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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읽어주는 여자 |  | |
| 한젬마 : <그림 읽어주는 여자>
출판사 : 명진출판사 / 출판일 : 1999년 9월 5일 / 페이지수 : 206
감상은 감상하는 자의 몫이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는 것에 어설픈 두려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 중 하나가 화랑(畵廊), 미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아닐까 싶다. 그림은 그냥 봐도 좋다고 하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입장은 자못 다르다.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것과 막연히 주마간산 격으로 감상하는 깊이가 다르기에 그러하다. 대다수 일반인들은 어려운 미술사조나 양식, 어떤 경향(傾向) 등 전문적인 식견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어떻게 감상해야 할는지, 제목과 그림을 연관시켜 보느라 눈은 분주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점에 미술 전람회가 콘서트만큼 친숙하지 않고 낯선 세계인 양 때론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어떤 날은 주눅들기도 한다.
이런 주눅을 잠시 해소시키고 현대미술을 우리 삶과 동떨어지지 않게끔 편안하게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게 그림을 읽어주는 책이 내게 다가왔다. 국내 최초 그림 DJ가 선보이는 그림 안내서 ˝그림 읽어주는 여자˝. 서양화를 전공한 한젬마가 쓴 이 책은 한국과 서양의 현대화를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감상과 관련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편안하게 서술한다. 그림을 통해 달콤하면서 씁쓰레한 자기얘기도 보이고, 동시에 그림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미술전문가이다.
부담주지 않고 그림에 담긴 화가의 내면도 포착하여 쉬우면서 감칠맛나게 들려줌으로서 멀게만 느꼈던 명화가 마치 내 방에 걸린 액자처럼 정겹기까지 하다. 예전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봄직한 램브란트부터 지난 해 맛본 김창열님의 물방울그림까지 다양하고 풍부한 그림셀렉팅을 만날 수 있어서 이 책을 덮는 순간 마치 세계 미술 전람회를 순회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뿌듯하다.
늘 미술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잠재되어 있은 탓인지 취미 삼아 댓상과 스케치도 하고 미술학원도 기웃거렸지만 나랑 인연이 닿지 않는 듯하다. 마치 그림에 욕심내면 유망한 화가 한 명이 도태된다고 신이 착각하는지 도무지 미술은 형편없다. 이런 잠재적인 집착을 풀고 싶어서 일까? 내 아이에게 예능, 특히 미술학원에 부지런히 보내고 싶다. 다행이 막내는 어미와 달리 미술대회에 나가면 입상권에 들어와 못다 이룬 어미 한을 풀어준다.
˝나에게 그림은 시의 적절하게 직설적인 말을 던지는 속 깊은 친구와 같다. 적절한 순간에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배어내서 보여주는 단호함으로 사람을 서늘하게, 뜨겁게, 때로는 은근히 즐겁게 해 주는 친구. 그 고유한 역할을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자잘한 일상의 사연과 감성을 끄집어내어 다소 무거운 그림 산책을 사뿐사뿐 가볍게 걷도록 작가는 도와준다. 작가의 곁들인 설명을 듣고 난 다음 그림을 보면 화가의 생각을 헤아린 것처럼 마술에 매료된 양 공통된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것도 같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해질 무렵의 삽화 그림을 보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씬이 연상된다. 동시에 스칼렛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진정 내일의 태양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제목이 ´내일을 꿈꾸는 그림´이 어색하지 않나 보다. 저자가 곁들인 해설이 나에게 동시에 감정이입이 되는지 문외한인 나 역시 똑같은 생각과 느낌이 자리 잡히는 것이 신통하기만 하다. 또한 지친 하루가 가면 또 갓 건진 내일이 오겠지....마치 한편의 시 구절을 연상하기 좋은 만큼 소제목도 굳어진 신경을 풋풋하게 돌려놓는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림, 둘만의 공간에 걸고 싶은 그림, 신혼집에 선물하고 싶은 그림, 미소짓게 만드는 그림, 특히 그웬존의 ´화가의 방 한켠´을 보며 비어 있음이 차 있음보다 더 편안함으로 다가옴을 느껴본다.
화가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사람이며, 작품 속에 감상자를 끌어들이고 함께 대화 나누는 여유를 담아내는 작가라 했는데, 진정 그림읽기를 하다보면 그림에 몰입하게 된다. 이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 마침 이 지역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는 수채화전을 감상하고 싶었다. 미술전을 관람할라치면 이상하게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은연중 화랑이란 공간이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 방문하면 실례라도 된다고 느껴서일까. 이런 잘못된 편견이 화랑 출입을 편안하게 만들지 못한 요인은 아닐까? 그러기에 지식층만을 위한 사교장쯤으로 생각하는 부류들도 있을 법하다.
수채화전이 그리 흔하지 않던 여건이지만 관람자는 그리 많지 않다. 거칠게 붓질한 유화보다 화려함은 없지만 대자연의 풍경을 담백하게 펼친 수채화가 운치를 더하기에 난 수채화전이 좋다. 투명한 색감으로 다가올 계절의 정취와 물을 듬뿍 묻힌 큰 붓으로 하늘 전면을 시원스레 꾸며 놓은 빈 여백이 있어 더욱 좋다. 펼쳐진 구천동의 겨울 눈밭을 들여다보니, 눈이 내 앞에 소복소복 쌓인 착각에 저절로 손은 눈(雪)을 움켜쥐려고 겁 없이 앞으로 나간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 다행이었다.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내게로 다가와 미술을 하느냐고 물었다. 불에 데인 것마냥 설핏 놀라며 안 해도 좋을 말까지 곁들인다. 그냥 수채화전이 좋아서 감상하러 왔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팜플렛 갖다드릴까요 하며 친절을 듬뿍 안긴다. 그림읽기의 여파로 화가가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나대로 해석하며 여러 번 둘러보았다. 이제껏 건성으로만 보던감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방식대로 편하게 읽으니 뭔가 전과는 다른 신선함을 맛본다. 다행히 추상화의 어려운 것이 아닌 사실주의와 풍경화 소재인 나무, 산, 하늘 이런 수채화였기에 나의 그림읽기가 수월하지 않았나 싶다.
전시회장에는 거의 항상 작가가 나와 있게 마련인데, 작가에게 말을 걸어라 한다. 최대한 작가를 활용하고 작품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화가도 기분 좋게 응해주고 미술과도 친해진다고 저자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 다음은 그림이 우리에게 말을 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더 늘면 좋겠다고 작가는 따끈히 전해준다.
이제 카페에 걸려있는 대수롭지 않는 그림일지라도 화가의 생각에 관계없이 나대로 읽기 작업을 해 보련다. 이 가을,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 한잔 앞에 두고 빛 바랜 영혼을 쓰고 쓸쓸히 걸려있는 벽 그림에 눈길 한번 주심이 어떨까?
-(교보문고] 독자서평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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