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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
| 출처 - 다음카페
김영하의 소설이 머금고 있는 스펙터클의 폭은 아주 넓다. 죽음문제에서부터 현대문명의 심각한 질병인 나르시시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하이퍼리얼리티, 소통이 가로막히고 그래서 의미의 교환이 위협당하는 시대의 풍경 등에 이르기까지 이 신예작가는 현대의 일상을 아주 다각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그런 주제의 부챗살 중에 이 글의 위치에서 의당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은 죽음, 나르시시즘, 커뮤니케니션의 문제 등속 이며 또한 그것들의 상호관계이다. 그 중 나르시시즘을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문명의 특징이 전 신민의 나르시소스화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수많은 나르시소스는 상품미학이 제공한 연출법을 사숙하면서 ‘연출하는 자아’로
동성애 대목도 비슷한 맥락으로 간주된다. 소설 해설자 강상희의 지적대로 동성애를 등장시키는 다른 소설들이 기존 윤리의 철조망을 통과하기 위해 낮은 포복을 감내하고 또는 자기 검열이나 눈치보기를 피하지 못하는 반면 이 소설은 그런 것에 대해 전 혀 신경쓰지 않는다. 현대의 성해방 담론이나 성적 차이의 윤리에 있어 이성애나 동성애에 대한 해석은 대단히 민감한 과제이거 니와 좀더 큰 의미를 부여하면 근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동성애는 그 어느 것에도 연 연해하지 않는, 말 그대로 즉물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김영하 소설의 전체적인 면에 대해서는 남진우의 ˝나르시시즘 , 죽음, 급진적 허무주의˝(『문학동네 96년 겨울호 )와 류보선의 ˝죽음, 그 아름답고도 불길한 유혹˝(『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인터뷰)을 참조.
재탄생한다. 그렇게 재탄생된 나르시소스들은 현실과 타자와의 모든 관계에 있어 그것의 인과성을 전부 자아의 관할 하에 두는 특징을 가진다. 사물의 움직임과 현상의 원인 \ 결과 또는 시작과 끝이 전부 자아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르시시즘은 관념론의 극 치임에도 불구하고 미학적 효과에 힘입어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유력한 생존방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타자는 오직 자 아의 확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그 어떤 반성적 사유가 가동될 리는 만무하다. 김영하의 소설에 이런 점들이 박혀 있는 것은 금방 눈에 띈다. ˝거울에 대한 명상˝의 ‘나’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작 관심이 가는 대목은 자아도취적인 측면과는 다른 성질로 존재하는 나르시시즘이다. 그 다른 존재방식은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의 미미와 유디트, ˝나는 아름답다˝에서의 ‘나’, ˝손˝의 ‘나’에게 서 나타난다. 먼저 유디트와 미미에게 나르시시즘은 현실이 더이상 삶에의 의미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형편에서 불가피하게 파고 드는 피안이다. 또한 현실과 타자와의 교신 및 유대가 힘든 상황이 만들어내는 존재의 또다른 영역이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에 대 한 지극한 사랑이다. 미미와 유디트는 그 자기애의 완성을 죽음으로 이루고자 한다. 때문에 이들에게 죽음은 나르시시즘의 종국 적 형식인 것이다. 생에의 궁극적 충동이 타나토스임은 미미와 유디트에게서 증거된다. 이런 나르시시즘은 기이하게도, 죽음의 제의를 통해 젊음 이데올로기로 영생불사론을 남발하는, 그래서 삶의 불가역적 시간을 박제화하고, 그런 만큼 죽음 역시 박제화 하는, 또 이 이중적 박제화로 인해 자아가 이중적으로 미혹당하는 현실에 전복 욕망의 이빨을 갖다대는 풍정을 연상시킨다.
