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 |  | |
| 이규희 : <그 여자의 뜀박질은 끝나지 않았다>
출판사 : 지혜네（도）/ 출판년월(초판) : 1998년 10월 20일 / 면수 : 273
부정(negation)의 미학 - 난 어머니처럼 살기 싫었어.
나는 이 소설집에서 ´멍석딸기술이 부어질 무렵´을 추천하고 싶다. 요즘 행정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충남 아산, 그리고 작가의 어린 시절 나이를 감안하면, 50년대 초반쯤이 배경이 되리라 짐작된다.(사실 박완서님도 해방 전후 황해도 고향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리 멀고 오래된 것만은 아니다.)
무능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는 밖에 장사를 나가면서 같은 장사꾼 아저씨를 알게 된다. 고된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머니는 처음으로 동료 아저씨의 배려와 관심에 행복해 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동네 사람들도, 그리고 소녀 딸조차도 그런 어머니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물론 ´아슬아슬한 불륜´이 이 소설의 초점인 것은 아니다. 초점은, 그 일이 있기 이전에 어머니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 자신의 행복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이후 현실을 박차고 떠나간다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negation)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도 사실 부정의 힘으로 현실을 살고 있다. 이러이러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식으로 말이다. 멍석딸기술이 부어질 무렵은 이런 힘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여성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딸까지도 대위법을 이루며(딸이 하는 행동과 어머니의 하는 행동이 묘한 일치 내지 조화를 이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사랑과 행복을 찾는 여성의 생명력을 탐구하게끔 한다.
【기억하고 싶은 다섯 토막】(103-178쪽)
▶1. 정실이 엄마를 마중나갔다가 본 광경
황금빛이던 노을이 사위어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단말마의 절정을 보여주는 빛깔……, 멍석딸기술의 곱디고은, 그 연연하게 녹아흐르는 빛깔 속에 한 아낙과 한 사내가 어울려 걸어가는 동작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정실은 돌아서 버렸다. 정신이 오싹하리만큼 혐오를 느꼈다.
▶2. 환희 이후 엄마의 고통
˝어디 아픈겨?˝
˝당신은 저리 가유. 당신이 언제 날 생각해 줬다구. 언제 나한티 젓갈통이 얼마나 무거우냐고 물어를 봤어, 한 번이나 내려줘 보길 했어, 이어줘 보길 했어……˝
아버지가 소리 없이 방문 밖으로 사라지시고, 어머니는 반듯이 누운 채 눈을 스르르 감았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내일부터 장사 다 집어치울란다.˝
▶3. 정실이가 완목이를 외면하는 속내
정실(딸)은 자기도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목(소년)이 저에게 관심을 갖고, 제 주위를 어른거린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으면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만 하면 왜 오싹하는 걸까. 너는 약골이고, 약골은 농촌 생활 어렵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일까?
´약골이 아니래두. 난 농촌 생활이 싫어. 내가 젤 잘 아는 아버지 어머니 생활은 그건 생활두 아녀, 고역이여, 동네 사람들의 모습두 싫어, 그게 마지못해서 억지루 끌려서 살아가는 것이지......´
▶4. 소년의 결심과 정실이의 미묘한 감정
˝나 떠날 거여.˝
완목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떠나?˝
뜻밖이어서 정실은 그의 말을 불쑥 되뇌이었다.
˝응, 결심했어……, 돈을 좀 벌어 와야겄다구.˝
˝그래, 많이 벌어 오렴.˝
정실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미나리꽝께에서 완목은 걸음이 쳐졌다. 정실은 완목이 마음에 내키는 것도 아니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비어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의 끊어진 새끼손가락이 연상되어 ´조심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까지 해주는 거였다.
▶5. 젓갈장수 아저씨가 어머니의 곤란을 외면치 않고 찾아옴.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도무지 면목이 없구먼유. 지 안이(아내)서 뭘 모르고, 여길 와서 분란을 일으켜 디린 모양인디유. 백배 사죄하것시유. 결론부터 말씀디리자문유 여기 아주머니는 아주 정숙한 분이시지유. 같은 젓갈 장수끼리 심(힘)이 부쳐 하는 사람이 있으문 그 정도는 거들어 디릴 수가 있는 거라구 보는디유.˝
답답해서, 말을 더는 잇지 못하는 빛이던 그는 여태와는 달리,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띄엄띄엄 어렵사리 외마디 소리 같은 말을 토하기 시작했다.
˝지는 하, 하느님을 미, 믿는디유…하, 하느님을 두, 두구 매, 맹세하…하지유….
(교보문고 전재)
by http://www.edu.co.kr/kwank99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