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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 <부서진 사월>

역자 : 유정희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판일 : 1999. 3. 15 / 쪽수 : 264

<카눈 그 매혹적인 악습(?)>
책장을 덮고 나서 단어 하나가 이리도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 책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
´카눈´. 저 멀리 알바니아 고원지대 사람들의 삶을 규정짓는 관습법의 이름. 피는 반드시 피로서 회수되어야 하는 철저한 응징의 법이다. 젊은 청년 그조르그는 형의 피를 1년 가까이 회수하지 않은 까닭으로 가문으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깃발에 매달려 피빛이 흐려지는 형의 셔츠는 소리 없이 외치는 것 만 같다. ´복수하라고´.처음의 복수의 실패로 상대에게 거액의 배상만 함으로써 더욱 궁지에 몰린 그조르그, 드디어 총을 발사한다.
복수를 완수한 그조르그를 환영하는 집안 사람들. 24시간 화해의 시간에 그는 상대방의 장례식에까지 참석한다. 드디어 이제 그가 복수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손목에 검은 상장을 달고 짧은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 중에 잠깐 스친 도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를 다시 보기 위해 안전하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가 당연히(?) 복수를 당한다. 죽음. 그의 길지 않은 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관습법이 개인의 삶을 이토록이나 철저히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건 관습법에 얽어 사는 개인의 비참함, 억을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이유를 모르는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닌 죽음을 예견하고 사는 삶. 내 죽음은 또 다른 복수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삶.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그렇게 죽어야 했던 그조르그의 마음에 대하여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다.
책 곳곳에서 소개되는 카눈의 내용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처음에는 너무 생소하고 일면 황당하게까지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이치에 합당한 법이다. 어느 땐 무릎을 딱 치기까지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는 지도에서 알바니아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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