도 그렇다. 힘들게 일하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를 위해 걸레 한번이라도 잡은 적이 있는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 버리진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러나 우리시대 어머니들은 지금도 반복되고 지루한 가사노동을 자신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채 혼신을 다해 하고 계신다. ´집에서 그냥 놀고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꽤나 대단한(?)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가해 보이는 가사일에 대한 잘난 남성들의 비하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 멋진 반쪽이인 최정현씨는 번역 작업하는 아내를 위해 만원버스를 타고 어린 딸을 데리고 자신의 근무처까지 당당히 간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될까봐 장바구니 드는 것도 겁내하는 남자들·´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신봉하는 남자들·여성을 인격체로 판단하지 않고 성적노리개로만 생각하는 남자들. 이들에게 가사분담은 낯두꺼운 남자들이 체면도 못 차리고 기죽어 지내면서 할 수 없이 하는 구질구질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전해주어 일침을 놓고 싶다. 부부의 화합이란 목소리 큰 남자가 아내를 잘 휘어잡아 노예부리듯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득 신문에서 본 사진 하나가 생각난다. 페미니즘에 관해 찍은 사진 중 수상작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는데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어느 널찍한 아파트의 마루.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는지 가족모두는 반팔 차림이었고 안경 쓴 아이 둘은 TV바로 앞에 바짝 붙어서 만화영화를 보고 있다. 남편은 속옷차림으로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고 아내는 표정도 지쳐 보였고 힘든 와중에도 끊임없이 일한 듯한 모습이었다. 사진에도 고래등같은 남편 뱃살과 엄마는 무엇을 하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들의 엉덩이 사이에서 쭈그리고 걸레질하는 아내의 모습이 찍혔다.
그것이 엄마의 의무이자 아내의 도리라면 난 결혼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왜 그들은 TV를 끄고 방을 쓸지 못하고 아내를 위해 걸레한번 빨지 못하는 자식이고 남편인가. 그리고 어려울 때는 엄마를 찾고 무언가 잘못 돼도 엄마를 찾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한국의 어머니들.
비록 늦게나마 평등부부상이란 것도 제정되고 가정의 속박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이 희생되고 있지만 최정현, 변재란 부부처럼 남편의 힘이 조금만 더 보태져 아름답게 가정을 꾸리는 사람도 있다. 구호로만 끝나는 남녀평등. 자신이 신던 양말 한 짝이라도 빨고 일요일날 이불 뒤집어쓰지 않고 자식들과 몇 시간이라도 놀아주는 그런 작은 일이 씨앗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곳곳에 숨어있을 반쪽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부부는 서로 공유하고 서로 끌어올려 줄수록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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