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살아간다는 것 |  | |
| 여화 : <살아간다는 것>
역자 : 백원담 외 / 출판사 : 푸른숲 / 출판일 : 1997년 6월 20일 / 쪽수 : 314
<중국 현대사에서 살아남기>
장예모 감독의 <인생>은 94년 깐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서구 관객들이 보기에는 갈우(꺼요)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푸꾸이(福貴)가, 그들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알게된 중국 현대사를 아주 효율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보여준 모양이다. 국공합작, 대장정, 그리고 모택동 주석이 천안문 광장에서 너무나 감동적이게 자기네 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하였고(1949년 10월 1일), 잘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대던 농민-무산자 국가는 한국전쟁에 휘말려들었고,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번에 이데올로기의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국경분쟁이 붙었다. 그리고는 그때 즈음하여 3년 내리 자연 재해가 겹쳤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 미문의 집단 광기극이 벌어지면서 중국 인민들은 곯아죽고, 맞아죽었다.
이런 굴곡의 중국 현대사를 영화로, 소설로 다룬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데 장예모 감독의 <인생>을 보며 감탄했었다. 해방 전, 지주의 망나니 아들 푸꾸이가 마작으로 집안 재산을 탕진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인생담은, 반세기에 거친 중국현대사의 갖은 풍파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다는 것이 마치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미국 현대사의 주요 대목을 다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 <인생>을 또 봐야지 생각하다가 원작소설을 읽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선 <인생>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의 원제는 <활착(活着)>이다. 중국어를 조금 하는 사람은 바로 어감이 떠오를 것이다. 어미´-着´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되어가는 숙명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장착, 착복, 착용..)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 Living>이나, < To Live> 등으로 소개된 것이 일견 타당한 것 같다. 한글로 옮긴 분은 백원담 교수라고 ´민중´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시다. 중국 현대사에서의 민초의 핏빛 역사를 이해하는지라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제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영화도 감동적이었지만, 소설은 한층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다시 활자시대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이후 <책상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을 만든 장예모는 역시 드라마와 감동을 집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을 알고, 꼭 필요한 부분과 덜 필요한 부분을 가릴 줄 아는 장인이었다.
원작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살아남은 자의 인생관은 훨씬 초월적이다.(소설은 한 민담 채집가가 푸꾸이 영감의 옛날 이야기를 채록하는 형태이다)
푸꾸이가 도박으로 돈을 다 날리고, 병든 아내를 위해 읍내에 나갔다가 국민당 군에 붙잡혀 몇 년 동안 전선에서 부역을 하게 되고, 공산당의 승리로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푸꾸이의 아내 역을 맡았던 ´공리´의 강인함이 강조되었지만 원작소설에선 푸꾸이의 아내가 그러하지 못하다. 인민공사, 대약진운동, 3년 자연 재해, 문혁 등 역사의 격랑 속에서 푸꾸이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원작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푸꾸이, 푸꾸이의 아내 가진, 그들의 불쌍한 딸 봉하, 어린 생명 유경이, 그리고 사위가 되는 여만희, 그리고 외손주인 고근.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푸꾸이를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병들어 죽고, 사고로 죽고 오직 푸꾸이만이 살아남아 여전히 농삿일을 지으며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문화대혁명>의 그 어이없음을 나타내는 장면은 봉하가 출산하다가 죽는 장면이었다. 소설에서는 그렇게까지 블랙코미디로 다루진 않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재수 없는 인생, 복 없는 인민, 운 없는 민중을 표현해낸다. 유경이는 병원에서 피 뽑다 죽고, 불쌍한 손주 고근은 삶은 콩을 쑤셔먹다가 죽는다.
중국 현대사에서 농민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모두들 죽고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인가. 정치적인 풍파, 자연재해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자는 이제 외부에서 그 어떠한 충격파가 와도 자신의 인생역정에 비추어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이 소설이 노신의 <아큐정전>의 맥을 잇는 중국인의 정신문화 행동 양식인지 모른다.
작가 여화(余華:위화)는 1960년 절강성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모두 치과의사였다. 초기 작품세계는 <설국>으로 노벨상을 받았던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독일작가 카프카 영향을 받았고, 현재는 자기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또 한편의 블랙코미디풍의 <허삼관 매혈기>는 우리 자본으로 곧 영화화되었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