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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의 발명 |  | |
| 폴 오스터 : <고독의 발명>
역자 : 황보석 / 출판사 : 열린책들 / 출판일 : 2001년 7월 15일 / 쪽수 : 308쪽
<잊기 위한 언급>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외롭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그에게서 거리감을 느낀다. 더 이상 군림할 수 없는 가족의 왕, 하지만 당신은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아무래도 강해 보이고 싶으신가보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면, 그 때쯤이면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을 것인가. 멀어지면 그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다는 부류의 것들에 아버지, 당신도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작가는 아버지를 기억 속에 묻기 위해, 더 이상 기억하지 않기 위해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듯 하다. 아니, 오히려 추하고 섭한 것들만이 그들을 짓누른다. 조금만 더 애정을 표현해 주었으면 하는 그 순간, 아버지는 냉정하게 그 자신의 정을 잘라 버린다. 그저 형식적인 향기만이 그의 말로부터 묻어나는 것이다. ´돈´ 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너무도 현실적인 당신의 모습은 작가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였다. 가지고 싶은 것을 앞에 두고도 내색할 수 없는 아픔, 식당에 가서는 되도록이면 값싼 것을 골라야만 하는 슬픔... 그의 감정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인 듯 하다. 지난 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여준 부정적인 면모만을 그는 잘 갈고 닦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버지를 추억하는 동안 그는 그 동안 몰랐던 너무도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잘려나간 가족사진, 불우했던 당신의 지난 어린 시절.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야기된 당신의 성격... 차츰 기울어져가는 사업과, 잃어버린 사랑, 젊은 날...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속에서는 무너지고 있었을 이혼 앞에서의 당신.
그는 또 하나의 아버지가 되어 당신이 등진 세상을 살고 있었고,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슬픔보다는 무감각에 가까움으로 당신을 놓아주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들이 오가던 지난날에 대한 어떠한 후회조차도 하지 않았던 그는, 아버지로서의 당신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당신을 잊기 위한, 가슴속 저 너머 다시는 끄집어낼 수 없는 곳에 묻기 위한 언급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끄집어낸 당신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당신의 마지막 사라짐을 보지 못한 그의 마음속에서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이 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세상을 떠났노라고 말하는 그의 입술은 떨렸다. 당신은 그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한다. 어머니와 같이 깊은 애정을 나눌 수 없는 존재, 피를 나누었지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 하지만 알게 모르게 너무도 많이 기대고, 너무도 많이 의지했던 존재...
그런 당신 앞에서 나는 오늘도 또 어리광을 부려본다.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한 어리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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