피그말리온 신화가 등장하는 ˝나는 아름답다˝에서의 ‘나’, ˝손˝에서의 ‘나’ 역시 형식은 다르지만 나 르시시즘의 역설적인 효과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미미와 유디트의 경우와 유사하다. 나르시소스에게 나르시시즘의 매개가 연못 이었다면 피그말리온에게는 조각품이며 ‘나’에게는 사진 이미지 그리고 손 이미지이다. 나르시시즘은 반성력 없는 자기만족의 기제이지만 동시에 자아확인의 기제이기도 하다. 그 기제가 사진 이미지로, 손 이미지로 변환되는 것은 결국 아내로 대변되는 대 문자 타자가 자아 확인의 기제가 되지 못하며, 시선의 교환 역시 그 기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손˝에서의 손 이미지는 함축적이다. 손 이미지에의 집착은 시선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에의 불신에서 오기도 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시선의 특권적 위치를 떠올리게 된다. 근대 이후 시선 혹은 시각은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는 담론 효과의 상승에 힘입어 다른 감각보다 특권적 위치에 있었다. 보는 것은 육체 또는 감각의 작용이지만 그것은 그 자연적 속성보다 훨씬 높은 위치, 즉 앎 자체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 시각적 특권을 포기하고 손의 감각을 타자에 대한 이해 및 유대의 매체 혹은 기제로 선택하게 되는 것은 곧 비시각적, 비의식적 기제를 택해 자아를 확인하는 일에 다름아니며 동시에 보는 것에의 통념 적 믿음을 거부하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예의 인물들의 나르시시즘은 불행인 동시에 출구라는 모순적인, 그런 만큼 충돌의 힘을 가지는 기제로 복층화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 죽음, 새로운 매체로서의 손(육체) 그리고 그것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작가의 조 형과 탐구는 이전에 쉽게 볼 수 없던 새로운 발견으로서 문학이 감당해야 될 문제에 대한 진중한 질문법임에 분명하다.
김영하（金英夏）는 이른바 90년대의 도시적 감수성을 대변하는 신예작가로 알려져 있다. 11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첫 소설집 『호출』은 그런 평판에 걸맞은 세계를 구축하려 애쓴 흔적을 보여준다. 평론가 남진우（南眞祐）는 김영하의 “전복적 사유와 상상력”을 높이 사면서 그가 “허무주의의 깊숙한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감상적인 상실감이나 냉소주의로 치닫지 않는다”고 평 가한다（「나르시시즘／죽음／급진적 허무주의」, 『문학동네』 96년 겨울호）. 그러나 김영하가 감상주의나 냉소주의를 잘 보이 지 않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에 담긴 내용이 더 깊이있는 어떤 것인지는 좀 의문이다. 허무나 무기력, 죽음에의 충 동 등이 우리의 삶 전체, 현대문명 전반의 무의미함을 절실하게 환기할 만큼 진전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소설집『호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표제작인 「호출」이다. 이 단편은 오늘의 삶이 노정하는 황폐함의 단면을 재치 있게 그려내었다. 주인공 남자는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유학을 떠나겠다고 느닷없이 선언했을 때, 그저 “공부 열 심히 해”라는 인사를 던졌을 정도로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자 신의 반응을 만회하려고 애인의 결혼식에 가서 심상하게 “지나는 길에 들러봤어”란 한마디를 하는 것이 어떨까 상상하다가 결 국은 행동에 옮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의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 여자 주인공 역시 정사장면의 대역이나 값싼 광고 모델을 하며 그날그날을 우연에 맡긴 채 삭막하게 살아간다. 남자가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선 그녀에게 충동적으로 자신의 호출기 를 손에 쥐어주며 연락하겠다고 말하는 （정확히 말해 실제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은 현실과 허구（소설）를 넘나드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이 작품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교섭의 불가능함이 그런 교섭에 대한 갈망을 잊지 않은 채 그려지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을 상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때 여자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방편이었던 애인이 여자의 직 업을 알게 되는 바람에 헤어지는 장면이나, 대역배우를 하는 과정의 세심한 묘사들이 모두 적절하게 독자의 주의를 사로잡아 작 품의 세계로 이끌고가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밀도가 들쑥날쑥하게 느껴지는 문제점이 있다. 