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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래의 시간 |  | |
| 최정주 - <술래의 시간>
미래를 찾는 시간.
˝찾았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파란 가을 하늘을 물들이던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너희들 뭐하니?˝
˝술래잡기요.˝
크고 힘찬 대답이었다.
˝와!˝
하고 흩어지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붉게 적셔진 놀이 내 눈을 시리게 파고 들었다.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한이 맺혀 있기 때문이여.˝
술래잡기 놀이. 어릴 적 무척이나 많이 했던 친근한 놀이다. 그 동안 이 놀이를, 컸다는 이유로 멀리 해 오다가 우리가 여전히 아무도 찾지 못한 술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친구를 통해 만난 최정주님의 <술래의 시간>은 나에게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오랫동안 술래였고, 또 술래로 지내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숲으로 간다고 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수많은 술래들과 만났다. 그들은 부딪히고, 방황하고, 도망친다는 인생의 길 중 한 가지도 택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헤매고 있었다. 아마도 술래로 있던 시간을 돌려받으려는 헤매임이리라.
이 소설은 중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는 데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의 외출, 그것은 그에게 외면해 왔던 지난날의 역사와 아버지의 크고 깊은 상처를 만나게 해 준다.
그의 아버지 박만구는 힘없고 가난한 청년이었다. 그렇기에 징용을 세 차례나 다녀왔고, 죽을 때까지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늘의 붉고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내 눈에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이 보여. 저건 피여. 수많은 사람의 한숨이여.´하고 말하는 주름지고 얼룩진 노인의 눈물 담긴 눈이 떠오른다.
갑자기 주름지고 얼룩진 아버지. 예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지만,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는 어머니 말씀에 찾아가는 아버지의 지난날은 멀고도 힘들기만 하다. 죽음이 예정되었던 탄광에서 같이 일하시던 옛 친구를 찾아가신 것이리라 생각한 중표는 그 분들을 찾아가는 길에서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의 노인을 만난다. 그 깔끔한 차림의 노인은 힘있는 아버지를 두어, 돈 없고 힘없어 징용을 간 주름살 가득한 얼굴의 아버지와는 달리 고생 없이 살았다 하고, 중표는 묘한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36년간의 암흑 시대에 살지 않았던 우리들조차도 민족을 괴롭힌 그들을 멀게만 보는 그것과는 같은 것이리라.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를 찾아다니던 중표는 그들뿐 아니라 후세의 자손들까지도 그 아픔의 멍에를 벗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잔혹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탄광이나 전쟁터로 깔고 가 일을 시키고, 동료들의 수많은 죽음을 보게 했다.
그런 세월을 경험한 우리 민족은 아픔을 지닌 채 방황하면서 살아왔다. 왜놈들은 자신들이 하기에 위험하고 힘든, 그러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필요한 그런 일들을 우리 민족에게 시켰다. 그것도 우리 나라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 일꾼들에게 말이다. 박만구나 그 친구들이 자신의 젊음과 바꾼 것이 일본의 미래다. 일본은 지금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 발전조차 우리 민족의 젊은 피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우리 민족을 수탈한 36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중표는 불과 하루만에 아버지를 찾은 술래였지만, 그가 찾은 것은 36년과 그 이상의 역사였다. 그는 아버지를 찾는 도중 한 여인의 비석과 만난다.
일제 식민지 시대 정신대에 끌려가 간신히 목숨을 구해 그리워하는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한 채 일본에서 일본인의 멸시와 질시를 받으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여인은 땀으로 얼룩진 그 돈을 고향을 위해 쓰지만, 고향 사람들의 멸시와 눈총을 끝내는 고향의 흙도 밟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 고향 땅에 비석을 세우지만 그것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오직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으며 온갖 수난을 겪었을 텐데. 한 많은 세월을 보상받으려 했던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가슴이 저려 왔다. 그들이 남긴 잔해였다. 피해에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향도 잃고, 가족도 잃고, 자신조차 잃어버린 그네들은 왜놈들이 남기고 간 아픔이리라. 배고픔에 미역을 뜯어먹겠다고 바다로 뛰어들어 혼이 되어 버린 동료를 보고 평생 미역국을 먹지 못한 민족, 탈출을 하기로 한 동생과 만나지 못한 채 혼자 내려와 죽는 날까지 죄책감에 시달린 민족, 동료를 때린 감독관의 숙소를 불태우고 도망친 뒤 수없이 맞았으면서도 조선인 감독관을 죽인 것을 후회하며 사는 민족.... 모두 선량한 우리 민족이다. 선량한 만큼 힘이 없었던 그들은 언제까지나 무언가에 쫓기고 쫓으면서 술래로 남은 것이다. 결국 중표는 아버지를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버지를 집에서 만나게 되지만, 다시 술래가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6·25사변시 숨어 지내던 집안의 지하방에서 아버지는 새로운 외출을 하셨다. 징용 가서 몽둥이로 맞아 죽고, 배고파서 죽고, 갱이 무너져 죽은 동료를 생각하시며 일본을 향해 이를 갈던 아버지는 그들 혼과 함께 잃어버린 지난 세월을 찾으러 술래가 되어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징용. 수탈을 일삼던 그들의 인간 수탈이 이런 것이었구나.
술래의 시간.... 우리의 민족과 역사와의 술래잡기는 언제쯤 끝을 볼까.
러시아 땅 사할린에서는 일제 시대 징용 간 우리 민족이 아직도 3만5천 명이나 남아 망향의 한 속에서 산다고 한다. 어두운 역사가 씌운 그늘과 멍에는 벗겨질까. 얼마나 많은 고통이었기에 상처가 이리도 커서 아물 줄을 모르는가. 정말 이가 갈리는 일이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생각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산 가족 역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술래로 남아 있을 순 없다. 역사의 아픔을 후세에 대대로 물려 줄 순 없는 것이다. 노을을 보면서 인생의 즐거움에 눈물짓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박만구는 아픔을 겪었지만, 중표는 아픔으로 더욱 강해진 새 시대의 민족이다. 일본의 문화라면 그저 휩쓸리는 나약한 청소년은 되지 않겠다. 36년 간 민족을 수탈한 그들을 다른 방법으로 이겨야 하겠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철저히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받아들이자. 잃어버린 과거를 새로운 미래로 보상받는다면, 술래의 시간은 길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리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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