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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복 받은 집 |  | |
|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역자 : 이종인 / 출판사 : 동아일보사 / 출판일: 2001/1/1 / 쪽수 : 296
<행복한 책 읽기>
<축복받은 집>은 내가 나 자신이고 싶었던 순간에 만난 좋은 소설집이다. 처음에 많은 신간서적들 사이에서 이 책을 선택하면서 큰 기대는 갖지 않았다. 사전정보도 많지 않았고, 그저 퓰리처상 수상작품인데, 의외로 단편소설집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려 구입하게 됐던 거였다. 말도 안되게 바쁘게 지내고 있던 즈음, 논리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도 않은 시간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허구가 무슨 위안이 되랴하는 심정으로 살았다. 소설을 간혹 읽는다 해도 깊이 있는 독서는 역시 못되었고, 생각대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잘 생겨나 주지 않았다. 내 기대치가 낮았던 것은 그런 생활의 습관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자신을 몰아치듯이 살던 생활을 잠시 접고 아예 작정하고 방에 틀어박혀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과 최근 나온 신간 서적들을 쌓아두고 지냈던 두 주 남짓한 기간, 이 책 속의 살아 숨쉬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 것은 그 두 주의 어느 밤, 어느 새벽의 일들이었다. 책을 덮었을 때 그 허구의 인물들 하나 하나가 다정하게 웃으며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했다.
우연히 이런 저런 책, 혹은 영화를 보았는데 감동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을 다시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단순한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비타민이 모자랄 때 쥬스를 마시고 싶다거나 신선한 야채와 과일 쪽에 눈이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내 내부적인 어떤 결핍이 이 책을 고르게끔 했던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사람과 사람이 이룬 작은 사회나 크게는 역사, 그런 것에 대한 믿음 없이 나름으로는 현명한 체하며, 또는 속지 않으려 눈 부릅뜨면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아픈 자책이 생겨났다. 인간이 다 그만그만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대강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만 것이다.
우리가 포기했던 만남과 시간들이 이 책 속에는 살아있다. 역자의 말처럼 좋은 소설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감동을 준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만났으며 앞으로 생활
하며 어느 순간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발견하고 살게 되리라고 끄덕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작품이 다 인상적이지만 내게는 특별히 <피르자다씨가 저녁에 왔을 때>,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실험적이거나 엽기적인 대한민국 현대 문화의 코드를 앞지르거나 반영하거나 하지 않는 평범한
것이지만, 평범 이상으로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 나라 문학이 소홀하게 지나치고 있거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 책을 읽은 내 감동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게 된 것처럼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줄거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기 아까운 소설이다. 나와 같은 감정으로 신간 정보를 뒤적일 어떤 비슷한 결핍의 공감대를 지닌 독자에게 권한다. 줌파 라히리란 이 생소한 작가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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