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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개의 짧은 이야기 |  | |
| 귀스타브 플로베르 : <세 개의 짧은 이야기>(문지스펙트럼:외국문학선 8)
역자 : 김연권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1997. 10. 20. / 쪽수 : 208쪽
<짧지만, 짧지 않은 세 개의 이야기>
<보봐리 부인>으로 유명한 플로베르의 소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얇은 두께에, 제목에 마저도 명시되어 있는 ´짧은 이야기´라는 글귀가 눈에 선했다. 속독을 즐기는 나에게는 딱 알맞는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는 걸 빼들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하나를 가지고 이 사람의 작품은 원래 이렇다는 식의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 써 내려간 작가의 이야기는, 현격한 사건의 진행과 빠른 스피드를 즐기는 오늘날 세대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 싶다.
세 가지 이야기는 모두 사건 중심적이지 못하다. 짧은 분량의 세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한 사람의 일대기 마냥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어느 한 부분에 중심을 두지 않은 채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독자로서는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기가 힘들다. 분산된 나의 관심이 줄거리 자체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우려를 이미 파악이라도 한 듯,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묘사로 배경 혹은 인물을 설명해 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문체 하나하나에 조금만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머릿속 하나 가득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장면들을 하나하나 그려가면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묘사가 조잡해 보이고 마냥 지루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 가지 이야기에서는 하나같이 운명론적 관점이 엿보인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듯 하다. 평생 주인만을 섬기며 사는 하녀에게는 자신만의 원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을 아끼는 주인이라 할지라도 신분의 격차로부터 발생하는 무시할 수 없는 업신여김의 감정은 그녀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평생의 아픔이다. 못한 건지 아니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단 한번도 주인에게 반항을 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주인에 대한 반항의 감정이 종종 싹틀지라도 스스로 그것을 억누르며 그렇게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희망이자 재산인 박제된 앵무새에 대한 마지막 묘사는 그녀에게 드리워진, 벗어날 수 없는 암울과 우울함의 정서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 했다.
부모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쥘리앙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자신들의 꿈에 의존해 자식이 뛰어난 성직자, 혹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고 짐작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엇갈리는 순간순간의 생각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동물들을 사냥하며 쥘리앙이 보여주는 잔인한 면모는 부모를 살해하는 그 장면에서 돋보인다. 조금만 침착하게 지체했더라도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불같은 그의 성격이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쳐준 사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그 사건에 비극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문둥병자 예수와의 승천은 사건에 있어서 조금은 의외였다. 하지만 그 자가 예수임을 알기보다는 하나의 문둥병자로서 기억하는 쥘리앙이었기에, 비록 그 대목이 그에게 천국으로 향하는 대목이었다 할지라도, 그 스스로에게는 문둥병자의 곁에서, 부모를 죽인, 이름 없는 방랑자로서 죽어가는 것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헤로디아에서는 배경 묘사의 웅장함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소재 자체를 웅장하게 잡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서나 봄직한 성 요한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글을 읽다 그 무거움에, 웅장함에 줄거리를 놓쳐 버린 듯 싶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더욱 비장해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작가가 취한 태도 때문이었던 듯 하다. 어느 부분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배경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세밀해질지라도, 마치 오로지 배경만을 위해 써 내려간 소설인 것 마냥, 줄거리에 대해서는 무책임해 보일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야기의 어떤 주인공에 대해서도 슬퍼하지 않고 있었다. 주인공들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자신의 운명과 그 안에서의 체념을 한숨조차 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일 수 없었던 한 여인에 대해서,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한 젊은이에 대해서, 예언자를 예언자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이 벌인 어리숙함에 대해서 작가는 어떠한 비난도 가하지 않고 있었다. 슬퍼하지도 비웃지도 아니한 채 오로지 그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작가가 슬픔은 눈물로 터뜨리기보다 가볍게 입술을 깨무는 행위로서 억압시키는 것이 더 쓰라리게 다가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보봐리 부인 외의 다른 작품들로는 자신을 기억치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감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녹아있는 것 같았다. 읽는 사람은 그저 세계의 웅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한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이미 우리는 플로베르에게 또 하나의 슬픔을 안겨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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