가령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는 주인공이 전자제 품이나 자동차 같은 물건제작과 수리에 통달한 동시에 심한 집착을 보이는 자폐증적 인간이라는 점을 빼면 다소 식상한 이야기이 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역시 영업실적이 부진한 자동차 판매사원의 소시민적 비애는 그가 일을 빼먹으면서까지 몰두하 는 삼국지 컴퓨터게임에 관한 긴 묘사를 제외하면 낯익은 것이며, 작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컴퓨터게임 묘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메마른 삶이 더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부각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정쩡하게 되어버린 작품이 무장탈영병을 그린 「총」일 것이다. 이 단편은 독자에게 기초적인 설득력을 확 보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닌다. 인질을 붙잡고 세상을 향해 총을 내갈기기 시작하자 “세상이 갑자기 그를 알아주고 그와 소통하 기 시작했다”고 하듯이, 주인공 석태는 극심한 소외감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과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 낯익은 내용 이상의 것은 작품에 없고, 오히려 상식을 벗어나는 점이 많다. 3년 전 본드를 마신 환각상태에서 오토바이를 몰 다 앞차와 부딪쳐 뒤에 탄 애인을 죽게 만든 청년이 무사히 현역병 입대를 했다는 설정은 지나치다. 더구나 그는 사격장에서 통 제를 무시하고 시야에 들어온 동물을 향해 마구 총을 쏘는 충동적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과연 그같은 문제병사가 무장탈영 이 가능할 정도로 사전에 특별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을까. 또 가정집에 침입하여 인질극을 벌이는 과정도 비현실적이다. 주변 을 포위한 군경이 열살 때 집을 나간 주인공의 어머니를 금방 데려와 투항하도록 설득작업을 편다는 것도 작위적이며, 저격수들 이 인질범을 겨냥해 총을 쏘아 부상을 입히지만 그 이상의 움직임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왜 저격과 동시에 진압병력이 인 질을 구출하러 뛰어들지 않는 것인가. 이 단편이 사실적인 설득력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렇 다면 차라리 작품 성격을 아예 현실논리가 적용될 수 없는 몽환적 분위기로 분명하게 몰아가야 했으며, 그 경우 훨씬 나은 결과 를 얻을 듯하다.
김영하가 80년대 학생운동을 그리면서 그 성원들의 좌절이나 인간적 배신을 부각시켜 허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도는 수긍 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전태일과 쇼걸」에서 몇년 만에 우연히 극장에서 마주친 주인공 남녀는 과거 운동을 하면서 서로 연애까지 했던 처지이다. 여자는 전혜린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삼고 있던 순진하고 관념적인 여학생이었지만, 선배들의 의식화과 정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여자가 스스로를 변모시킨 순간 남자는 여자를 떠났고 그 이유를 남자는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작품의 문면에 따를 때 두 사람의 헤어짐은 그들 자신이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마치 어쩔 도리 없는 숙명처럼 허무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는 삶의 실상을 살펴서 나온 결론이라기보다는 결론에 꿰맞추어진 삶이다 . 마찬가지로, 「베를 가르다」에서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과거의 운동권학생 수연과 총학생회장이었던 그녀의 애인 이야기도 그저 세상은 허무와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강변하는 배경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도드리」에서 작중의 ‘ 당신’을 비롯한 학생운동권이 자기 나름의 세계를 지닌 정태 형이란 인물을 비참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에 잠 기게 만든다. 「도드리」도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지만, 지난 시절의 학생운동을 그리는 데서 자의적인 면은 벗어나 있다.
평자가 보기에 김영하의 작품세계는 아직 불안정하다. 자신만의 개성과 새로움을 확보하기 위한 분투는 있으되 아직 소재적인 차별성이나 특정한 분위기의 조성에 머물러 있다. 그의 소설은 삶의 ‘가벼움’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담으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삶을 부당하게 왜소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김영하가 포착한 삶에 현대사회의 부박함이라는 진실의 일단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곤란하지만, ‘가벼움’의 표피에 가려 언뜻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엄중함을 잊는다면 그의 작품들은 관념의 유희에 그치고 말 위험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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