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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 |
| 박태원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출판사 : 깊은샘 / 출판일 : 1999/3/20 / 페이지수 : 382
이 소설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소설로서 이 작품의 작가 박태원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구보가 청계천변에 위치한 자기 집을 나서는 정오로부터 시작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두 시까지의 하룻동안의 이야기이다. 마흔으로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구보가 하룻동안 서울 거리를 배회하면서 세태 풍속을 그려낸 이 작품엔 전체적으로 구보의 의식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인 구보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거리로 나선다. 나선다기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향하는 방황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방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홀어머니를 집에 남겨 두고 집을 나왔을 때만 해도 구보의 외유(外遊)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자신이 하고 있는 ´글쓰는 일´에 회의(懷疑)를 느껴서였거나 결혼 문제에 대하여 독촉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자신의 입장 정리를 스스로 해 보기 위하여, 혹은 습관화된 그의 외출 등과 같은 사소한 문제가 그 원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가 접할 수 있던 세태와 그의 여러 유형의 벗들과의 만남 속에서 구보의 방황과 갈등은 좀 더 다른 국면과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고(思考)의 틀에서 벗어나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사고의 틀로 구보가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보가 접할 수 있었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느 것이 그를 괴롭히게 했을까? 단순히 서울 거리에서 접할 수 있던 세상의 풍경이나 위선과 가식으로 둘러싸인 사람들, 허영에 찌든 그의 친구의 모습, 내리는 비에 젖어 잠겨 드는 우수(憂愁)와 같은 것들은 좀 더 확대된 사고의 틀에서 보면 전체 집합의 부분 집합과 같은 개체로써 인식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각각의 것을 접한 뒤에 구보의 사고를 지배하는 여러 요소는 결국 구보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하룻동안 그가 겪었던 마치 영화 필름 낱장이 모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즉, 여러 사건과 그 속에서의 자신의 생각이 유기적(有機的)으로 통합된 가운데 이 사회 전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그는 오늘도 배우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결국 변해 가는 세태도 변해 가는 사람도 이 사회가 만들어 버리는 산물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변해 가는 세태에 그 자신도 익숙해져 감을 느끼고 있음과 동시에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 개인이 사회에 길들여져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비록 몇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 작품을 쓰던 시대의 현실과 현재의 입장을 고려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전쟁의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공업화를 통한 성장 위주의 우선 정책을 펴 왔고 이는 분명 우리 생활의 질(質)을 개선시켜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고도로 복잡화되고 발전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감지(感知)하기 어려울 만큼 빨라지고 있다. 또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됨에 따라서 대중들의 관심은 다양화되고 그들의 사회 참여 의욕, 가치관 역시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는 것이 목적인 시대가 지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문제냐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라든지, 좌익, 우익과 같은 이념 속에서 표류한다기보다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훨씬 더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를 가치관의 혼돈 시대라고 일컬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크게 혼란해져 있다. 이에 따라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일어나고 또 사회화되어 가고 있다. 거창하게 사회 문제까지 들먹이지 않고 단순히 개인의 차원이나 소규모 집단에서의 양태(樣態)를 보아도 이는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소설에서 구보가 접할 수 있었던, 자신의 부(富)를 자랑하는 벗이라든지, 신분의 이동으로 자신을 적잖이 무시하는 벗, 그리고 이러한 세태 속에서 스스로 낙오자라는 생각에 자신을 때때로 자박(自縛)하는 자신이 그 평범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겨내고 극복해 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다. 이 소설에서의 구보 역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무와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한 소설가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자신을 이겨낸다 하더라도 더 이겨내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를 둘러싼 세계의 인식과 시각인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을 이면 중에 제시해 주고 또 우리는 그렇게 느껴야만 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한 사회 제도를 이상적으로 바꾸고 또 개선시키기는 원동력은 결국 자신의 확고한 목소리라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유년 시절부터 싹터 온 그의 내면에 일단 확고히 뿌리를 잡고 자리 잡은 후에 유년을 지나며 또 하나의 세계로 뛰어들어갈 즈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성인(聖人)으로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 사회가 지금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개인은 단순한 지식인보다는 지성인일 것이요 로봇 같은 인간보다는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이러한 인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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