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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삼관 매혈기 |  | |
| 위화 : <허삼관 매혈기>
역자 : 최용만 / 출판사 : 푸른숲 / 출판일 : 1999/2/3 / 페이지수 : 342
<´문제 있는 재미´- 가족 이데올로기의 신화>
순전히 타의에 의해 책을 읽게 될 경우가 있다. 나에게 그런 경우란 주로 수업과제로 책을 읽어야 할 상황에서인데, 그 때는 어김없이 짜증스런 마음으로 책을 펼치게 된다. 목적이 있는 글읽기는 경험상 대부분 따분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읽기 시작한 소설을, 나는 한 시간만에 그야말로 단숨에 읽어 버렸다. ´허삼관 매혈기´는 기대 이상으로 퍼니한 입담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일명 어설픈 진지 모드의 소설에 질려 있던 내가 위화라는 중국 작가의 생기 발랄한 옛날 이야기에 일종의´감명´을 받은 것이다.
제목에서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소설은 허삼관이란 인물이 피를 팔게 되는 상황적 에피소드를 기본축으로, 시간의 추이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피를 판다는 소재에 머리를 갸우뚱 해보았지만, 이건 한때 중국의 리얼한 현실이었다고 들었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문화혁명의 일면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나는 그 단면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가볍게´ 신랄하다고 느꼈다. 즉, 그가 소설을 통해서 그 흔한 이데올로기니, 사회주의에 관한 언질을 전혀 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선 가볍지만 , 강도 센 풍자로 웃을 수 없는 상황을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어떤 이념소설보다 신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과장 된 듯한 인물 설정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였다.
또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 기본은 허삼관과 그의 가족의 족적에 관한 것이 중심인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적어도 20년의 세월은 될법한 장시간의 이야기를 적절한 연결 고리를 찾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허삼관과 허옥란의 결혼, 출산을 비롯한 갈등과 그 해소의 과정을 피를 파는 계기로 제시하면서 자연스레 몇 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단지 ´재미 있네´하고 말아 버리면 한동안 찜찜한 기분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허삼관 매혈기의 재미를 ´문제있는 재미´라고 말해야겠다. 대개 재미난 이야기는 금방 잊게 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경우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비례하여 그 내용을 빨리 잊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허삼관 매혈기´는 이례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기에, 이를 이른바 ´문제 있는 재미´라 부르는 것이다.
우선 내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나는 벌써 육 개월이 넘게 집에서 떨어져 혼자 생활을 하고 있다. 자주 외롭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아직 새로운 곳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단 걸, 며칠 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기억과, 윤리 의식과, 이성 혹은 감성의 근원은 가족에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즉,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형태가 허삼관처럼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의 안위를 지킬만한 맹신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근원적으로 가족의 부재로 인해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위화라는 이 중국작가는 뛰어난 입담으로 가벼우면 날림이 될 수 있는 가족이란 주제를 웃음으로 진지하게 부각시켰다는 말이다. 물론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일부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편협한 사고의 원인이 가족이데올로기의 팽창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인즉 가족이라는 집단이 권위주의와, 계급관계를 만들어 내고 구성원들에게도 은연중에 그것을 주입시킨다는 얘기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니고 있는 신화를 깨뜨리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지구에서 맹목적인 사랑을 빽으로 무대포일 수 있는 집단이 가족 외에 또 있던가. 누구든 가족이라는 거대한 신화를 전복시키려면,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무대포일 수 있는 새로운 집단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허삼관처럼 피라도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가족을 위하여, 나아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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