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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의 그림일기 |  | |
| 오세영 : <부자의 그림일기>
출판사 : 글논그림밭 / 출판일 : 2001/7/5 / 페이지수 : 276
효주란 아이가 있었다. 깊게 쌍꺼풀진 눈 꼬질꼬질한 옷차림 쉬는 시간에 늘 혼자 엎드려 있던 그런 아이. 그래서 따돌림받던 아이. 난 그 애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 내가 고작 한 말이라곤 ˝몇 시야?˝ 그 애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내겐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에...
효주와 주번을 같이한 이후 난 그 아이와 말할 기회가 있었다. 어디 사는지 동생이 있다는 것이 다. 효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난 기뻤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효주에게 조금씩 천천히 다가갔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되어 효주 집에 가게 될 기회가 있었다. 허름한 방 한 칸 수년 전에 효주 어머니가 혼수로 가져왔을 법한 낡은 화장대 하나, 책도 마땅히 놀 곳이 없어 방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효주와 효주 동생의 교과서들, 그리고 지금도 내 가슴속에 따뜻한 햇살을 비춰줄 법한 아주 작은 창문 하나, 그것이 효주의 작은 공간이자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었다.
효주의 아버지는 트럭에 야채나 부식물들을 싣고 장사를 하시는 평범한 분이셨고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효주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어머니 바로 어머니였다. 가난이 싫어 효주가 8살 되던 해 집을 나가셨던 어머니. 울고 있는 효주를 방문에 묶어놓고 모질게 돌아섰던 그 모습. 효주는 그 때를 생각하며 내 앞에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노을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때, 두 평 남짓한 옥상에서 둘이서 눈물 그렁그렁한 채 말없이 그냥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주황색 빛 하늘이 왜 그리 곱던지..
부자를 보니 효주 생각이 난다. 포장마차가 생계수단이고 파출부와 막노동판을 전전하시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고 힘들게 자라난 가난뱅이 ´부자´. 부자를 보는 내 마음 속에 이렇게 효주를 기억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가난´, 그것은 그토록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 가진 자와 없는 자, 그렇게 단편적으로 등급 매기듯 나누는 우리사회의 썩은 현실. 상류사회를 공략한 초고가품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한쪽에선 급식비조차 없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늘어만 가는 이질적인 사회에 우리가 희망을 품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은 과연 있을까?
나는 이 짧은, 그러나 날카로운 만화 한편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얼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철거민촌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처절하게 자신들의 살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시청이나 상부에서 깡패들을 동원시켜 강제로 이주하게 하고 그 곳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정말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고 있었다. 일말의 양심도 남지 않은 그들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도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판자집이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헐리고 짓밟히고...
그렇게 가난한 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치고 살아봐도 항상 불이익과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포장마차를 단속반원들에게 뺏기고 잘사는 엄마들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부자의 엄마. 바로 이런 잡초 같은 삶들이 있기에 거목 같은 상류층사회가 있고 더 나아가 우리사회가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내가 앉아 있는 창가로 노을빛이 아름답게 들어온다. 중학교 때 가난했지만 동생과 아빠와 함께 꿋꿋이 집안살림 도맡아 하던 효주와도 노을을 보았다. 햇빛은 어느 곳에서나 따뜻하지만 그땐 유난히 효주네 집을 비춰주었던 것 같다. 가난의 굴레를 빛으로 털어주고자 했던 것일까. 나는 효주네 동네의 그 아름다웠던 정취를 잊지 못한다. 꼬불꼬불 가파른 길 문 앞에 한 두 개의 화분이 삭막함을 잊게 해주고 동네 꼬마들의 밝은 표정. 동네 아주머니의 너털웃음. 군데군데 나와있는 연탄재 이런 모든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자 소박하고 가난한 서민들의 삶이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번듯한 집에 큼직한 자동차 부자라는 사람들.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동정이 아닌 진심 어린 이웃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이는 몇이나 될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좋은 차를 굴린다고 그 사람이 위대하거나 존귀하진 않다. 모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희망으로 삶을 아름답게 채워가는 이들이 있다.
내 마음 속의 ´효주´와 ´부자´ 이들의 맘속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아마 무색 투명한 아무 것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비록 가진 자에게 억눌려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그들은 우리사회의 원동력이자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돈 따위로 우리 삶의 값을 매기기에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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