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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  | |
| 이문열 :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출판사 : 아침나라 / 출판일 : 2001/10/10 / 페이지수 : 376
<소설로 삭인 이 시대의 불화, 이문열>
부산의 대형서점 독서토론회에서는 이문열의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라는 신작 토론회가 열렸다. 그런데 쓰러지는 12월이라 날씨가 너무 추운데다가 마치 그날은 부산의 서점들이 동맹휴업을 하는 날이었다.
이 추운 겨울날에 우리의 영혼을 살찌웠던 국민작가 이문열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그의 책이 독극물로 매도되는 비틀린 현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데 약간의 떨림이 있기도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삶을 비관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접하게 되고 또 믿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보도되어 서민들은 사기가 저하되는 시절이라 마치 나에게는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산의 전서점이 동맹휴업이라 당연히 그 토론회도 취소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유독 이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어둠 사이를 뚫고 서점으로 갔는데, 굳게 닫힌 서점은 문은 삭막하다 못해 한산하기까지 했는데 과연 작가 이문열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걱정이 아니면서도 걱정일 뿐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목소리만 듣고 싶어하는 애독자들도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문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영화로 알게 되었다. 그 후로 그분의 주옥같은 작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 해 겨울> <금시조> <알 수 없는 일들> <아우와의 만남> 그리고 <삼국지>와 <수호지>를 읽었고,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까지 읽었다.
예전에 삼국지와 수호지를 읽으면서 느낀 것이다. 외국번역서는 다소 딱딱하고 그 번역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이해할 수 없어 어렵게 읽히 시작했던 책도 못다 읽고 만 경우가 많았는데 이문열의 삼국지와 수호지는 달랐다. 과연 글을 쓰는 작가에 따라 외국 번역작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절실하게 되었고 만일 그분이 그 책을 번역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생각해 보곤 한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고도 세상 시비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소용돌이 속 깊이 빨려들고 있으니 누구의 허물인가´ 잠깐 멈춰 서서 가만히 나를 돌아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는 작가의 말을 실어 소설가 이문열(53)씨가 6개의 작품을 모은 중단편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아침나라 발행)를 펴냈다. 그것은 ´아우와의 만남´ 이후 7년만의 작품집이었다. 6편의 작품 중 ´김씨의 개인전´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그 여름의 자화상´등 3편은 8, 9월 두 달 동안 한꺼번에 쓴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여름 내내 ´곡학아세 논쟁´과 ´책 반환 소동´을 겪었고. 표제작 <술단지와->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 여름의 자화상´에서는 친일 행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표제작에서 ´율사 출신 여류(女)´를 ´개´에 비유해 비난하고, 시민운동단체들도 ´쇠 절구공이만한 침을 맞아야 정신이 들 무리´라고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이번 소설집에는 문제의 작품을 비롯해 ´김씨의 개인전´ 등 모두 6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도연명(陶淵明)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세속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귀거래사´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딴 작품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引壺觴)>의 머리말에서 이문열씨는 새로운 페러다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소설이 현실의 민감한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데다 그간 ´반공(反共)작가´라는 등의 근거 없는 오해 때문에 나의 진의가 왜곡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들에 대해 ´장편소설을 쓸 만큼 공을 들여 다채로운 소재와 주제. 스타일 담았다´면서 문학적인 완성도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작품 이외의 방법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 ´곧 에세이집을 발표한 뒤 장편소설 집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올 들어 전개됐던 미당의 친일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내용으로 한편 친일문제에 대한 그간의 발언과 관련해 ´친일의 범위는 다수가 아닌 소수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치 문제와 별 관련이 없는 듯한 단편 ´김씨의 개인전´도 작가가 말하는 주제를 듣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작가는´작품의 주제는 삶과 예술의 관련성이´라면서 ´예술은 삶과 유리된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도 대사회적 발언에 집중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이번 작품집에 실리지 않은 이 시기의 여타 작품은 장편소설 ´선택´ ´아가´ ´변경´뿐이다. 80년대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변경´을 제외하고 나면. ´아가´와 ´선택´를 위시해 95년 이후 이씨가 발표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소설을 통한 대사회적 발언을 노골적으로 시도하는 형식´을 띠고 있었다.
80년대 진보적 경향의 소설이 ´대사회적 발언을 통한 정치소설´이란 공과를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해 보면. 80년대에 ´시대와의 불화´를 겪었다고 공언할 정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던 이씨가 90년대 들어 도리어 수구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정치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인 것이다.
작가 이문열은 1948년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원철(李元喆), 어머니 조남현(曺南鉉)사이의 3남 2녀 중 3남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인데 그곳은 집성촌으로 그의 옛집이 있는 원리동에서 백 가구 가까운 일가가 지금도 살고 있다. 세 살 되던 해에 맞은 6·25와 아버지의 월북, 그후 아버지는 망령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다치기 쉬운 유년시절을 온통 장악하고, 그의 가치관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이문열이 있는 것이다.
독서에 관한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는 선입견에 일침이라도 가하듯 서점은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오후 6시 준비된 부스에 이문열 선생님이 착석하시고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폭넓은 팬들의 작가 이문열에 대한 관심의 증거는 그날 독서토론회에서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
중학생, 초등생, 휴가 나온 장교에서부터 백발의 어르신들까지,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교수, 고등학교 국어교사, 심지어는 옆 서점의 점원까지 이문열 선생님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1시간이었던 토론회가 2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았다. 토론회 중에는 날씨도 추운데 왜 내가 왔을까라는 고민도 했다고 했지만 팬들과의 대화 중에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모습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부산의 독자들이 얼마나 이문열이라는 거대한 작가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문열을 보기 전에는 날카롭고 예리하고 소위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거리감이 있지 않을까라고 여겼는데 새벽 두 세시에 딸기 먹으라고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울 정도라는 부악문원생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情)을 느낄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분은 진정한 국민 작가다운 면을 보여주었다. 내 나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부악 문원에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라는 책을 펴 낸 순간부터 언론이나 독서계에 바람을 일으킨 그분의 힘에 또한 한번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결코 도도하지 않고 포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우리서민들의 대변자 이문열을 사랑하게 되었다.
새로운 작을 계속 창조하길 기원한다. 12월의 쓰러지는 햇살처럼. 반짝 스타처럼. 열띤 불화로 괴롭겠지만 그것에 흔들리지 않은 진정한 우리들의 영웅으로 남아주길 기원한다.
by http://www.edu.co.kr/kwank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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