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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B급 좌파의 자기 단련 |  | |
| 김규항 :
출판사 : 야간비행 / 출판일 : 2001년 7월 9일 / 쪽수 : 280쪽
<어느 B급 좌파의 자기 단련>
다양한 색채를 인정하는, 다양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이 필요하단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우리 나라를 볼 때면 왠지 모르게 어설픈 우파들만이 떵떵거리는 듯해 심기가 불편하다.
´좌파´라는 이름은 어느 순간부터 너무도 멀게만 여겨지고 있다. 체제가 겪어야 했던 아픔 속에서 왜곡 아닌 왜곡을 겪으며 서서히 몰락해간 이름, 좌파. 작가는 스스로를 B급 좌파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B급이라면 현재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여기는 사람들 중에서 B급 이상은 몇이나 될지 싶다. 시종일관 시원한 문체는 비꼬는 듯 하면서도 냉소적인 듯 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친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그 사회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아닌 직접 참여하면서.. 감정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편향성이 짙어질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감수한 체. 하지만 그러한 그의 문체에서 느껴지는 힘, 그것을 결코 얕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는 세상의 변화를 꿈꾼다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팔짱 낀 채 방관하는 이들의 헛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좌파로 살아남기는 참으로 어렵다. 교육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우파를 양성해내기 시작한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상황은 좌파의 혁신적이고 변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을 ´빨갱이´로 매도했다. 그 권력에 의해 철저히 소통라인을 봉쇄당한 좌파는 분명 대한민국에서는 소수집단에 속하는 이들이다.
우파는 그저 자신의 소신만을 지키면 된단다. 자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면 말하면 된다. 그 이상의 것은 필요치 않다. 사회 전반적으로 우파는 있는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비약은 있을지라도 원치 않는 왜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지닌 권력을 통해 모든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좌파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받은 교육을 의심해야만 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세뇌 아닌 세뇌를 통해 길러진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뼈를 깎는 노력보다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고방식의 전향을 일으켰을지라도, 그 생각을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계속되는 커다란 실체의 억압. 그 안에서 때로는 침묵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정체하다 못해 우경화되어 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좌파에게 중요한 건 신념이다. 어느 사회나 소수자들은 소수자들끼리 뭉쳐 그들의 것들을 위해 싸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외부의 탄압이 아니다.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오해. 그 모든 것을 깨어버리고 세상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삶을 포기함으로써 세상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좌파의 싸움은 기나길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싸웠다 하여, 그 결과물이 지금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좌파는 역사의 흐름,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진보의 물결을 느껴야만 하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B급 좌파. 좌파라 일컬어지는 특정 단체 생활에는 이력이 나고 익숙하지 못하지만, 집회가 있노라면 마치 출석체크라도 받아야 하는 마냥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그였노라는 고백. 그것이 B급 좌파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느 스케일에 해당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되도록이면 내 목소리를 내고 싶고, 되도록이면 내 힘에 의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고픈 내 욕망은, 스스로 좌파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었지만, ´기회주의´라는 틈새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내 자신의 안위와 안녕을 위해 살다보니, 내 자신을 버릴 수가 없었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좌파´라고 대답할 수 없는 나는…. 그런 나는 과연 무엇일지…
글쓰기는 저항의 한 형태이다. 격식 없이 흘려 써 내려간 듯한 그의 문체는 오늘도 무언가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어느 한 B급 좌파가 쓴 문체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찍힌 대한민국의 어설픈 우파는 자기 자신이 지닌 어설픔을 고도로 정밀화시켜 또 다른 어설픔을 만들어내고 있다. 끊임없이 그는 우파에 도전하고, 같은 좌파일지라도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도전한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그를 단련시키고, 마침내 그를 ´A급 좌파´로 만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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